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결국 금리 인상을 알리는 시계추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테이퍼링(자산매입 축소)을 앞당겨 본격적으로 긴축으로 방향을 틀겠다는 신호를 보냈다. 여기에 발맞춰 한국은행도 통화정책 방향의 변경 가능성을 공식화했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지난 24일 "연내 늦지 않은 시점에 통화정책을 질서 있게 정상화할 필요가 있다"며 기준금리 인상을 시사했다. 무엇보다 주목되는 것은 금리 인상의 시점을 올해 안으로 못 박은 것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풀린 막대한 유동성을 서서히 빨아들이기 시작하겠다는 신호인 셈인데, 당초 시장 예상보다는 다소 빠르다.

금리 인상이라는 통화정책의 변화가 경제 각 분야에 미치는 파급 효과는 적지 않다. 상당 기간 지속된 저금리로 인해 확산한 자산 버블과 그로 인해 누적돼 온 금융 불균형을 바로 잡는데 금리 인상만큼 좋은 카드는 없다. 경제 회복 과정에서 불거지는 인플레이션 우려를 잠재우는 데도 금리 인상은 올바른 처방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대규모 유동성 잔치 속에 확대된 부채 규모는 금리 인상이라는 이벤트 속에서 만만치 않은 리스크가 될 수 있다. "기준 금리를 한두 번 올린다고 해도 통화정책은 여전히 완화적이다"라는 이주열 총재의 언급은 그러한 시장의 불안을 달래는 '립서비스'로 보인다. 시장 충격을 충분히 흡수할 수 있을 정도의 '질서 있는' 통화정책 변화를 꾀하겠다는 의지일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대부분의 경제 주체들은 금리 인상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특히 우량과 비우량을 구분 짓는 신용등급의 경계선에 서 있는 기업들에 금리 인상이라는 이벤트는 그 자체가 공포다. 코로나19 이후 대규모 유동성이 풀리면서 회사채 시장에서 기업들의 자금조달은 순탄한 것으로 보였지만, 경계선에 선 기업들에는 여전히 그림의 떡이었다. 그나마 정책금융기관들을 중심으로 공급된 대규모 유동성 지원으로 근근이 버틸 수 있었지만, 금리 인상이 시작되면 이들 기업이 직접 조달시장으로 들어설 기회는 아예 차단된다. 코로나19 이후 각종 유동성 지원 조치로 은행 여신은 두 배 가까이 늘었지만 직접 조달시장인 회사채 시장의 발행 규모는 되레 줄었다. 그나마 신용등급 'AA' 이상의 우량 신용등급을 보유한 기업들은 저금리의 '특혜'를 톡톡히 봤지만, 그 이하 기업들은 사실상 이전과 다르지 않았다.

회사채 시장에서 'AA' 등급 이상의 비중은 지난해 무려 75% 수준까지 치솟았다. 'BBB' 등급 회사채 비중은 사실상 제로에 가깝다. 그러다 보니 저신용 기업들은 정부의 유동성 지원에 의존하거나 높은 이자 비용을 감수하고 사모사채 시장이나 메자닌 시장으로 내몰린다. 그도 그럴 것이 코로나19 이후 정부의 각종 지원이 대출·보증에 치중되고 회사채나 기업어음(CP) 등에 대한 지원은 미미하다 보니 나타난 결과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금리가 오르고 정부의 재정 지원 규모가 축소되기 시작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나마 있던 안전장치가 해제되는 꼴인데 그동안 근근이 버티던 기업들은 한계기업으로 추락하고 이는 또 다른 금융시장의 뇌관이 될 가능성이 있다. 한국은행이 국내 상장사와 일부 비상장사 2천175개를 대상으로 조사한 자료를 보면 지난해 기준 이자보상배율이 1을 밑도는 기업의 비중은 40.7%에 달했다. 영업이익으로 이자 비용도 감당하기 어려운 기업이 10곳 중 4곳에 이른다는 얘기다.

통화당국의 금리 인상은 거스를 수 없는 방향이 될 것이다. 정부도 '정책조합'이라는 명분하에 재정을 지속해서 투입하지는 못할 것이다. 언젠가는 돈을 다시 빨아들이게 될 것이다. 시중은행들은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금융시장 안정과 기업들의 자금조달 편의성을 꾀하기 위한 추가적인 대책이 사전적으로 마련돼야 한다. 사전적 기업구조조정을 위한 정책 방향을 세우는 것은 물론이고, 비우량 기업들이 직접 조달시장을 통해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저변을 확대하는 것도 정비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A' 등급 이하 기업들도 회사채 시장을 통해 자생적으로 자금을 확보할 수 있도록 투자자들에게 각종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 때 되면 나오는 대책인 하이일드 펀드 시장 활성화 방안을 미리 다시 한번 점검해 보는 것도 필요하다. 긴축이 기업들에 공포가 아닌 새로운 시장이 열리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신호를 보낼 책임은 정부에 있다.

(기업금융부장 고유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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