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2019년 새해 벽두부터 IT업계에 대규모 인수·합병(M&A) 태풍이 몰아쳤다. 주인공은 국내 최대 게임사 넥슨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넥슨 창업주 김정주 NXC(넥슨 지주사) 대표가 자신과 부인이 소유중인 모든 주식을 팔겠다고 내놓은 것이었다. 넥슨은 발칵 뒤집혔다. 내부에서조차 이런 사실을 알지 못했다. 일본 증시에 상장된 넥슨재팬을 보유한 NXC의 주식을 사려면 무려 13조원에 달하는 자금이 필요했다. 국내외 게임사와 글로벌 사모펀드들이 달려들었지만, 그 가격을 맞추는 게 쉽지는 않았다. 결국 넥슨 매각은 반년 만에 없던 일이 됐다.

김정주는 2018년 5월 큰 굴레에서 벗어났다. 소위 '진경준 게이트'로 불리는 공짜 넥슨 주식 뇌물 의혹 사건에서 최종적으로 무죄 판결을 받았다. 20년 지기인 진경준 검사장에게 넥슨 비상장 주식을 살 돈 4억2천500만원을 제공했다는 혐의였다. 진 검사장은 그 돈으로 넥슨 주식 1만 주를 사고 이후 넥슨재팬 주식으로 바꿔 120억원대 차익을 얻었다. 법원 최종 판결 며칠 뒤 김정주는 1천억원 이상의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발표한다. 딸 2명에게 회사를 물려주지 않겠다고도 선언한다. 그리고 또 반년이 좀 더 지나 아예 회사를 팔겠다고 내놨다. 김정주는 무죄를 받았지만, 그의 삶은 이전과 달라지기 시작했다.

NXC의 본사가 있는 제주에 콕 박혀 일에 몰두하고, 골프를 열심히 치고, 1년의 절반 이상은 또 해외 방방곡곡을 돌아다녔다. 존재는 하지만 그의 동선은 잘 파악이 되지 않는 은둔이 일상이 돼 갔다. 김정주와 업무상 관계가 깊었던 한 지인은 "많이 힘들어하는 것 같았다"고 전한 적이 있다. 그러면서도 무언가 뇌리를 스치는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밤낮,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전화를 해 왔다고 한다. 늘 밝고 쾌활하면서도 궁금증으로 가득 찼던 삶과, 어디론가 자꾸 숨어들어 가고자 하는 삶이 교차하는 혼돈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했다. 넥슨을 팔겠다고 선언했을 때가 그 정점이었던 같다고 지인은 전했다.

김정주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를 괴짜라고 말한다. 호기심도 많아 서울대 컴퓨터공학과를 다닐 땐 자유로움 그 자체였다고 한다. 학점에 연연하지 않고 관심이 쏠리는 곳이라면 무엇이든 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그런 사람이었다고. 그러다 결국 학점이 '빵구'가 나 합격통지서를 받은 카이스트에 가지 못하고, 1년을 더 다녀야 했을 정도다. 결국 절친 송재경(엑스엘게임즈 대표)과 함께 카이스트에서 석사 학위를 받고 1994년 게임사를 차렸다. 불모지나 다름없는 한국에서 게임으로 성공하겠다는 꿈을 가졌다는 것 자체가 그 당시로서는 괴짜가 아니면 하기 힘든 결정이었다. 당시 서울 강남구 역삼동 성지하이츠 오피스텔 사무실에서 쭈그리고 앉아 일하던 사람들은 모두 한국 게임업계의 선구자가 됐다. 김정주, 송재경, 허민, 정상원, 이재교 등이다.

1968년에 태어났으니 김정주의 삶은 짧았지만 그처럼 굵게 살아온 기업인이 있을까 싶다. 인터넷 산업 태동기에 변변한 국산 소프트웨어조차 없던 시절 게임이라는 콘텐츠를 만들었던 그의 시도는 혁신 그 자체였다. 어디서도 볼 수 없던 온라인 게임을 성공시켰고, 세계 최초로 게임 유료화도 시도했다. 지금은 너무나도 일상화된 것들이지만 당시만 해도 시도하는 것 자체가 무모한 짓이라는 비난을 샀을 정도였다. 결국 성장에 성장을 거듭하면서 지금의 넥슨으로 컸지만, 김정주는 그러면서도 늘 세상을 경계해 왔다. 창의성이 중요해야 기업도 성장하는 데 자꾸 넥슨이 대기업처럼 돼 가는 것에 대해서는 못견뎌했다고 한다. 익숙해지는 것에 대해서는 체질적으로 거부하려는 그의 성향 때문이기도 했다. 수행원도 두지 않고 홀로 세계 여러 곳을 다니면서 신사업을 탐구하고, 새로운 일에 부딪히려는 그의 삶은 스물 일곱 살에 넥슨을 창업할 때와 다름없었다. 이제는 그를 볼 수 없지만, 그가 뿌린 씨앗은 든든하게 뿌리를 내리고 계속 자라날 것이다. 편안히 영면하시길.

(기업금융부장)



※쿰파니스는 라틴어로 '함께(cum)'와 '빵(panis)'이 합쳐진 말로 동료나 친구를 뜻하는 컴패니언(Companion), 기업을 뜻하는 컴퍼니(Company)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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