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환율 수준이 곧 한 나라의 국격(國格)이라 말하는 이들이 있다. 서울 외환시장에서 20년 넘게 환율을 다뤘던 한 전직 외환딜러는 1,300원대에 바짝 다가선 달러-원 환율을 보면서 수치스러움을 느낀다고도 했다.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과 위상을 고려하면 적정환율 수준에서 한참 벗어난 것인데, '외부요인' 탓만 하는 게 안타깝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그도 그럴 것이 과거 1,200원대 이상의 달러-원 레벨은 '위기의 환율'로 인식됐다. 지난 20년간 달러-원이 1,200원대를 확실하게 상향 돌파했던 시기는 손에 꼽힌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2016년 유로존 재정위기, 2020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확산 시기 정도다. 금융위기 때를 제외하면 돌파 기간도 두세 달 정도에 머물렀다.

올해 상반기 내내 1,200원대 이상의 환율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1,200원 이상의 환율을 '뉴노멀(new normal)'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달러-원 환율 급등을 불러온 근간은 연방준비제도(Fed) 긴축의 결과물인 달러 강세다. 여기에 국내 수급 요인이 더해졌다. 국내 기관과 서학개미의 해외투자 열풍, 그리고 국민연금의 환헤지 중단 등 달러 매수 요인이 넘쳐난다. 구조적으로 1,200원 상단을 방어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라 환율 수준을 과거의 잣대로 봐선 안 된다는 얘기다. 이는 시장 플레이어뿐 아니라 당국의 시선이기도 하다. 적극적인 시장 개입을 주저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엔저(엔화가치 하락)의 고착화도 원화환율 만의 일은 아니라는 공감대를 불러오고 있다.

당국 입장에서 환율 급등을 제어할 만한 명분이 많지 않았던 셈이다. 그런데 이제 그 명분이 강화되는 분위기다.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진 상황에서 환율 급등이 추가로 물가를 자극할 것이란 위기감이 고조되는 탓이다.최근 한국은행이 내놓은 연구보고서 내용이 인상적이다.



[그래픽] 원/달러 환율 소비자물가 전가율 추이
(서울=연합뉴스) 김영은 기자 = 한국은행이 9일 공개한 '통화신용정책 보고서'에 따르면 환율의 물가 전가율(원/달러 환율 또는 명목실효환율 1% 변동 시 물가상승률의 변동)은 금융위기 이후 추세적으로 낮아져 2020년 '제로(0)' 수준까지 떨어졌지만, 이후 다시 높아져 올해 1분기 현재 0.06에 이르렀다. 원/달러 환율이 1% 오르면 물가 상승률도 0.06%포인트(p) 높아진다는 의미다. 0eun@yna.co.kr 트위터 @yonhap_graphics페이스북 tuney.kr/LeYN1








지난 9일자 통화신용정책 보고서를 보면 환율의 물가 전가율이 눈에 띄게 높아지는 게 확인된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추세적으로 낮아지던 환율의 물가 전가율은 2020년 제로 수준까지 떨어졌다가 이후 빠른 속도로 높아졌다. 올해 1분기에는 0.06까지 상승했다고 한다. 환율의 물가 전가율이란 달러-원 환율 또는 명목실효환율이 1% 변동할 때 물가상승률의 변동을 의미한다. 물가 전가율 추정 결과를 이용해 산출한 환율의 물가상승 기여도는 지난 1분기 중에만 소비자물가 상승률(3.8%)의 약 9% 정도인 0.34%포인트로 분석됐다. 물가 급등에 환율이 많은 부분 기여한다는 것이 실증적으로 확인된 만큼 외환당국의 신중론도 약해질 전망이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9일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모든 부처는 물가 안정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소관 분야 물가 안정은 직접 책임진다는 자세로 총력을 다해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기재부와 한은 등의 외환당국 실무자들이 물가 안정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환율 상승 속도를 최대한 억제하는 일이 될 것이다. 미국 재무부의 환율보고서가 발표된 직후라 당장은 미국의 눈치를 볼 일도 많지 않다. 이른바 '대통령 레벨'로 불리는 1,290원선 상단까지 허물어진다면 시장 심리는 걷잡을 수 없이 악화할 수 있다. 당국의 과감하면서 강력한 대응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취재본부 금융시장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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