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국내 최대 ICT 기업인 네이버가 시끄럽다. 상사의 괴롭힘과 과도한 업무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한 40대 직원이 극단적 선택을 하는 일이 벌어졌다. 네이버 노조가 고인의 메신저 기록과 동료들의 증언 등을 모아 지난 7일 기자회견을 통해 밝힌 내용을 보면 끔찍하다. 때를 가리지 않고 과도한 업무에 시달렸고, 담당 임원의 과도한 업무 지시와 모욕적 언행은 정신적 피곤함과 압박을 더 했다고 한다. 회의 중 물건을 던지는 일도 있었지만, 수년간 이러한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에 이해진 창업자와 한성숙 대표 등 경영진은 묵인·방조했다고 한다.

취업준비생이 선망하는 기업이자, 수평적이고 열린 소통 구조를 갖췄다고 알려졌던 네이버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것은 ICT 업계의 숨겨진 민낯이 그대로 드러난 것과 다름없다. 게임업계를 중심으로 시작된 심각한 반노동·환경 문제가 소위 혁신기업이라 불리는 ICT 기업들 전반으로 확산하고 있다는 방증이 된 셈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의 최대 수혜를 입어 역대 최대 실적을 거둔 ICT 기업의 내부에서 구성원과 경영진 간 불협화음이 끊임없이 이어지면서 점점 곪아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극단적 사례이기도 하다.

한국판 실리콘밸리로 통하는 판교에서는 이번 '네이버 사태'를 두고 터질 게 터졌다는 반응이 많다. 혁신을 내세워 새로운 사업들을 문어발처럼 확장하면서 압축 고성장에 성공하고, 역사상 최대 실적을 구가해 온 국내 ICT 기업들이 정작 중요한 사람의 문제는 놓치고 있었다는 지적이다. 가열찬 성장을 이끈 실질적이고 유일한 '무기'는 전략과 개발 등의 인재였는데, 그저 생산력을 배가하는 '게임 아이템'과 같은 수준으로 인재들을 관리해 왔다는 게 여실히 드러난 셈이다. 이미 기업 규모는 재벌급 못지않게 컸지만, 내부 의사결정과 조직·노무 관리 수준은 이제 막 사업을 시작한 스타트업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는 얘기는 그래서 나온다.

디지털에 성공한 기업들엔 수평적이고 자율적인 문화가 압도하고, 조직 운영도 유연하며, 구성원 소통도 원활할 것이란 평가는 사실 착시였다. 창업자의 영향력은 여전히 절대적이고 권위적이며, 그를 기반으로 수직적으로 연결된 학맥과 인맥 구조는 조직의 불통을 양산한다. 무엇보다 프로젝트 단위 중심의 사업 구조로 인해 인력 관리는 주먹구구식이고, 보상 구조와 시스템은 상위 일부 경영진에 집중되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사태 이후 '물들어 올 때 더 가열차게 노를 젓자'고 독려한 경영진들의 조바심은 구성원들에겐 더 큰 압박이었을 것이다.

네이버 노조는 이번 고인의 죽음에 대해 "회사가 지시하고 방조한 사고로 명백한 업무상 재해다"라고 주장한다. 노조의 주장에 사측은 아직 명확한 입장을 내지 않고 있다. 리스크관리위원회를 통해 조사를 벌여 결과를 발표하겠다고 한다. 22세 청년이 된 네이버가 이번 사건을 회사가 커가는 과정에서 발생한 '성장통' 쯤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환부를 과감하게 도려내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하고, 젊은이들이 선망하는 직장으로 거듭나기 위한 문화를 만들어야만 지속 가능한 기업이 될 수 있다. 네이버 초기 화면의 녹색창은 많은 사람에게 새로움으로 들어가는 열린 문이었다. 하지만, 전근대적인 사고 체계로 가득한 기업이었다는 평판이 구축되는 순간 녹색창은 닫힐지도 모른다.

(기업금융부장 고유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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