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국가신용등급 카드까지 꺼내들며 맞서고 있지만, 표가 먼저인 정치권이 순순히 물러설 것 같지는 않다.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 확대를 둘러싼 논란이다. 채권 플레이어들은 국채시장이 동네북 신세가 됐다고 한탄하면서, 뾰족한 운용의 묘가 안 보인다고 하소연한다.

작년 하반기께 시작된 채권 급락장이 언제나 끝날지 기약조차 어렵다. 기준금리 인상 사이클이라는 재료로 터지기 시작한 채권시장은 국고채 발행 물량 급증이란 수급 악재까지 오롯이 버텨내야 한다. 인고의 시간이 한참 길어질 것 같은 분위기다.

홍남기 부총리는 여야 국회의 추가경정예산 증액 요구와 관련해 대폭 증액은 어렵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지난 8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 출석한 자리에서다. 홍 부총리는 구체적인 근거를 제시했다. 그는 "(추경) 14조원을 발표했을 때도 금리가 30bp 올랐다"며 "(증액할 경우) 국채시장이 감당할 수 있을까 우려가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가신용등급에 위협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점도 언급했다. "무디스와 피치와도 상반기 국가신용등급 평가도 협의해야 하는데, 그것도 우려가 된다"며 "시장이 흔들린다든가, 금리가 오른다든가, 신용평가등급이 떨어졌을 때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경제를 맡은 입장에서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금리 상승에 따른 위험요인 관리를 강화해야 한다며 추경 확대에 대한 우려를 드러내기도 했지만, 채권시장의 안정을 끌어내는 데에는 역부족이었다. 물론 호주와 뉴질랜드 등 아시아 주요국 국채금리의 급등세도 한몫했다. 국고채 3년물 금리는 전일에만 6.6bp 올라 2.30%대를 상향 돌파했다. 국고채 10년물은 9.5bp 오른 2.733%를 기록했다. 4년여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작년 5~6월과 비교해 금리가 배 이상 올랐으니, 채권가격으로는 이 기간 반 토막이 난 셈이다.

주식시장 기준으로 코스피가 반 토막이 나면 저가매수가 활발하게 유입될 수 있겠지만, 지금의 채권시장 분위기는 그렇지 않다. 기본적으로 국내 기관의 매수 여력은 많지 않아 보인다. 외국인은 국채선물을 대량으로 팔면서 채권시장 전반을 흔들어 놓고 있다. 한국은행 기준금리 정상화나 추경 확대 우려 등은 꽤 묵은 악재라 많은 부분이 반영됐다고 하더라도, 글로벌 금리가 뒤늦게 치솟다 보니 여력이 있어도 선뜻 손이 나가질 않는다.

채권시장이 기댈 곳은 또 당국뿐이다. 재정당국이자 국채당국인 기재부가 추경 확대를 최대한 늦추는 동시에 균등 발행·긴급 바이백 등의 테크니컬한 안정화 조치를 계속 내놓을 것으로 기대를 거는 눈치다. 한국은행의 개입 스탠스가 능동적으로 바뀐 점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평가가 쏟아진다. 작년 한은의 국고채 단순매입이 기재부에 등 떠밀리듯 이뤄졌다는 평가가 많았지만, 올해는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설 연휴 이후인 지난 4일 국채 금리가 급등하자 한은은 장 마감 약 한 시간 전 연합인포맥스를 통해 단순매입을 시행하겠다는 구두개입에 나섰다. 한은은 장중 개입을 선호하지 않는 편이다. 이후 공개된 매입 종목이 중장기 지표물 위주라는 점도 확인되면서 한은의 시장 안정 의지가 강하게 전달됐다.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통화당국이 시장금리 안정화 조치를 내는 데 부담을 느끼던 스탠스는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당국이 역대급 외풍에 시달리고 있는 채권시장에 단비 같은 존재가 될 수 있을지 주목해볼 만하다. (금융시장부장)

chh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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