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는 지난 16일 새정부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했다. 주요 내용은 ①법인세 최고구간 세율을 25%에서 22%로 낮추고 투자상생협력촉진세제를 폐지하는 것과 ②주택보유에 대한 감세 등이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경제정책 방향이 기업편향적이라는 지적이 있다는 질문에 다음과 같은 논거를 제시한 것으로 보도됐다. "국제 수준의 세 부담으로 좀 낮추고 기업들이 활발하게 자율, 창의를 꽃피워서 일자리를 만들고 투자를 적극적으로 해서 결국은 경제활력을 일으키는 것이 전체적으로 우리 경제가 선순환하는 데 좋은 방안이다. 그리고 법인세 인하를 통해 투자 확대와 일자리 창출을 유도하고 세수 기반을 확대할 수 있는 장치"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런 논거는 지난 2008년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내세운 경제정책방향이었던 소위 '줄푸세'와 거의 일치한다. 당시 법인세 최고세율을 이번처럼 22%로 내리면서, 기업들이 보다 낮은 법인세 환경에서 투자하며 성장하고, 이는 결국 국민들의 소득을 증대하는 효과를 창출해 국민들에게 혜택이 돌아간다는 '낙수효과'의 선전이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부터 내세웠던 공약 구호인 '복지와 성장의 선순환'에서 선순환의 정체가 이명박 정부에서 내세운 낙수효과를 의미하는 셈이다.

이러한 주장들처럼 기대하는 낙수효과가 발생해 국민들이 혜택을 받았을까. 지난 1980년대 이후 주류가 됐던 보수적인 경제학, 즉 감세와 규제 완화로 기업과 부자들의 소득이 증가하면 성장이 촉진되고 그 이득이 모두에게 퍼져나갈 것이라는 낙수효과 주장은 실증적으로 힘을 잃어버렸다는 인식이 국제적으로 주류가 됐다. 과연 한국 경제에서도 낙수효과가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 시절에 있었을까.

이에 대한 대답을 위해 OECD가 국가별 소득불평등(Income Inequality)의 척도로서 제시하는 P90/P10 배율을 살펴보자. 소득상위 10% 선에 걸친 값(P90)을 소득 하위 10% 선에 걸친 값(P10)으로 나눈 배율(P90/P10)이다. 배율이 상승할수록 소득불평등도는 높아진다. 새정부 경제정책방향의 타당성을 검증하는데, 더 유의미한 것은 역사적인 추세다. 한국의 P90/P10 배율은 OECD 자료가 제시되는 원년인 2006년에 4.5에서 악화돼 2007년 4.7로 악화됐고, 이후 급속한 악화를 거쳐 2015년 5.7, 2018년 5.5를 나타냈다. 이런 P90/P10 배율이 2008~2017년 기간 동안 오히려 악화한 추세는 낙수효과의 허구성을 실증적으로 입증한다. 낙수효과는커녕 오히려 소득불평등 즉 양극화 현상이 명백하게 드러난다. 국세청에 따르면 과표 3천억원 이상으로 최고세율 25%가 적용되는 법인은 전체 법인세 과세대상 법인의 0.01% 수준이다. 극소수 대기업을 위한 감세혜택이란 비판에도 법인세 최고세율 인하를 강행하는 명분으로 투자 확대와 일자리 창출을 내세우고 있지만, 이런 주장은 심각한 착각일 수 있다.

지난 2008년 시작된 '글로벌 금융위기'로 전반적인 중간계층 이하 국민은대기업들의 성장을 위해 희생을 강요받았다. 즉,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핑계로 상위 재벌기업들부터 거의 모든 기업에서 연봉을 20~30% 삭감하고 부장급들을 명예퇴직시키면서 하위계층의 소득은 상대적으로 더 하락 압박을 받았다. 게다가 원유가격이 130~150달러 수준으로 치솟는 시기에 소위 환율 주권주의 운운하는 경제관료들에 의해 대기업들의 수출 경쟁력을 위해 원화의 가치절상 없이, 즉 원자재 가격급등 부담은 그대로 국내 소비자에게 전가되는 형식으로 국민들의 소득이 희생됐다.

그럼 대기업들의 막대한 이익이 국민소득증대로 전파(spill-over)되는 경제선순환이 왜 이뤄지지 못했을까. 그 이유는 낮아진 법인세 환경에도 대기업이 투자에 적극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지난 15년간 현금을 계속 축적해 2020회계연도 30대 대기업의 사내 유보금, 즉 현금성 자산이 이미 천문학적인 규모인 1천50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지난 2008년 초부터 대기업 위주의 국가정책을 실행했음에도 기업들이 투자보다는 현금축적에 집중한 셈이다.

낙수효과를 인용하는 인사들이 주장하는 것과 달리 투자를 결정하는 기업임원회의 등에서 고민되는 결정적인 요인은 다가오는 미래의 산업전망, 글로벌 기술경쟁력과 재무여력을 포함한 기업 스스로의 역량수준이다. 실제로 법인세율 2~3%의 차이가 주요 고려사항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기업들이 투자를 적극적으로 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은 법인세 최고구간세율 3% 감세라는 탁상공론이 아니라 기업지배구조 혁신에 달려 있다. 기업이 스스로 적극적으로 투자를 고려해 자생적으로 하게 하는 기업지배구조와 기업문화를 확립하도록 해야 한다.

미국과 유럽의 상장기업들은 기업들이 막대한 이윤을 벌어들이는 시기에 기업가치 상승을 위해 적극적으로 신규투자하거나 주주들에게 배당금으로 환원하며 주주이익 증대에 나서지 않으면 이사회의 독립적인 사외이사들이 경영진들에게 기업가치와 주주가치의 하락을 경고하며 압박을 가한다. 경영진은 과도하게 현금성자산을 축적하기보다, 미래이익 창출을 위해 투자를 적극적으로 하든지 아니면 배당금으로 주주들에게 이익을 배분하는 결정을 하게 된다.

사내유보금, 즉 현금성자산이 자본잉여금으로 과도하게 계속 기업 내부에 축적되면 ROE(자기자본이익률)가 하락해 기업가치와 주가의 하락으로 이어지고, 독립적 이사회는 이렇게 기업과 주주가치 하락을 그대로 방치하지 않도록 거버넌스 구조가 확립돼 있기 때문이다. 현금을 계속 축적하는 자체가 비용이라는 점을 이사회가 인식하고 그런 경영행태를 막거나 아니면 안이하고 무능한 경영진을 축출한다.

이에 반해 한국의 상장기업들에서는 이사회의 사외이사들이 독립성을 지니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사회가 경영진에게 과도한 현금축적을 하지 말라 하는 요구를 못 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이런 낙후된 기업지배구조와 행태가 개선되고 혁신되지 않으면 기업들은 현금성 자산을 사내에 계속 축적만 하는 안이하고 나태한 행태를 지속할 뿐이고, 경제 선순환도 기업의 현금축적 성향으로 막혀버릴 뿐이다.

허구성이 입증된 '법인세 감소를 통한 낙수효과'에 목매어 기대보다 기업 사외이사들이 독립적으로 기업가치의 발전이나 주주가치 향상에 매진하도록 이사회의 독립성을 강화하는 기업지배구조개선 정책을 추진하는 게 올바른 방향이다.

한국의 법인세율이 외국보다 높다는 주장에는 두 가지 반론이 있다. 첫째, 명목적인 법인세율이 OECD 평균보다 약 2~3% 정도 높다 하더라도, 한국에서 주어지는 시설투자 관련이나 R&D 관련 세액공제율이 현행 6~10% 정도인 점을 감안하면 실질적으로 법인세율은 20% 이하로 떨어진다. 이런 점에서 이미 기업들의 국제적인 경쟁력을 이미 국가가 충분히 배려하고 있다. 둘째, 새로운 글로벌 선진국 트렌드는 법인세 감세가 아니라 강화이다. 최근 미국과 유럽국가들이 코로나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가격상승에 대처하기 위해 법인세를 강화하는 법안들을 제안하고 있고, 특히 에너지업계들의 초과이윤에 대해 초과이윤세를 부과한다는 사례까지 있다. 해외에서는 코로나 사태로 야기된 재정 소모에 대응하기 위해 법인세를 강화하려고 하는데, 우리나라의 새 정부는 반대방향으로 가겠다고 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새 정부 경제정책방향 발표회의'에 참석해 모두 발언에서 새 정부의 경제정책 목표를 민생위기 극복·경제성장·양극화 문제 해소 등으로 꼽았다. 윤 대통령의 취임사에서 매우 주목되는 부분은 '자유는 결코 승자독식이 아닙니다. 자유 시민이 되기 위해서는 일정한 수준의 경제적 기초, 그리고 공정한 교육과 문화의 접근 기회가 보장돼야 합니다'고 발언한 대목이다.

경제적인 약자들을 어루만지는 경제정책을 펼치겠다는 대통령의 의지로 들린다. 특히, 양극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설파하는데 필자도 진심으로 지지를 보낸다. 그러나, 걱정스러운 면은 양극화 문제라는 이슈 자체를 대통령이 매번 강조하는 데 반해, 고위 경제관료들이나 참모들의 입에서는 양극화라는 용어 자체가 언급되는 것을 들어본 기억이 없다. 대통령과 경제정책 입안자들 사이에 양극화 문제에 대해 괴리는 없는지 의문이다.

가장 최근 자료인 2018년도 데이터를 보면 소득불평등 척도인 P90/P10 배율기준으로 OECD 38개 회원국 중에서 한국보다 소득불평등도가 높은 나라는 콜롬비아와 코스타리카, 멕시코, 미국 등 4개 정도밖에 없다. 독일, 프랑스, 영국 등은 3.5~3.8 수준으로 한국보다 훨씬 낮다. 부와 소득의 양극화를 방치하고 악화하게 놔두면 경제적 약자들의 교육 기회가 박탈돼 인적자본(Human Capital) 형성이 망가지고 국가의 지속 성장은 심각하게 위협받게 된다. 윤석열 대통령이 리더십을 발표해 경제 양극화의 혁신에서도 성공하길 기원한다. (이승훈 ㈜KCGI 파트너/글로벌부문 대표)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사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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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훈 ㈜KCGI 파트너/글로벌부문 대표)
(이승훈 ㈜KCGI 파트너/글로벌부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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