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주부터 5대은행 주담대 현장점검…가계대출 조이기 본격화
정책 기조 손바닥 뒤짚듯 '급한 불 끄기' 급급…시장선 대혼란

 

(서울=연합인포맥스) 이현정 이수용 기자 = 가계 빚이 사상 최대로 불어나자 금융당국이 은행권 가계대출 조이기에 나섰다.

올해 초만 해도 은행들이 과도한 이자장사를 하고 있다며 대출금리 인하를 압박하더니, 이번엔 되레 은행들이 과도한 대출을 내주고 있다며 긴급 점검에 나서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은행들은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정부 방침에 호응해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 등 차주의 빚 부담 완화를 위한 상품을 내놨더니 불과 몇 달도 안 돼 가계대출 증가의 주범으로 지목하고, 부동산 시장 연착륙을 유도하겠다며 대출 규제를 완화해 놓고선 금세 기조를 바꾸자 혼란스러운 모습이다.

시장에선 금융당국이 가계부채 증가의 근본 원인을 파악하기 보다 발등의 불 끄기에 급급한 '땜질식' 처방만 하다 보니 정책의 일관성을 잃은 게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대출 줄여라"…확 바뀐 기조에 은행만 '뭇매'

17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다음 주부터 은행권 가계대출 취급실태에 대한 종합 점검에 나선다.

KB국민·신한·우리·하나·NH농협 등 5대 은행을 시작으로 인터넷은행과 지방은행까지 약 두 달간 대대적인 현장점검을 진행한다.

금감원은 은행들이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보다 과도한 대출을 내어주고 있는지, 대출실적 경쟁을 부추기는 영업전략을 펼치고 있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철저히 살펴볼 계획이다.

금융당국이 가계부채 증가의 원인으로 지목한 건 50년 만기 주담대와 인터넷은행의 비대면 대출이다.

초장기 주담대 상품은 상환 기간이 길어 차주의 원리금 상환 부담을 덜어줄 수 있고, 전체 대출 한도를 늘릴 수 있는 이점이 있다.

이 상품의 시초는 당국의 정책금융상품인 특례보금자리론이다.

금융위원회는 지난해 6월 가계대출 정상화 방안을 발표하면서 금리 상승기 취약 차주 부실에 대비하기 위한 대책으로 '초장기 정책모기지' 도입을 제시했고, 그해 8월 주택금융공사가 50년 만기 보금자리론과 적격대출을 출시했다.

은행들도 이에 부응하기 위해 비슷한 상품을 속속 출시했는데 이제 와서 DSR 규제를 우회하는 데 쓰이고 있다고 의심을 받는 것도 모자라 금융위는 만 34세 이하로 가입 연령을 제한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처음엔 가이드라인조차 제시해주지 않다가 최근 가계대출이 반짝 늘었다는 이유만으로 기조를 확 바꿔버리니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모르겠다"면서 "상생금융 하라며 대출금리를 내리라고 할 때는 언제고 냅다 대출을 조이라고 하니 다시 금리를 올려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특례보금자리론 역시 도입 취지와 달리 가계대출을 늘린 원흉으로 지목받자 모든 홍보를 중단하고 금리를 인상한 데 이어 공급 규모를 제한하기 위한 추가 조치를 마련 중이다.

인터넷은행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올해 들어 낮은 금리를 내세워 공격적으로 주담대 영업에 나선 탓에 가계대출을 늘린 주범으로 몰렸기 때문이다.

지난달 금융당국이 '은행권 경영·영업 관행·제도 개선 방안'을 발표할 때까지만 해도 5대 은행 중심의 과점체제를 깨기 위한 방안 중 하나로 인터넷은행 활성 화를 내세웠으나, 불과 한 달 만에 인터넷은행의 설립 취지에 맞게 중저신용자 대출 강화로 영업을 제한시키려는 모습이다.

금융당국은 인터넷전문은행의 중·저신용자 대출 의무비율을 높이거나 주택담보대출(주담대)까지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되면 인터넷은행이 금리 경쟁력을 무기로 시중은행과 겨루기가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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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권 주택담보대출 4개월 연속 증가
(서울=연합뉴스) 신현우 기자 = 서울 시내 한 시중은행 앞에 붙어 있는 대출상품 관련 현수막. 2023.7.13 nowwego@yna.co.kr

 


◇원인은 따로 있는데…섣부른 판단에 정책 일관성 사라져

은행들은 가계대출 증가의 근본 원인이 다른 데 있는 만큼 50년 만기 주담대 연령제한과 인터넷은행의 주담대 억제책이 얼마나 효과를 나타낼지 의문을 표하고 있다.

지표상 일시적으로 줄어들 수 있겠지만, 또 언제 뒤집힐지 모르는 대책에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우선, 50년 만기 주담대의 경우 상품이 출시된 지 한 달 남짓한 상황에서 가계부채 증가 주범으로 몰고 가기엔 성급했다는 지적이다.

최근 한 달간 5대 은행이 취급한 50년 만기 주담대 규모는 1조2천억원 수준이다.

7월 말 기준 5대 은행의 주담대 잔액이 512조8천억원임을 고려하면 전체 주담대 중 0.2% 수준에 불과하다.

게다가 이는 7월 중 2조4천억원 증가한 정책 모기지 상품과 비교해도 증가세가 절반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

인터넷은행의 가계 대출도 급격하게 증가했으나 가계부채 원흉으로 몰고 가기에는 규모가 미미하다.

카카오뱅크와 케이뱅크의 여신 잔액은 2분기 말 각각 33조9천140억원, 12조6천731억원으로 작년 말 대비 6조260억원, 1조8천970억원 늘어났다.

같은 기간 5대 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이 14조2천억원 줄어 인터넷은행의 증가세가 두드러지지만, 5대 은행의 가계 대출은 2분기 말 기준 678조원에 달한다.

윤호영 카카오뱅크 대표는 전일 인터넷은행의 주담대가 가계부채 증가 원인으로 지목된 것에 대해 "전체 자산에서 카카오뱅크 주담대가 차지하는 비중이 2%도 안 된다"며 반박했다.

금융권 안팎에서는 최근 가계부채 증가가 부동산 경기가 살아나고 있는 큰 흐름에서 시작됐다고 보고있다.

KB부동산 주간 아파트 매매가격 증감률에 따르면 수도권 아파트 매매 가격은 작년 6월 이후 하락세를 이어오다 이번 주 기준 전주 대비 0.03% 오르면서 1년 2개월 만에 상승 전환했다.

전국 동향을 보더라도 3월 넷째 주 0.43%까지도 하락하던 아파트 매매가격은 최근 전주 대비 0.01% 올랐다.

정부가 DSR 규제를 일부 완화했고, 특례보금자리론 등 대출 상품이 부동산 매수 심리를 자극한 결과로 보여진다.

과거에 비해 금리 수준이 높아진 상황에서 부동산 가격 상승에 대한 기대가 없다면 매수도 일어나지 않았을 거라는 분석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부동산 매수 대기 상태였던 가계가 많았던 상황에서 금융당국이 대출 규제를 풀었고, 앞으로 금리가 더 내려갈 것이란 판단에 지금 집을 사는 게 맞다고 판단한 수요가 몰린 것"이라며 "50년 만기 주담대나 인터넷은행 대출을 주범으로 주목하는 건 무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 금융지주 연구원은 "가계대출을 자극한 건 정부가 전매제한 기간 등 부동산 규제를 푼 데다, 빚 부담을 완화하는 정책을 펼친 영향이 크다"면서 "큰 흐름을 따라가며 종합적인 차원에서 주택 가격 상승을 용인해도 되는지에 대한 정책 전반의 판단이 필요한 시기"라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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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권 주택담보대출 4개월 연속 증가
(서울=연합뉴스) 신현우 기자 = 서울 시내 한 시중은행 앞에 붙어 있는 대출상품 관련 현수막. 2023.7.13 nowweg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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