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미래 성장을 위한 '고도의 판단과 결정'일까, 아니면 대주주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술적 꼼수'일까. 기업의 물적분할을 둘러싸고 주식시장이 시끄럽다. 물적분할은 기업이 특정 사업을 떼어내 법인을 새로 설립하고, 그 법인의 지분 100%를 모회사가 갖는 기업분할 방식이다. 특히 분할 신설회사를 주식시장에 재상장하는 '쪼개기 상장'이 빈번해지면서 소액주주들의 분노는 더욱 커지고 있다. 왜 내가 가져야 할 투자자산의 미래 가치를 뺏어가느냐는 것이다. 기업들은 그 불똥이 자신들에게 튈까 봐 긴장한다. 물적분할을 결정한 일부 기업들의 조치를 막아달라는 소액주주의 목소리는 청와대 국민청원에까지 올랐다. 대선 후보들은 소액주주의 목소리를 공약에 담겠다고 선언한다. 금융당국 수장도 불합리한 점이 있다면 제도 개선에 나서겠다고 한다. 갈등이 심상치 않다.

기업의 물적분할을 둘러싼 소액주주들의 반발이 크게 이슈화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20년 9월 LG화학의 배터리 사업 분할 결정이었다. LG화학은 치열한 경쟁을 뚫고 경쟁력을 갖춘 글로벌 배터리 기업이 되기 위해선 대규모 자금 조달이 필요하다고 봤다. 화학 사업에서 번 돈으로 적자를 보는 배터리 사업에 투자하는 일이 반복돼선 경쟁력을 갖추기 힘들다는 판단이었다. 사업 자체를 떼어내 새 회사를 만들고 상장을 한 뒤 대규모 자금을 확보하고 기술력을 더 키우겠다는 복안이었다. 하지만 소액주주들은 단단히 화가 났다. 배터리를 보고 투자했더니 홀라당 떼어내 LG화학이 다 먹는다며 비난을 퍼부었다. 물적분할 발표 이후 며칠 만에 시가총액은 5조원 이상 날아갔다. 이후 주가는 회복돼 100만원을 넘어서기도 했지만, 작년 말에는 60만원대로 곤두박질쳤다.

지난해 11월 콘텐츠 제작사업의 물적분할을 발표한 CJ ENM도 주가가 급락했고, 배터리 사업을 떼어내 SK온을 설립한 SK이노베이션 역시 주가 하락을 피하진 못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후 기업들의 유망 사업에 대한 물적분할은 계속되고 있다. 작년에만 상장사 중 기업분할을 결정한 곳이 50곳에 이른다. 그 중 물적분할은 무려 90%가 넘는다. 하지만 소액주주들의 반발은 더 커진다. 기업들이 분할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유망 사업을 떼어내 더 키우고, 재상장을 통해 자금조달 편의성도 높이려는 차원이다. 사업을 키우려면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다. 궁극적으로 성장과 기업가치 향상의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판단이다. 소액주주들이 반발하는 이유도 간단하다. "유망한 사업을 왜 대주주만 먹겠다는 것이냐"로 정리할 수 있다. 분할하려면 주주들이 공평하게 가치를 공유하는 인적분할을 하라는 것이다. 쉽게 말해 "내 돈 둘려줘"에 다름없다.

사실 물적분할과 인적분할 등 두 가지 분할 방식 중 무엇이 더 옳은지를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성장을 중시하는 기업은 당연히 물적분할을 선호한다. 분할의 목적성과도 맥이 닿아있다. 성장과 자금조달 편의라는 목적성에 부합하지 않는다면 굳이 그 복잡한 분할에 나설 이유는 없을 것이다. 더군다나 인적분할처럼 지배력을 흔드는 방식은 더더욱 선호하지 않을 것이다. 기업들의 이러한 판단에 무조건적인 비난을 퍼붓는 것은 과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자본시장 측면에서 본다면 한국 기업들의 이러한 행태가 '불투명한 지배구조'라는 디스카운트 요인이 되는 것도 부인하기 어렵다. 특히 분할 뒤 재상장 문제는 기존 주주들에 대한 불공정 이슈가 되기에 충분하다.

이젠 불거진 문제와 논란, 갈등을 봉합하고 치유해야 할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 이미 국회와 정치권에선 여러 방안을 내놓고 있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는 자본시장 선진화 공약에 물적분할 뒤 재상장하는 경우 기존 주주에게 신주인수권을 부여하는 제도 개선 방안을 담았다. 더불어민주당도 기업들이 쪼개기 상장을 할 때 소액주주들에 주식매수청구권을 부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금융당국과 한국거래소도 이와 비슷한 검토에 들어갔다. 소액주주의 권리 보호를 중요시하는 미국의 경우 원칙적으로 쪼개기 상장을 불허한다. 일본도 소액주주에 피해가 가지 않는 방안을 기업이 제시하도록 한다. 우리 기업들의 경우는 물적분할을 결정한 뒤 시장 상황을 살핀 뒤 주가가 크게 떨어지면 자사주를 매입해 소액주주를 달래는 행태만 반복하고 있다.

대선을 앞두고 이 문제가 불거진 것은 어찌 보면 다행이다. 기업들은 앞으로도 사업 분할을 통해 성장성을 높이려는 시도를 계속할 것이다. 하지만 현재의 법과 제도가 유지된다면 지금까지의 문제와 논란은 계속 반복될 것이고 그로 인한 사회적 비용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소액주주의 권리를 보호하면서도 기업들의 분할 목적성을 충족시켜주는 방안이 동시에 마련돼야 한다. 물론 상충하는 문제여서 쉽지만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지배구조와 이사회 의사결정 문제 등의 민감한 이슈를 건드려야 할 수도 있어 기업들이 되레 반발할 수도 있다. 분할 비용 확대에 따른 저항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소액주주 입장에서도 투자 자산의 가치 상실분에 대한 완벽한 보상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이유로 계속해 반발할 가능성이 크다. 그래도 금융당국과 기업, 투자자들은 소통하고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일방의 이익 독점이 유지되는 방식으로 자본시장이 돌아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기업금융부장 고유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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