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정부의 가계대출 규제로 금융권 대출금리가 급등하고, 고신용자와 중·저신용자의 대출금리가 거꾸로 가는 금리 왜곡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급기야 은행의 폭리를 막아달라는 국민청원까지 등장했지만 정부 당국이 금리 문제에 개입하지 않겠다며 선을 긋고 나섰다.

고승범 금융위원장은 최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앞으로 금리 인상 가능성을 생각하면 예대마진이 확대되는 그런 시대가 계속될 수 있다"면서 "예대마진 문제는 가격과 관련돼 언급하기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홍남기 부총리도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은행들이 예대마진으로 폭리를 취하고 있다'는 양정숙 무소속 의원의 지적에 "은행의 가산금리에 정부가 강제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고 답했고, 정은보 금융감독원장도 "금리라는 것은 시장에서 결정되는 가격으로 시장 자율결정 과정에 대해서는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한 발 뺐다.

정부가 금리 문제에 개입하지 않겠다며 내세운 카드는 '시장 자율'이다.

대출금리는 기준금리에 가산금리를 더해 결정된다. 지난 8월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 이후 지표금리가 상승한데다 대출 수요 조절로 은행들이 가산금리까지 올리면서 대출금리가 급등할 여지가 충분했다는 설명이다.

가산금리는 은행들이 대출 관리 비용, 원가 등을 고려해 마진을 붙이는 방식으로 결정되는데, 전적으로 은행의 자율 권한이다. 우대금리 역시 은행 판단에 따라 얹거나 뺄 수 있는 영역이다. 금융당국이 이를 건드린다는 것은 시장 자율을 깨트리는 것이라고 얘기한다.

물론 정부 논리가 틀렸다는 건 아니다. 경쟁시장에서 시장가격은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된다. 시장(대출받고자 하는 이) 수요가 많아졌는데 공급(대출총량)이 원활하지 않을 경우 상품 격은 오를 수밖에 없다. 당연한 시장경제 논리다.

다만 금융당국 수장들이 언급한 '시장 자율' 논리가 대출공급측면에서는 적용되지 않고 있다는 게 갸우뚱하게 만든다.

정부는 가계대출이 폭증하자 대출 증가율을 억제하기 위해 은행에 강력한 총량 관리를 지시했고, 대출 증가율이 높은 은행들은 연말까지 대출을 중단하거나 한도를 축소했다. 현재 금융사들은 매년 초 가계대출 취급계획을 마련해 금융당국에 제출하고 이를 지켜야 한다. 계획보다 대출을 많이 실행시키면 당국의 패널티도 받는다.

금융당국이 시장 자율을 논하면서 다른 면에서는 공급을 철저히 감시하고 숫자를 규제하는 모습이 혼란스럽다. 가계대출 총량관리를 하면 가격지수가 왜곡될 수밖에 없다. 가격 왜곡을 설명하기 위해 '시장 자율'을 들이미는 모습이 스스로 아이러니하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반문하고 싶다.

대출금리에 대한 금융당국의 원칙대로라면 민간금융회사의 가계대출 총량도 자율에 맡겨야 한다.

현 정부의 모든 금융정책은 '가계부채 관리'로 귀결된다. 금융권 대출총량 관리도,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 조기 강화, 대출 한도 축소도 가계부채 축소를 위해서다. 대출금리 상승도 가계부채 관리라는 명분에 부합되기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건 아닐까.

불과 2년 전만 해도 금융당국은 은행들이 가산금리나 목표이익률 산정이 체계적·합리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면서, 모범규준을 제정하고 점검에 나섰다. 금리 인상기에 예금금리가 대출금리 상승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은행들의 금리 산정 적정성 문제를 살핀 건 오래된 일이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이 문제가 '시장 자율'이라는 명분으로 사라졌다. 내년에도 금리 상승추세는 이어질 전망이다. 가격 왜곡은 더 커질 수 있고, 이자 부담을 호소하는 금융소비자들의 원성도 그만큼 높아질 게 뻔하다.

최근 가계대출 총량 규제는 이른바 '구성의 오류'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정부가 규제책을 꺼낸 이유가 이렇다면 대출금리는 전적으로 시장 자율에 맡겨야 한다는 말까진 하지 말았어야 한다.

가계부채 문제를 금융의 논리가 아니라 정치의 논리로 풀려고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금융규제와 정책이 일관성 없이 그때그때 입맛에 따라 달라진다면 금융회사나 금융소비자들의 불만만 커질 게 뻔하다. (정책금융부 이현정 기자)

hj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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