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외환당국은 통제의 상징이다. 1997년의 외환위기, 그리고 10여 년 후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짙게 드리워진 환율 급등 트라우마 탓이다. 달러-원 환율이 요동칠 때 우리 경제가 뿌리까지 흔들리는 경험을 했다. 당국이 외환시장에 대한 통제권을 강화해왔던 이유다. 20년 넘는 기간 환율 안정은 외환당국의 양보할 수 없는 최우선 가치였다.

이랬던 외환당국이 이제는 변신을 꾀하고 있다. 우선 서울 외환시장의 전면적인 개방을 추진한다. 더 정확히는 외환시장의 단계적 선진화 방안이다. 당국은 지난해 외환시장 전자거래(API) 도입을 선언한 데 이어 지난 1월 말에는 서울 외환시장의 거래 시간을 대폭 연장키로 했다. 환율 통제권을 강화했던 기존의 외환거래법을 폐기하고 새로운 거래법을 마련한다는 구상도 밝혔다.

보수의 끝판이라 할 수 있는 외환당국의 혁신적 변화로 평가된다. 특히 거래시간 대폭 연장에 주목하는 참가자들이 많다. 현재 오전 9시에서 오후 3시 30분까지로 제한된 국내 외환 거래시간이 새벽 1시까지 연장될 가능성이다. 역외 세력(외국인)의 참여가 활발해지고 그에 따른 환율 변동성을 고려해야 한다. 당국이 환율 안정만 보고 있었다면 취하기 어려운 조치다.

외환당국의 실무 책임자인 김성욱 기획재정부 국제금융국장은 당국이 큰 용기를 낸 것이라고 고백했다. 지난 15일 열린 연합인포맥스TV의 외환시장 선진화 관련 특별 좌담회에서다. 물론 외환시장의 체력이 눈에 띄게 좋아진 데 따른 자신감도 내비쳤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따른 금융시장 위험이 완화한 2020년 하반기부터 외환시장 제도 개선이 필요한 시점이란 판단을 해왔고 단계적으로 방안을 내놓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도시가 커지려면 외환시장이라는 도로가 잘 닦여야 한다. 그동안 우리 외환시장은 2개의 도로(중개사)와, 50여개의 정류장(거래 금융기관)만 갖춘 시장이었다. 당국은 이 도로만 지키면 됐지만 이제는 드론을 타고 헬기를 타고, 숨어서 올 수도 있게 됐다. 그 전에 도로를 더 넓혀서 많은 사람들이 편리하게 이용하도록 하자, 역외 외환거래를 허용하는 대신에 국내 외환시장의 외연을 넓혀서 해외 투자자들의 참여를 늘리겠다는 취지다."

원화를 거래하는 외환시장에서 거래의 중심은 국내 기관이 돼야 한다는 게 당국의 생각이다. 역외가 아닌 서울 외환시장을 더 키우고, 여기에서 국내 기관이 더 커진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면 우리 금융산업 자체가 업그레이드 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다.

국내 기관들도 당국의 이런 입장에 공감하는 분위기다. 원화는 국내 은행이 가장 잘 아는 상품이다. 궁극적으로 원화의 국제화가 현실화한다면 국내 은행 등 로컬 기관의 경쟁력은 배가될 수 있다. 좌담회에 참석했던 문영선 하나은행 외환파생상품운용섹션 섹션장은 "금융의 삼성전자가 나오지 못했던 허들 중 하나는 외환시장의 폐쇄성이다. 원화의 국제화가 이뤄진다면 로컬 기관의 가장 경쟁력 있는 상품은 원화가 될 것이고, 금융의 삼성전자가 나올 수 있는 첫발이 되리라 기대한다"고 말했다.

거래시간 대폭 확대 등에 따른 환율 변동성은 경계해야 할 부분이지만,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우(憂)를 범해선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달러-원 환율의 흐름은 수년 간 매우 안정된 상태인데다, 앞으로 환율 안정판이 될 수 있는 수급 요인도 적지 않다. 거주자외화예금이나 국내 기관의 환헤지 없는 해외투자 자금 등이다. 불투명성이 크고 국내 기관의 참여가 극도로 제한적인 역외차액결제선물환(NDF) 시장이 서울시장과 다르게 날로 커지고 있다는 점도 원화의 정체성을 위협하는 요인이다. 당국의 과감한 변화의 시도가 우리 외환시장과 금융산업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는 촉매가 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금융시장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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