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내가 더 버티면 KT가 더 어려워질 것 같다". 윤경림 KT 대표 후보가 중도 사의를 표명하면서 남겼다는 말이다. 전해지는 말이라 정확하지는 않지만, 윤 후보의 심정이 이럴 것이란 점은 공감이 간다. KT의 대주주 국민연금과 현대차 등의 압박은 버텨볼 만하다. 주주총회에서 표 대결로 승부를 보면 된다. 정부와 여당의 노골적인 퇴진 압박은 견디기 어렵다. 특히 정계 발로 나왔던 여권 관계자의 발언은 날이 서 있다. 윤 후보가 현직 이사회 멤버라는 점에서 심판이 선수로 뛰는 격, 윤 사장을 후보군에 넣어 그들만의 이익 카르텔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식이다. 사실 여부를 떠나 검찰 수사에 대한 부담도 컸을 것이다. 윤 후보는 일감 몰아주기 관련 의혹 등으로 검찰에 고발된 상태다. 최근 서울중앙지검은 이 사건을 공정거래조사부에 배당했다.


KT 대표이사 윤경림 후보
[출처:KT]




윤 후보는 결국 중도 사퇴를 결정했다. 코너에 몰린 KT 이사회가 주총까지 가보자고 설득했지만, 전방위적 압박을 이겨낼 재간이 없다. 이사회가 윤 후보에게 완주해보자고 설득했던 건 주총에서 표 대결을 하면 해볼 만하다는 계산이 깔려있었을 것이다. 5% 이상 대주주만 놓고 보면 윤 후보가 확실히 불리하지만, 외국인 주주와 소액주주가 적극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할 경우 상황이 반전될 수 있었다.

KT의 최대주주는 8.53%의 지분을 보유한 국민연금이다. 이외에 현대차그룹(7.79%), 신한은행(5.58%) 등이 주요 주주다. 정부의 입김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이들은 윤 후보에 대해 반대표를 행사할 가능성이 크다. 반면에 소액주주들은 KT의 기업가치가 구현모 대표 재직 이후 크게 높아졌다는 점에서 윤 후보를 포함한 현 경영진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린다. 개인 주주들은 KT주주모임 카페를 통해 윤 후보 찬성표를 모집해왔다. 최대 2%까지는 찬성표를 모을 수 있다고 자신한다.

KT 지분 44%에 달하는 외국인 주주의 향방이 변수가 됐을 것인데, 윤 후보에 우호적일 가능성에 무게가 실렸다. 외국인 주주의 결정에 영향력을 미치는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가 윤 후보 측에 섰기 때문이다. 글로벌 양대 의결권 자문사인 ISS와 글래스루이스는 모두 윤 후보의 선임안에 찬성을 권고했다. KT의 중장기 디지털화 전략인 '디지코'에 대해 윤 후보의 기여도를 인정했다. 윤 후보 탈락에 따른 경영공백과 주주가치 훼손에 대한 우려도 전달했다. 국내 의결권 자문사인 한국ESG연구소도 윤 후보에 대해 찬성 의견을 냈다.

윤 후보가 구현모 전 후보에 이어 중도 사퇴하면서 이사회는 다시 대표 후보 선임 작업을 하게 됐다. 경영 공백이 불가피하다. 당장 오는 31일 예정된 주총에선 대표이사 선임 안건이 의안에서 제외된다. 나머지 사내이사 후보들도 자격이 폐기된다. 임시 주총 일정을 다시 잡아야 하는데 최소 두 달가량의 시간이 필요하단 전망이 나온다. 통상 연말에 이뤄지는 임원 인사도 올스톱 상태라, 신규 사업과 투자 등 의사결정은 한동안 없을 거라 봐야 한다.

주인없는 기업 KT 대표 선임을 둘러싼 논란은 어찌 보면 예정된 수순이다. 지금의 지배구조 체제에서는 정권 교체기마다 불거질 수밖에 없는 이슈다.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몇 가지 개선돼야 할 필요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우선 소유분산을 더 확대하는 일이다. 지금처럼 5% 이상 대주주가 두세 곳 정도에 그친다면 이들의 입지가 절대적일 수밖에 없고, 정치적인 입김에서 자유롭기도 어렵다. 주주 구조를 더 다양화하고 소유분산을 확대할 필요성이 제기되는 이유다.

소유분산 기업의 경우 이사회 내 사외이사 비율을 더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KT는 현재 4명의 사내외사와 9명의 사외이사로 구성돼 있다. 사외이사 비율은 69%다. 오너가 있는 재계에서도 사외이사 비율을 높이는 추세다. 2021년 말 기준으로 삼성바이오로직스(88.9%)와 삼성SDI(83.3%), 셀트리온(80%) 등의 사외이사 비율은 80%를 웃돈다. SK텔레콤의 비율도 75%에 달한다. 이참에 KT는 사외이사 비율을 더 높여 경영의 독립성과 투명성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 이사회의 의사결정이 공정하고 투명한 구조가 돼야 대표이사 선정 과정에서도 잡음이 줄어들 수 있다. 역설적으로, 이사회를 개혁함으로써 이사회의 입지를 더 강화하는 것만이 제2의 KT 대표 잔혹사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취재보도본부 기업금융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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