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작전을 개시한 24일 국내 금융시장은 크게 흔들렸다. 코스피·코스닥지수는 급락했고, 원·달러 환율은 약 3주 만에 1,200원대로 치솟았다. 안전자산 선호심리가 강해지면서 국고채 금리는 급락했고 국제유가는 100달러를 돌파했다.

정부도 숨 가쁘게 움직였다.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는 오전·오후 두 차례나 열렸다. 25일에도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 주재로 관계 장관회의(녹실회의)를 개최하고 우크라이나 사태 관련 동향을 밀착 점검한다.

국내외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확대되면서 금융당국도 비상 대응체제에 돌입했다. 고승범 금융위원장은 금융위 간부들과 금융시장 동향과 리스크 요인을 수시로 점검하며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나라 안팎이 초비상이 걸린 상황에서 정은보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16일 출국했다. 지난해 8월 취임 이후 첫 해외 출장이다. 이날까지 2주 동안 독일 프랑크푸르트, 영국 런던, 미국 뉴욕 등을 돌며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 토스튼 포에취 독일 금융감독청(BAFIN) 부청장, 앤드루 베일리 잉글랜드은행(BOE) 총재, 롭 파우버 무디스 회장 등을 만나는 코스다. 글로벌금융 국장도 수행차 출장길에 함께 올랐다.

지난 23일 금감원 임원회의에도 '시장 중심의 긴급대응·권역별 긴급대응' 두 줄짜리 메모만 전달됐다. 24시간 모니터링 대응과 금융권의 외화유동성 관리를 강화주문도 이찬우 수석부원장의 발언으로 나왔다.

금감원장이 주요국 중앙은행이나 감독당국 고위급들과 글로벌 현안과 협력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해외 출장을 떠나는 것은 그렇게 흔한 경우는 아니다. 외교부 한미방위비분담 협상대표 등을 거친 정 원장의 폭넓은 글로벌·외교적 인맥과 감각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정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더욱이 금감원의 위상을 한 단계 높일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해외 출장 자체는 긍정적이다.

문제는 애매해져 버린 '타이밍'이다. 정 원장이 출장을 떠나기 전에도 우크라이나 침공 가능성을 둘러싸고 러시아와 미국·유럽 등 서방국간 국제적 긴장감이 고조되는 상황이었다. 정 원장 자신도 지난달 28일 회의에서 '갈등 해소 시점이 불투명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설 연휴 직후부터 미국의 통화 긴축정책과 글로벌 경제·금융지표 악화, 코로나19 대확산 등으로 국내 시장도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이러한 이유로 주변에서 정 원장의 출장을 만류하는 목소리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일정 변경이 쉽지 않겠지만, 우크라이나 사태로 대통령 주재로 긴급 NSC 등이 열린다는 점에서 일부에서는 긴급 입국이 필요한 게 아니냐는 뒷말도 나왔다.

이날 금감원은 정은보 원장의 출장 결과를 내놓을 예정이다. 멋지게 선물 보따리를 풀어놔야 하는 금감원 입장에서는 고민스러워졌다. 국내외 금융시장이 요동치고 정부가 비상 대응에 여념이 없는 상황에서 해외 출장 성과를 뽐내기도, 해외에서 우크라이나 대응 태세를 집중적으로 논의했다고 풀어놓기도 애매하다.

마땅히 박수를 받아야 할 출장이 결과적으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타이밍이 겹치면서 빛이 바랠 것 같아 아쉽다. (정책금융부 이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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