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조선·플랜트·기계·원전·방산업체들의 공통점은 뭘까. 대부분의 고객이 해외에 있고, 그들로부터 일감을 따내야만 공장을 돌릴 수 있는 곳들이다. 수주가 곧 생존인 셈이다. 일감의 규모가 작게는 수천억원에서 많게는 수조원·수십조원에 이른다. 그렇다 보니 수주 성공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다. 일감을 따내기 위해서라면 동아줄이든 뭐든 잡고 싶어한다.

수주 기업들의 그런 필요와 욕구를 채워주는 데 가장 효율적인 수단은 정책금융이다. 여의도에 있는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에 수주 기업들이 문턱이 닳도록 찾아가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외국 정부나 기업이 대규모 수주 입찰을 진행할 때 반드시 요구하는 것은 파이낸싱이다. 통상 3~4년, 길게는 10여 년에 걸쳐 진행되는 프로젝트들이 많다 보니 공정별 안정적 자금 소요를 어떻게 채울 것인지를 따진다. 1조원짜리 프로젝트를 수주한다고 발주처에서 1조원을 한 번에 주지는 않는다. 일감을 따내 공사를 하는 과정에서 자금 미스매치가 발생하면 큰 문제가 생기게 되고, 최악의 경우 계약 취소를 당할 수도 있다. 수년간 대규모 자금을 투입해 프로젝트를 완성하더라도 대규모 손실을 보고 떠나야 할 수도 있다. 결국 돈 문제로 귀결한다.

최근 한화디펜스가 이집트와 체결한 2조원짜리 K9 자주포 수출계약을 두고 말들이 많다. 올해 초 LIG넥스원과 한화시스템이 아랍에미리트에 천궁 미사일을 4조원어치 납품하는 대형 계약을 따낸 뒤 이뤄진 수주 계약이어서 관심이 컸다. 하지만 2조원 중 80%를 수은이 이집트에 대출해 주고, 이집트가 그 돈으로 K9 자주포를 구매하기로 했다는 것을 두고 뜬금없는 '특혜 수주'라는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모 지상파 방송에서 제기한 이 논란을 보고 있자니 참 황당하기까지 하다. 'K-방산'의 해외시장 진출 확산에 대해 보는 시각이 다를 수 있고, 소위 '국뽕' 논란을 경계하는 심정이라면 일견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방산기업들의 해외 진출에 정책금융기관이 적극적 역할을 한 것을 특혜라고 콕 집어 지적하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

프랑스는 과거 이집트에 라팔 전투기를 팔면서 대금의 80%를 차관으로 제공했다. 프랑스는 무슨 생각으로 그런 '특혜'를 줬을까.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인도네시아에 T-50 고등훈련기를 팔 때도 수은은 1조5천억원을 대출해 줬다. 이번에 이집트에 K9 자주포를 팔면서 해 준 것과 다르지 않은 지원이다. 수출이 가능한 수준의 고도화된 무기를 파는 거의 대부분의 국가가 이런 식으로 정책적으로 자금을 지원하면서 수출을 지원하고 있다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수은이 주도적으로 그런 일을 한다. 수은의 설립 목적 자체가 공적금융지원이다. 국내 기업들이 해외에서 수주할 때 대출 등으로 직접 자금을 지원하기도 하고, 공사를 위해 소요되는 자금을 빌릴 때 보증을 서주기도 한다. 수주한 국내 기업이 아닌 발주처에 직접 지원을 해 주는 경우도 다반사다. 결과적으로 그 효과는 수주 기업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수년 전 조선업이 무너질 위기에 처했을 때 수은을 중심으로 한 정책금융기관들은 글로벌 해운선사들이 국내 빅3 조선사에 선박을 발주하면 선박 제작 비용을 대출해 주기도 했다. 그래야 국내 조선사들이 수주하고, 수년 치 일감을 확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배가 지금 전 세계를 누비고 있다. 국내 조선사들은 정책금융기관들의 그런 지원을 바탕으로 그 어려운 보릿고개를 넘길 수 있었다. 최근 방산기업들도 중동과 동남아시아 국가를 상대로 전략무기 수출을 확대하고 있다. 사상 최대 규모의 수출 실적이 예상될 정도다. 하지만 기업들의 능력만으로는 부족하다. 정부가 측면 지원을 해야 하고, 파이낸싱도 도와야 어렵사리 일감을 따낼 수 있다.

정부는 지난 2019년 중국의 저가 수주 공세와 주요 선진국의 해외 인프라 사업 장악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우리 기업의 해외수주 확대를 위해 대규모 금융지원을 축으로 하는 '해외수주 활력 제고 방안'을 마련한 적이 있다. 2013∼2014년 650억 달러를 넘어섰던 우리 기업들의 해외 수주가 280억~300억달러 수준으로 쪼그라들자 부랴부랴 만든 대책이었다. 당시 대책에서 눈에 띄는 것은 정책금융기관을 동원해 대규모 금융지원을 제공한다는 것이었다. 일반계정으로 지원이 곤란한 초 고위험국의 인프라 사업 수주지원을 위해 수은에 1조원 규모의 특별계정을 신설하기도 했다. 당시 정부는 수은의 배당 성향까지 축소해줬다. 정부에 줘야 할 배당금을 줄여 특별계정에 포함하고, 그 돈으로 기업들의 수주를 도와주자는 취지였다. 금융지원을 통해 수은의 건전성이 악화할 경우 정부가 출자까지 해주기로 했다. 그런 노력이 있었기에 최근과 같이 'K-방산'도 수출 호기를 맞을 수 있었다.

한국은 글로벌 방산시장에서 아직 메이저는 아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생산된 무기들이 파고들 니치마켓(틈새시장)은 많다. 국내 방산기업들이 만드는 각종 무기의 품질도 고도화하고 있다. 그렇다 보니 우리 무기를 사 가고 싶어 하는 국가도 적지 않다고 한다. 결국 문제는 우리 기업들의 수출 길을 정부가 어떤 식으로 지원해 줄 것인지다. 프랑스를 비롯해 중국, 러시아 등은 말 그대로 파격적인 지원을 통해 방산 기업들의 수출 길을 돕고 있다. 아예 무기 구매대금의 100%를 대출해 주는 데 더해 추가적인 인센티브까지 주려고 한다. 물들어 올 때 노를 저어야 한다. 수은 등 정책금융기관들이 뜬금없이 '의문의 1패'를 당했다고 해서 위축되어서 안 된다. 더 파격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그러라고 만든 곳이 정책금융기관이다.

(기업금융부장)

pisces738@yna.co.kr



※쿰파니스는 라틴어로 '함께(cum)'와 '빵(panis)'이 합쳐진 말로 동료나 친구를 뜻하는 컴패니언(Companion), 기업을 뜻하는 컴퍼니(Company)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끝)
 

본 기사는 인포맥스 금융정보 단말기에서 11시 38분에 서비스된 기사입니다.
저작권자 © 연합인포맥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