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유럽연합(EU)의 경제강국 독일이 '유럽의 병자'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주요 7개국(G7) 가운데 가장 성장이 더딜 것으로 예상되면서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독일의 올해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전년 대비 0.3%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G7 중 유일한 마이너스 성장이다.

유럽 최대 경제 대국인 독일이 병자 취급을 받는 건 놀라운 일이다. 독일은 2000년대 들어 과감한 고부가가치 제조업 투자로 눈부신 성장을 일궈왔다. 유럽의 병자 딱지는 주로 그리스, 이탈리아 등 경제위기를 맞이했던 남유럽 국가에만 해당하는 줄 알았다. 올해는 독일이 유럽 내 이들 국가를 제치고 가장 유력한 병자 후보가 됐다.


계속 오르는 에너지 요금
[연합뉴스 자료사진]


유럽 경제를 지탱하던 독일이 걱정거리 신세로 전락한 주된 이유로는 에너지 위기가 꼽힌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전 세계가 맞닥뜨린 공통 사항이지만, 독일은 러시아 의존도가 과도하게 높다는 게 문제가 됐다. 독일 에너지 정책의 구조적 문제가 위기 과정에서 드러났다는 얘기다. 전쟁 직전 독일의 러시아산 에너지 비율은 석탄과 천연가스 모두 50%를 웃돌았다. 석유 의존도도 30%대에 달했다. 전쟁이 터지면서 독일은 러시아산 에너지 이용을 중단해야 했고, 독일 경제는 치명상을 입었다. 독일의 지난해 전기요금은 전년보다 열배 넘게 급등했다.

독일은 제조업 비율이 높은 편이다. 여기에 대(對)중국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다는 점도 경제에 어려움을 가중했다. 독일의 GDP 대비 제조업 비율은 2019년 기준으로 19%에 이른다. 올해 상반기 독일의 대중국 교역액은 EU 전체 교역액의 4분의 1 수준에 달했다. 중국 경기가 빠르게 위축되면서 독일 제조업 수출은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는 분위기다.

독일의 제조업 경쟁력이 예전 같지 않다는 평가도 나온다. 독일의 자랑이었던 자동차 산업이 대표적이다. 기존 내연 기관차의 파워는 여전하지만, '전기차 대세'라는 시대 변화에 제때 따라가지 못하면서 불거진 논란이다. 지난해 전기차 시장은 미국 테슬라와 중국 업체의 경쟁 구도였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전기차 시장 점유율은 테슬라가 16.4%로 가장 높았고, 중국 BYD(11.5%), 중국 상하이차(11.2%) 순이었다. 독일 업체는 폴크스바겐이 7.2% 점유율로 거의 유일하게 순위권(4위)에 올랐다. 세계 전기차 시장 경쟁이 심화하면서 자동차 강국의 위상도 빠르게 약화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독일 경제 위기는 우리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준다. 독일 산업 구도와 많은 점에서 닮은 꼴이기 때문이다. 우리 경제 역시 제조업 비중이 높은 편인 데다, 대중국 의존도가 과도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IMF는 중국 경제가 앞으로 3년 내 3%대 저성장 국면에 진입할 가능성을 경고하고 있다. 중국에 대한 디리스킹(위험 축소) 작업이 늦어질수록 타격이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미 우리나라의 화장품과 석유화학, 철강 등 산업은 중국발 리스크에 커다란 생채기를 입었다. 반면에 북미와 유럽 등으로 대체 시장을 개척해온 자동차와 2차전지, 신소재 기업군은 때아닌 호황을 맞이하고 있다.

독일 자동차 업체의 어려움을 반면교사로 삼아 강자의 논리에 안주해서도 안 될 일이다. 경기와 산업 사이클이 급변하는 시대에서 변화의 흐름을 읽어내지 못하면 강자의 위치는 보장하기 어렵다. 생성형 인공지능(AI) 시대에 뒤처지면서 글로벌 빅테크의 직접적인 위협을 받게 된 국내 플랫폼 기업, 온라인 혁명기에도 오프라인에 매몰된 대형 유통업체 등의 현실을 목도해야 한다.


AI 확산에 수요 급증…삼성·SK, HBM 선점 나서 (CG)
[연합뉴스TV 제공]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기업의 발 빠른 대응은 그나마 고무적이다. 이들은 세계 1, 2위 메모리 반도체 기업이란 타이틀에 안주하지 않고 차세대 고성능 반도체 D램인 고대역폭 메모리(HBM) 시장에서 치열하게 경쟁 중이다. AI 분야에서 쓰이는 그래픽처리장치(GPU)에 탑재되는 메모리로, 초거대 AI 시대에 대비한 발 빠른 행보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HBM 시장 점유율은 SK하이닉스 50%, 삼성전자 40%로 전세계 시장을 석권하고 있다. 올해는 두 회사 점유율 합이 95%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됐다.


인도 방문 중인 정의선 회장
[현대차그룹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현대차, 기아의 적극적인 전기차 시장 공략 전략도 긍정적이다. 전 세계 시장에선 5위권이지만, 테스트 베드라 할 수 있는 미국 시장에서 테슬라에 이어 2위를 차지하며 높은 잠재력을 보여준다. 탈중국의 대안으로 인도를 선택해 적극적인 마케팅 공세에 나서는 것도 눈길을 끈다. 시대의 변화를 읽어내는 기업과 그렇지 못한 기업의 간극은 더 빠르고, 분명하게 벌어질 수밖에 없다. (취재보도본부 기업금융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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