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금융통화위원회 데뷔전을 치른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앨런 그린스펀 전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의 '모호한' 화법은 체질상 영 맞지 않았던 걸까. 금통위 기자간담회 내내 직설적인 화법을 구사한 그는 공보관이 써준 메모를 들어 보이며 "제가 말도 많고 빠르기도 하다. 직접적으로 말하는 스타일이라 (과거 총재들과) 다르긴 하겠지만, 이런 스타일에 시장도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겠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총재로 오고 나서 시장과의 소통은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특유의 직설적 화법은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인 셈이다. 그의 말대로 시장이 이 총재의 화법에 익숙해질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새 총재의 화법만 달라진 게 아니다. 연합인포맥스TV를 통해 생중계된 기자간담회 풍경도 이 총재의 등장과 함께 많은 것이 달라졌다. 우선 과거 기자회견식의 스탠딩 간담회를 벗어나 노트북을 켜고 기자들 앞에 앉은 총재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브리핑석 기자들과 눈높이를 맞추니 한결 편안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기자들이 손을 들어 앉은 자리에서 질문을 하는 모습도 과거에는 없던 풍경이다. 기자의 질문이 짧고 총재의 답변은 길다 보니 토론으로까지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좌담회 스타일의 간담회가 지속되다 보면 조금은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간담회가 진행될 것으로 기대된다.



금리 인상, 금통위 결과 설명하는 한은 총재
(서울=연합뉴스) 강수환 수습기자 =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6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 브리핑실에서 이날 열린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 통화정책방향회의 결과와 관련해 설명하고 있다. 금통위는 이날 회의에서 기존 1.50%였던 기준금리를 연 1.75%로 0.25% 포인트 인상했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가 두 달 연속 인상된 건 약 15년만이다. 2022.5.26 swan@yna.co.kr








이 총재는 취임 초 현업부서를 직접 찾아가 업무보고를 받는 등 기존의 보고 관행을 허물었다. 형식의 파괴를 추구하는 이창용 스타일은 이번 간담회 준비 과정에서도 잘 드러났다. 통상 금통위 전 한은의 주요 부서는 기자들의 예상 질의응답지를 공들여 준비한다. 이를 받아서 미리 예행 연습을 하는 총재도 있었다고 전해진다. 한은은 금통위 당일 기자들의 질문 내용을 미리 받기도 했다.

이 총재는 이런 관행에도 제동을 걸었다. 이번 간담회에선 기자들의 사전 질문지나 모범 답안 없이 즉석에서 질문을 받고, 즉석에서 답변했다. 경제 현상을 꿰뚫어 보는 식견과 정책 방향에 대한 신념이 없다면 생각만큼 쉽지 않은 일이다. 금통위 관련 간담회는 1시간 가까이, 그것도 실시간으로 시장에 전달되기 때문에 어느 간담회보다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총재의 발언이 간담회 동안 일관성이 없거나 의도치 않은 실수가 나온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시장에 전달된다. 이 총재는 이에 대비한 수단으로 간담회 마지막에 사전 준비된 '정리 멘트'를 내놓았다. 이 역시 이전 금통위 간담회에선 볼 수 없었던 풍경이다. 간담회 중 본인의 발언 등에 대한 시장의 왜곡된 해석이나 오해를 차단하기 위한 조치로 보인다. 이 총재는 정리 멘트에서 '인플레 파이터'로서의 역할을 분명하게 제시했다. "현재 상황을 보면 성장보다는 물가의 부정적 파급 효과가 예상되는 만큼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게 중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높아진 물가에 대응하는 게 더 긴 안목에서 안정적인 성장 기반을 다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간담회 도중 이 총재의 발언으로 성장과 물가 안정의 균형 쪽에 무게를 뒀던 시장은 총재의 정리 멘트를 통해 한은 금통위가 물가안정에 방점을 두고 기준금리 인상 기조를 이어가겠다는 시그널을 분명히 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채권 금리가 금통위 당일 큰 폭으로 오르는 등 다소 충격을 받기는 했지만, 시장 참가자들의 평가는 나쁘지 않다. 이 총재의 직설적이고 명료한 화법, 그리고 새로 등장한 정리 멘트가 오히려 시장의 불확실성을 줄여줬다는 진단이 나왔다.

이 총재의 금통위 데뷔전에 대한 시장의 평가는 대체로 긍정적인 분위기다. 이 총재가 제시한 정책 방향에 대한 신뢰가 어느 정도 깔려 있기는 하지만, 이전과 확 달라진 간담회 풍경에서 받은 신선한 느낌도 더해졌을 것으로 보인다. 새 총재의 허니문 기간이 지나면서는 시장은 총재의 정책 능력에 더 집중할 것이다. 이 총재가 취임 전부터 강조했던 '데이터 디펜던트(data dependent, 경제지표 의존)'가 얼마나 효과적으로, 그리고 적절한 시점에 발휘될지에 시장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취재본부 금융시장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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