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SK그룹 거의 모든 계열사가 번갯불에 콩 볶듯이 바쁘게 돌아가고 있다. 사업구조와 지배구조를 재편하고, 지분을 팔기도 사기도 한다. 금융시장 투자자들과의 접촉도 늘린다. 대규모 자금을 적시에 확보하기 위한 전략과 계획도 공유한다. 인하우스 사업들을 쪼개 미래비전을 제시한다. 종착지는 기업공개(IPO)다. 국내 어느 대기업 그룹보다 강력하고 액티브하다. 이러한 모든 경영활동의 목표는 기업가치 확장이다. 기저에는 '파이낸셜 스토리'라는 원칙이 깔려있다.

SK텔레콤은 ICT투자전문사를 분할한 SK스퀘어를 올해 11월 공식 출범한다. 반도체부터 미래 혁신 기술까지 ICT 포트폴리오를 확장하고 적극적으로 투자할 계획이다. 2025년 순자산가치(NAV)를 현대보다 3배 많은 75조원으로 늘리겠다는 포부다. 특히 반도체 분야에서의 공격적인 투자와 인수·합병(M&A)을 추진한다. 앱마켓(원스토어)과 커머스(11번가), 융합보안(ADT캡스), 모빌리티(티맵모빌리티) 등의 기업가치도 확장해 IPO를 추진한다.

SK이노베이션은 배터리와 석유개발(E&P) 사업을 독립 회사로 분할해 10월 SK배터리와 SK이엔피를 출범시킨다. 사업별 투자 유지와 사업 가치 증대를 통해 경영 환경에 적극적이고 신속히 대응하겠다는 이유를 내세운다. 분할 회사도 결국 IPO를 추진할 가능성이 크다. SK이노베이션은 윤활유 사업 자회사인 SK루브리컨츠의 지분 40%를 사모펀드에 1조1천억원에 팔기도 했다. 자회사 SK종합화학의 지분 최대 49%를 매각하는 작업도 진행하고 있다. SK종합화학의 사명도 '지구를 중심에 둔다'는 의미의 SK지오센트릭으로 바꾼다. 세계 최대 폐플라스틱 도시유전 기업이 되겠다는 성장 목표도 내세웠다.

에너지 계열사 SK E&S도 대규모 자금 유치를 추진하고 있다. 글로벌 투자은행(IB) 들을 불러 모아 자금조달 방안을 고민 중이다. 회사 총자산의 20~30%에 이르는 대규모 자금을 확보하겠다는 게 목표다. 2차전지 동박 사업을 하는 SK넥실리스를 인수해 기업가치가 한층 확대된 SKC는 폐플라스틱에서 기름을 뽑아내는 열분해유 사업을 본격화하는 등 사업 포트폴리오를 다양화한다. 투자 전문 지주사 SK㈜는 첨단소재 계열사인 SK머티리얼즈를 합병한다. SK㈜는 국내외 소재, 바이오, 모빌리티 기업 등에도 적극적인 지분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SK건설은 SK에코플랜트로 이름을 바꿔 폐기물업체 4곳에 대한 몰아치기 M&A를 진행했다. 건설업을 넘어 아시아 최대 환경기업으로 도약하겠다고 한다.

SK그룹 주요 계열사들이 이처럼 숨 가쁘게 돌아가는 것은 최태원 회장의 제시한 '딥체인지'와 '파이낸셜 스토리'라는 2개 방향과 원칙에 기반한다. 작년 6월 말 최 회장은 확대경영회의를 주재하면서 주요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들에게 총체적으로 기업가치를 높일 방안을 찾아 강력하게 실행하라고 주문했다. 10월에 열린 CEO 세미나에서도 매출과 영업이익 등의 종전 재무성과를 바탕으로 한 기업가치 평가 방식은 유효하지 않다면서, 구체적인 목표와 실행 계획이 있고 시장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파이낸셜 스토리를 찾을 것을 재차 당부했다. 최 회장이 거듭 강조하는 파이낸셜 스토리의 요체는 고객과 투자자, 시장이 모두 신뢰할 수 있는 재무 성과 스토리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전통적 재무성과만으로 기업이 평가받던 시대는 지났다는 게 최 회장의 판단이다.

최 회장의 이러한 강력한 주문은 새로운 기회의 창출을 목표로 한 측면도 있지만, 산업 생태계와 금융시장의 환경 변화에 따른 위기를 사전적으로 극복하려는 측면이 강하다. SK그룹은 대규모 M&A를 통해 현재의 에너지·반도체·ICT 사업 포트폴리오를 다져왔다. 하지만 통신과 ICT 산업은 어떤 다른 산업보다도 빠르게 융합과 통합을 가속하면서 새로운 생태계를 만들어 내고 있다. 에너지 산업은 강력한 글로벌 환경 규제로 인해 사업구조의 새로운 탈바꿈을 요구받고 있다. 거대 공룡의 몸집으로 현실에 안주할 경우 회사의 존립 자체가 위협받을 수 있는 상황이다. 그래서 최 회장의 강조하는 딥체인지와 파이낸셜 스토리는 일종의 위기 대응 전략인 셈이다.

SK그룹의 변화는 우리 산업과 금융시장에도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이미 여러 기업에서 SK그룹의 변화 추진 전략을 모티브로 삼아 스터디를 하고 있다는 얘기도 있다. 벤치마킹으로 삼아 선제적 변화 전략을 짜고 있는 것으로, 긍정적 도미노 효과가 파급된다면 그 자체로도 긍정적일 수 있다. 또한 IB를 비롯한 투자 사이드가 중심이 된 금융시장에는 큰 장이 서는 이벤트가 된다. 단순히 자금조달 조력자가 아닌 기업가치 향상과 개선에 대한 솔루션을 제시하는 IB의 역할을 제공할 다양한 기회가 만들어질 수 있다. 물건 잘 만들어 잘 팔면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란 믿음이 강하던 시대는 지났다. 우리가 이만큼 벌었으니 그에 합당한 돈 좀 빌려달라고 떼쓰던 시대도 지났다. 고객과 시장이 신뢰할 수 있는 합당한 신용과 전략을 보여줘야 한다. 그게 바로 기업가치다. 가치가 없는 기업의 제품을 살 고객은 없다. 가치가 없는 기업에 돈을 빌려줄 금융사와 투자자는 없다. 그래서 SK그룹의 파이낸셜 스토리의 성공 여부를 주목해 본다.

(기업금융부장 고유권)

pisces738@yna.co.kr

(끝)

본 기사는 인포맥스 금융정보 단말기에서 10시 55분에 서비스된 기사입니다.
저작권자 © 연합인포맥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