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40여 년 만에 찾아온 인플레 공포에도 금융시장은 크게 놀라지 않았다. '예고된 악재는 악재가 아니다'라는 오랜 금융시장 격언이 어느 정도 먹혀든 셈이다. 시장은 이미 물가 급등을 예상했고, 예상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숫자는 재료로서의 가치를 상당 부분 소멸했다. 미국의 11월 소비자물가지수(CPI) 발표 직후 시장의 분위기다. 11월 CPI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8% 올랐다. 1982년 6월 이후 최고치였지만, 예상 수준이라고 평가됐다. 덕분에 발표 당일인 지난 주말 뉴욕 증시와 채권 가격은 동반 상승했다.

이런 역발상의 관점에서 우려되는 건 시장의 안도감이 조금씩 살아나고 있다는 점이다. 물가 급등이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오미크론 변이 등에 대한 공포 심리가 일부 잦아드니 안도 랠리에 대한 시장 기대가 점차 커졌단 얘기다. 기대가 커질 때 출현하는 악재는 그야말로 돌발 악재가 된다. 시장에 미치는 충격파가 훨씬 커질 수밖에 없으니 참가자들은 돌발 악재에 대비해 항상 눈에 불을 켜고 있어야 한다.

미국 시장으로 보면 물가 급등세가 당분간 지속되고, 이에 따른 연방준비제도(Fed)의 돈줄 죄기는 불가피한 수순이다. 여기까진 예고된 악재다. 돌발 악재로의 변신 가능성은 열려 있다. 연준의 테이퍼링(자산매입 감축) 속도가 예상보다 빨라지고, 기준금리 인상 시점도 앞당겨질 때다. 시장의 컨센서스 변화에 따라 예고된 악재가 돌발 악재로 급변하는 상황이 연출될 수 있다는 얘기다.

연준의 테이퍼링은 내년 6월께 종료, 하반기 이후 단계적 금리 인상 시나리오가 시장 컨센서스였다. 상반기 금리 인상을 예상하는 시각도 있었지만, 지난주로 시계를 돌려봐도 어디까지나 소수 의견이었다. 시장 컨센서스가 소수 의견으로 옮겨올 때 시장은 또 한 번 충격을 받을 수 있는데 지금이 그런 분위기다. 주말을 지나면서 연준의 테이퍼링이 3월에 종료되고, 곧이어 금리 인상이 단행될 것이란 전망이 속속 나오고 있다. 당장 오는 14일(현지시간) 부터 시작되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 관심이 집중되는 이유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의 발언 하나하나에 주가와 금리가 출렁일 수밖에 없는 분위기다.

우리나라 상황을 보면 상대적으로 통화정책 방향을 둘러싼 불확실성은 크지 않다. 한국은행이 막 금리 인상 사이클에 진입했을 당시와는 분위기가 180도 달라졌다. 다행이라 해야 할지, 주요국 중앙은행에 앞선 한은의 선도적인 금리 인상이 지금은 한결 여유를 갖게 해준다. 연준의 긴축이 본격화하더라도 한은은 좀 더 유연한 스탠스를 취할 여지가 생겼다.

한은의 고위 관계자가 최근 공식 브리핑 자리에서 "긴축 수준으로까지 금리를 인상하는 것은 지금 시계에선 생각하기 어렵다. 시장의 내년 통화정책 경로에 대한 기대가 한은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언급한 것은 정책 방향에 대한 자신감의 발로다. 여기에 통화정책에 대한 시장 기대를 언급한 것은 시장과의 소통도 계속 강화하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통화당국이 정책 방향에 자신감을 갖고 있고, 그 방향이나 강도에 대한 컨센서스가 소통을 통해 적절하게 형성된다면 돌발 악재가 나올 여지는 많지 않다. 당분간 미 연준발(發) 재료가 시장 이슈를 상당 부분 잠식하겠지만, 국내 정책의 안정감이 시장 심리에 도움을 줄 것이라 기대한다. (금융시장부장 한창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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