(세종=연합인포맥스) 이효지 기자 = 자산총액 5조원을 넘기면서 대기업집단에 지정된 쿠팡의 동일인(총수)을 김범석 이사회 의장이 아닌 법인으로 지정한 공정거래위원회의 결정을 두고 여진이 계속될 조짐이다.

현행 동일인 지정 제도의 미비점 등을 들어 김 의장을 동일인으로 지정하지 않았다는 게 공정위의 설명이지만, 미국 국적을 갖고 있는 김 의장에 대한 특혜라는 논란은 여전하다.

특히 공정위가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와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까지 거론하면서 김 의장의 동일인 지정이 적절하지 않다고 항변한 것을 두고서는 한국 기업에 대한 역차별적 발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공정위는 29일 쿠팡을 공시대상기업집단으로 신규 지정하면서 동일인으로 법인인 쿠팡㈜을 지정했다.

김범석 이사회 의장이 미국법인 쿠팡 Inc를 통해 국내 계열사를 지배하고 있음이 명백하다고 인정하면서도 외국인 동일인을 규제하기에 제도가 미비하다는 이유를 들었다.

외국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한 전례가 없다는 점도 고려했다는 게 공정위의 설명이다.

김재신 공정위 부위원장은 "아마존 코리아나 페이스북 코리아의 자산총액이 5조원을 넘긴다고 제프 베이조스, 마크 저커버그를 동일인으로 지정해 국내법상 의무를 부여하고 위반 시 형사제재의 대상으로 삼아야 하냐"고 항변했다.

이번 결정이 재벌 규제를 위해 만든 한국식 제도를 시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기형적인 상황이라는 것을 자인한 셈이다.

공정위는 동일인의 정의, 요건을 명확히 규정하지 않은 채 정성적 판단으로 동일인을 지정하고 있다.

동일인으로 지정되면 자료 제출에 대한 책임, 특수관계인과의 거래에 대한 공시 의무 등이 생겨 기업으로서는 동일인 지정이나 변경에 대한 부담이 크다.

네이버는 4년 전 공정위를 찾아 총수 없는 대기업으로 지정해달라고 요청한 것도 그 때문이다.

공정위는 네이버 창업주인 이해진 글로벌 최고투자책임자(GIO)가 최다출자자고 다양한 보직을 맡으며 경영에 관여하고 있는 데다 사외이사 선임 과정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있다며 이 총수로 지정한 바 있다.

하지만 이러한 공정위의 결정은 쿠팡에는 적용되지 않았다.

김범석 의장은 미국 법인인 쿠팡 Inc 의결권을 76.7% 가지고 있고 이 회사를 통해 한국 법인 쿠팡㈜를 지배한다.

반면에 총수로 지정된 이해진 GIO는 네이버 지분율이 4%대에 불과하다.

실질 지배력을 판단하는 공정위의 잣대와 기준이 모호해지는 지점이다.

공정위는 김 의장을 동일인으로 지정하지 않아도 규제 공백이 생기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러나 당장 김 의장과 특수관계인 사이의 거래를 파악할 수 없고 김 의장과 친족들이 한국에서 따로 개인회사를 차리고 쿠팡에 일감을 몰아주더라도 제재하기 어렵다.

이러한 특혜 논란에도 공정위가 김 의장을 동일인으로 지정하지 않은 것은 법리 다툼에서 자신이 없었다는 뜻으로도 읽힌다.

김 부위원장은 "외국인 동일인 지정이 법적인 다툼의 대상이 될 수 있어 법리 관점에서 명확히 판단했다"고 말했다.

미국인인 김범석 의장을 동일인으로 지정할 경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상 최혜국 대우 규정 위반 가능성을 지나치게 해석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최혜국 대우는 두 당사국 쌍방이 제3국에 부여하는 조건보다 불리하지 않은 대우를 해주는 것으로 에쓰오일, 한국GM 등은 총수 없는 기업집단으로 지정됐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지난 2019년 공정위가 미국기업을 조사할 때 충분한 방어권을 보장하지 않는다며 한미 FTA 발효 이후 처음으로 공정위에 양자협의를 요청하기도 했다.

실질적으로 미국 정부가 구글 등 자국 기업을 보호하고자 압력을 행사했다는 지적도 있었다.

공정위는 이번 논란에 외국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할 수 있도록 현행 동일인 지정제도를 손 볼 수 있다면서 일단 자세를 낮췄다.

김 부위원장은 이날 오후 MBC에 출연해 "외국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할 필요성이 발생한다면 가만히 있을 수는 없을 것"이라며 "제도 보완을 거쳐 외국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하는 방안도 배제하지 않고 검토하려 한다"고 말했다.

hjlee2@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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