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의 시장을 대하는 태도가 미묘하게 달라졌다. 여러 차례 시장과의 소통을 강조하기도 했다. 지난 25일 금융통화위원회 기자 간담회에서 이주열 총재의 통화정책 관련 발언은 자신감이 넘쳤다. 하지만 시장을 언급할 때는 발언 하나하나에 신중함이 느껴졌다. 채권금리 폭등으로 큰 상처를 안고 있는 시장 참가자들의 심리를 다독이려 했던 걸까. 시장은 긍정적으로 화답했다. 금통위의 기준금리 인상 결정에도 채권시장은 강세(금리 하락)로 마감했다. 예상 수준의 기준금리 결정과 한은 총재의 다소 옅어진 매파 스탠스에 시장은 모처럼 활기를 찾았다.

이 총재는 사실상 내년 1분기 추가 금리 인상을 예고했다.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금통위가 1분기 중 1월과 2월에만 열릴 예정이라 홀짝 게임이나 다름이 없게 됐다. 이 총재의 정확한 워딩은 기자들의 질문 끝에 나온 "(내년 1분기 인상 가능성을) 배제하지는 않는다"였으나, 이 정도 언급이 됐으면 안 올리는 게 더 이상한 상황이 됐다.

이 총재의 이 발언이 나오며 국채선물 가격이 일시적으로 밀리기도 했지만, 견조한 강세 분위기는 유지됐다. 앞서 나온 이 총재의 시장 달래기 발언이 주효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시장금리가 기준금리 인상을 선반영하는 과정에서 일부 참가자들이 보유채권을 매도해 포지션을 조정함으로써 시장 충격이 더 커졌을 것이라 평가했다. 그러면서 시장 참가자들의 기대 쏠림이 발생해서 금리 변동성이 지나치게 확대되지 않도록 긴밀하게 소통하겠다고 했다. 통화당국과 시장의 소통 부족에 따른 수급 꼬임 지적 등에 대해 총재가 일정부분 인정하고, 개선하겠다는 의지로 받아들여졌다.

이 총재가 지금의 금리인상 기조가 긴축(타이트닝)이 아닌 정상화(노멀라이제이션) 과정이란 점을 거듭 강조한 것도 심리 안정에 도움을 줬다. 이전에도 한은 측이 언급했던 내용이지만, 이 총재의 자세한 설명이 추가되며 시장에 안도감을 줬다. 그는 "위기시 이례적으로 낮춘 금리는 경기 수준에 맞춰 조정하는 게 합당하다. 이례적으로 낮은 금리를 끌고 갈 명분이 없다"고 했다.

시장은 긴축 전환의 기준금리 레벨로 평가받는 2.0% 수준은 물론 1.75%도 어려울 수 있겠다고 봤다. 내년 1분기 중 기준금리가 1.25%로 인상되고, 추가로 25bp 더 올라 1.5%가 되더라도 감내 가능한 수준이라 판단하는 분위기다. 실제 국고채 3년물 기준으로 시장 금리는 최근까지도 기준금리 1.75% 이상 수준을 반영해왔다. 전일 국고3년 금리가 급락하면서 2%선이 깨졌으니, 이제부터 진검승부가 본격화할 여지는 생겼다.

한은 기준금리를 좌우할 최대 변수는 물가 추이가 될 전망이다. 한은은 올해는 물론 내년 물가 상승률 전망치를 대폭 올렸다. 내년 1분기 인상 이후에도 물가 급등이 지속되는 분위기라면 한은의 '인플레 파이터' 면모가 재부각될 여지가 있다. 내년 하반기로 예상되는 연방준비제도(Fed)의 늦깎이 금리 인상 행보도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다행히 한은의 인플레 시계는 일단 내년까지로 한정하고 있다. 내후년(2023년) 한은의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는 정책 목표인 2.0%를 밑도는 1.7%다. 내년 물가도 상반기는 높고(2.3% 상승), 하반기는 다소 둔화하는(1.8% 상승) '상고하저'의 시나리오를 그리고 있다. 한은의 물가 전망대로라면 기준금리 인상을 둘러싼 통화정책 이슈는 내년 상반기에 가열됐다가 점차 둔감해질 가능성이 열려 있다. 내년 1분기 기준금리가 1.25%로 인상된 이후로는 지표에 좌우되는 데이터 디펜던트(Data dependent) 기조가 더 강해질 것이다. 이때부터 한은 금통위의 치열한 고민이 뒤따르겠지만, 시장의 통화정책 민감도는 갈수록 옅어질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금융시장부장 한창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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