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도대체 왜 그랬을까. 여전히 의문이다. 연초 정국을 '강타(?)'한 이슈가 '멸공'이라니. 좀 황당하다. 작년 11월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놀이를 시작했을 때만 해도 사실 "또 시작됐구나"라는 생각만 했다. SNS를 통해 워낙 많은 말들을 쏟아냈던 터라 크게 눈여겨보지도 않았다. 뭐 대단한 일이라도 되는 양 글을 옮겨 적어 기사로 쏟아낸 일부 언론들의 행태도 마뜩잖았다. 공산당이 싫다는 데 왜 싫으냐고 묻는 것도 이상하지 않은가. 개인 사상의 자유이고, 표현의 자유라는 데 굳이 토를 달 필요는 없어 보였다.

하지만 그가 뱉어낸 '멸공'이란 단어가 연초 대선 국면에서 뜬금없는 '멸콩(멸치·콩) 릴레이 챌린지 놀이'로 확전돼 논란이 커졌는데도 불을 더 붙이는 그의 행태를 보니 이건 아니다 싶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사진을 올렸다 국가 간 논란으로 확산할 조짐을 보이자 갑자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으로 교체한 뒤 멸공의 대상이 북한이라고 주장한다. 자신을 비난할 시간에 싸우지 말고 멸공을 외치자거나 그것이 대화합이라는 황당한 말도 곁들인다. 자신의 발언을 둘러싸고 정치권에서 논란이 됐는데도 "다음엔 멸치와 콩으로 맛 나는 요리 구상해봐야겠다"며 '대게수호, 꽃게수호, 멸공' 해시태그를 또 달았다.

그러더니 뜬금없이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꺼내 든다. "사업하면서 얘네(북한) 때문에 외국에서 돈 빌릴 때 이자도 더 줘야 하고 미사일 쏘면 투자도 다 빠져나가더라. 당해봤나?"라거나, "왜 코리아 디스카운팅을 당하는지 아는 사람들은 나한테 머라 그러지 못할 거다"라는 말도 내놓는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북한 때문에 신세계와 이마트가 그토록 엄청난 피해를 보았을까. 차입 이자 몇 푼 때문에 공산당을 쳐부숴야 할 대상으로 직격해야 했나. 사실 좀 궁색하다. 논란에 논란이 꼬리를 물고 확산하자 결국 꺼내든 이유가 코리아 디스카운트였나 싶은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그럼 따져보자. 한국의 모든 리스크를 계량화해 평가한 국가신용등급 추이를 보자. 국제 신용평가사인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는 2016년 이후 지금까지 우리나라 국가신용등급을 'AA'로 매기고 있다. 위에서 세 번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전 세계에 창궐한 지난해 주요 7개국(G7) 중 신용등급이나 등급 전망이 떨어진 국가는 6개나 된다. 우리나라는 여전히 'AA'를 유지했다. 무디스 역시 2015년 이후 위에서 세 번째로 높은 'Aa2'로 유지하고 있다. 외평채를 발행할 때는 디스카운트가 아닌 프리미엄을 받을 정도다. 채권 부도 위험을 나타내는 지표로 일종의 보험료 성격을 갖는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저 수준이다.

물론 국제 신평사들은 우리나라 국가신용등급을 평가할 때 북한을 디스카운트 요인으로 본다. 소위 지정학적 리스크라는 말로 위험도를 가중한다. 하지만 북한이라는 위협 요인이 어느 순간 떡하고 나타난 것도 아니다. 분명한 리스크 요인이긴 하지만 특정 기업의 사업에 위해를 끼칠 정도인지는 의문이다. 대한민국에서 사업을 하는 모든 기업들에 공통적인 변수이자 리스크 아닌가. 삼성이나 현대차, SK, LG가 북한 미사일이 무서워 사업을 못 하고 있나. 수십조원을 들여 평택에 반도체 공장 짓는 삼성은 미친 기업인가. 언제 미사일이 떨어질지 모르는데. 정 부회장 인식대로라면 사업 접어야 할 판이다.

신세계그룹 1등 기업인 이마트만 따로 보자. 작년 8월 이마트가 회사채를 발행하겠다면서 금융감독원에 제출한 증권신고서를 찬찬히 다 뜯어 봤지만, 어디에도 북한 리스크는 언급돼 있지 않다. 자본시장에서 돈을 빌리기 위해선 숨김없이 모든 리스크를 증권신고서에 담아야 한다. 그렇다면 이마트는 공시 위반인가?. 총수가 생각하는 가장 크고 위협적인 리스크 요인을 적지 않았으니 말이다. 당장이라도 정정 공시를 내고 투자자들에게 일일이 개별 공지를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외국에서 돈 빌릴 때 이자를 더 줘야 한다고 한다. 이마트가 일본계 MUFG에서 빌린 차입금의 이자는 1.54~2.13%로 표기돼 있다. 비싸다면 비싼 것이고, 싸다면 쌀 수 있다. 하지만 일반 다른 대기업들의 차입 금리와 비교하면 높다고 할 수도 없다.

기본적으로 돈을 빌릴 때 이자를 산정하는 기준은 신용도다. 이마트의 신용도를 보자. 국제 신평사 S&P와 무디스는 이마트의 신용등급을 각각 'BBB-(부정적)'와 'Ba1(부정적)'으로 부여하고 있다. 2018년만 해도 각각 'BBB(안정적)'와 'Baa2(안정적)'로 평가했었다. 그러다 2019년에 신용등급을 내렸고, 등급 전망도 '부정적'으로 하향 조정하면서 등급 강등을 경고했다. 이마트의 신용등급이 떨어지는 사이 대한민국 국가신용등급은 든든히 유지되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마트의 신용등급이 북한 미사일 때문에 떨어졌을까. 쉽게 말해 장사 못해 수익성이 악화하고, 그에 따라 재무구조도 나빠졌으니 제대로 하라는 경고였다. 쿠팡 출현으로 유통업의 패러다임이 이커머스로 옮겨가는 와중에 제대로 대응을 못 해 장사를 망친 것이고, 신용등급도 강등되는 수모를 당했고 그에 따라 차입 금리도 올랐을지 모르겠다. 사업해 본 사람이라면 너무나도 잘 알 텐데 딴소리를 한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논하기 전에 거버넌스 리스크를 되돌아볼 일이다. 최근 들어 기업들이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을 한다면서 부산하다. 어느 대기업 임원이 전해준 말은 의미심장하다. E와 S는 잘할 수 있는데 솔직히 G는 말을 꺼내지도 못한다고 한다. "짐이 곧 국가다"로 대변되는 절대왕정 체제가 여전히 2022년 대한민국 일부 대기업에서는 살아있다. 우리는 이를 오너 리스크라고 부른다. 상법상 법률책임도 지지 않는 비등기 임원의 직책으로 수십억 원의 연봉을 받고, 대주주라는 지위로 수십, 수백억 원의 배당도 챙긴다. 대주주의 말 한마디로 시가총액이 수천억 원 날아가도 이사회는 입을 다물고 있다. 그런 현실의 민낯을 이번 '정용진 사태'가 여실히 보여줬다. 위협이 되는 미사일은 외부가 아닌 내부에 있다. 더는 직원들과 주주들을 '극한의 세계'로 내몰지 말아야 한다. 영화 '극한 직업'으로 족하다.

(기업금융부장 고유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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