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이후 25년간 경제 양극화는 악화만 되어 왔고, 한국의 중산층은 지속적인 몰락의 트랩에 빠져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으로는 소득을 잣대로 중위소득(전 국민을 소득순으로 줄을 세웠을 때 중간에 있는 소득)의 50~150%에 해당하는 가구를 중산층으로 보는데, 한국 중산층 비율은 1990년 무려 75.4%에 달했다. 그러나, IMF 사태로 인한 1차 중산층 몰락 시기를 지나며 2005년 69.2%로 하락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2차로 몰락해 2015년 67.9%, 2016년 66.2%, 2017년 63.8%, 2018년 60.2%에 이어 2019년 59.9%로 하락하며, 처음으로 60% 아래로 떨어졌다. 싱가포르의 중산층 비율은 80%에 달한다.

왜 한국은 싱가포르처럼 되지 못했을까. 1993년 2월 김영삼 정부 이후 지난 30년 동안 보수와 진보정권 모두 경제관료들이 주도한 정책의 결과라고 할 수밖에 없다. 김영삼 정부부터 경제관료들에 의해 주도된 대기업 위주 성장정책의 열매는, 대기업들과 상위소득 5% 집단이 대부분 향유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현 정부의 경제관료들이 아직도 주장하는 낙수효과, 즉 대기업들이 성장하면 모든 국민들이 고용 창출 등 혜택을 보고 잘살게 된다는 논거는 이미 허구임이 입증됐다.

양극화의 실상은 이러한 중산층 비율이 암시하는 것보다 더 심각하다. 정부가 사용하는 OECD 중산층 기준이 현실보다 중산층의 실질적 생활 수준을 과장되게 하는 면이 있기 때문이다. 즉, 중위소득의 50%를 버는 사람은 사실상 빈곤층인데, 정부가 따르는 OECD 기준으로는 이러한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

단적으로, 최저임금을 받는 근로자도 정부와 OECD 기준으로는 중산층으로 취급되는 경우가 발생한다. 그러나, 2022년 최저임금은 9천160원으로 연봉 기준 2천297만원 수준인데, 이 수준의 소득을 가진 근로자들도 중위소득 50~150% 구간에 들어간다. 하지만, 실제로 이 정도 연간 근로소득을 가지고 결혼, 출산, 육아에 대한 희망을 가지는 것은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 상식이다.

국가 지도자들은 자본주의가 필연적으로 요구하게 되는 '능력주의'의 부작용에 대해 제대로 인식하고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 즉, 좋은 소득의 일자리를 구하려면 더 많은 능력을 갖춰야 한다. 노동시장에 진입하기 전에 좋은 교육 등의 지원이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고소득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에 비해 저소득 가정에서 자란 아이는 고소득 일자리를 구할 가능성이 훨씬 줄어든다. 기회의 평등이 체감되기 어렵다는 얘기다.

소득 불평등 문제가 제일 양호한 유럽국가들도 시장경제 시스템에 그냥 맡겨두면 기회의 평등이 체감되기 더욱더 어렵게 된다며 약자들의 기회 보전을 위해 재정을 투입하는 경제정책 기조를 편다. 하물며, 한국처럼 소득의 상위계층이 취하는 독점화가 최고조로 심화한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국가의 적극적인 재정 지원 없이 공정경쟁, 상생 경제가 이뤄질 수 있을까. 그럼에도 한국의 복지비용지출비율(Social spending-to-GDP)은 OECD에서 바닥 수준으로 헤매고 있다. 현재 국가 위기적인 초저출생률 문제는 이러한 현실에 기인하며, 희망의 상실과 두려움에 뿌리를 두고 있다.

1980년대까지 국가경제계획 시대의 정부는 대기업 위주의 저금리 정책금융을 남발했고, 이로 인해 재벌들과 대기업들은 땅 짚고 헤엄치기로 전국의 땅을 사재기하며 너무도 손쉽게 부를 축적했다. 그러다가 노태우 정권 당시 김종인 경제수석의 토지공개념 도입으로 비업무용 부동산 등을 거의 몰수하다시피 하며 겨우 부동산 투기의 열풍을 잡고, 분당과 일산의 200만호 신도시 건설로 부동산 시장의 폭등을 진정시켜 안정화를 이루게 된다.

노태우 정부 기간은 현대 한국 경제사에서 명실상부한 중산층의 전성시대였다. 가구마다 자동차를 소유하기 시작하고, 고도로 성장하는 국가 GDP 명목성장률과 국민의 명목소득 성장률이 거의 동일하게 올랐다. 기업의 이익상승률과 소득명목상승률도 매우 비슷한 수준으로 상승하는 시대였다. 성장의 열매를 대기업들과 그리고 국민들이 거의 비슷하게 향유하는 수준이었다. 노태우 정권 시기에 일반 국민의 소득은 두 배로 성장하고, 중산층의 비율은 전체대비 78%에 육박했다.

그러나 1993년 2월 김영삼 정권이 들어서고 경제정책의 주도권을 위임받은 경제관료들의 주도하에서 완전히 대기업 친화적인 정책 기조로 바뀌며, 금융권으로부터 천문학적인 대출을 천정부지로 받는 대기업들로 인해 기업부채가 폭등했다. 이들의 문어발식 확장은 결국 한국을 IMF 위기의 나락으로 추락하게 했다.

이런 IMF 사태에서 중산층은 1차 몰락의 시기를 겪게 된다. 수많은 중산층의 가장들이 직장을 잃고 자영업으로 내몰렸다. 이후 김대중 정권 또한 심각한 우를 범하고 이러한 잘못은 노무현 정권까지 그대로 이어진다. 즉, 두 정권에서 내내 대통령들로부터 경제정책의 주도권을 위임받은 경제관료들은 재벌들과 대기업 위주의 경제정책과 운용을 통해 경제성장을 도모했다. 이로 인해 이 시기에 한국에서 처음으로 소위 재벌공화국이라는 용어가 등장하고, 이들의 경제적 힘과 영향력은 한국경제사회에서 압도적인 수준으로 변형되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2000년 초부터 다시 대기업들과 최상위 소득집단들의 토지 사재기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 이런 추세에다가 2010년대에 등장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초저금리 시대가 도래했다. 상위 5% 소득집단들이 보유 금융자산에 초저금리시대의 은행 담보 차입을 통해 레버리지 일으켜 빌딩들과 유휴토지 사재기에 나서면서, 한국에 실물자산의 독점점유화 현상이 굳어졌다.

IMF 사태 이후 대기업과 소득 상위 5% 집단의 토지 소유도는 4~6배로 증가해 소득 상위 5%와 대기업·중견기업들이 현재 전국사유지의 70% 가까이를 소유하게 됐다. 이는 산악지형을 제외하면 거의 전부라 할 수 있다. 토지 소유의 편중과 부의 불평등 심화는 유례가 없이 심각하다. 부동산 불로소득이 한국 명목 GDP의 30% 수준이다. 결국 소득 상위 집단은 부동산 불로소득을 거의 독점하고, 근로소득 또한 독점해 가는 상황이므로 국가 전체 소득의 불균형 및 독점화는 이대로 놔두면 치명적인 상태로 악화하게 된다.

2008년부터 '중산층의 2차 몰락' 현상이 시작된다. 이명박 정권 기간에 2008년 글로벌금융위기를 핑계로 재벌기업들부터 연봉을 20~30% 삭감하고 부장급들을 명예퇴직시키면서 촉발됐다. 이런 거시적인 현상에서 소위 대표적인 자영업의 상징인 '치킨집'의 폭발적인 등장 현상이 나타난다. 치킨집만이 아니라 전반적인 자영업의 폭증 현상이 발생하게 된다. 한국경제가 유달리 다른 OECD 국가들에 비하여 자영업의 비중이 높은 연유가 여기에 기인한다.

이 시기 매우 중요한 국제경제요인은 원유가격이 130~150달러 수준으로 치솟는 현상이었다. 한편, 일본이 2011년 3월 대지진으로 인해 태평양 연안 지대의 중화학공업 단지들이 거의 마비되면서, 한국의 핵심 수출 품목인 반도체, 정유, 석유화학, 철강 등이 상대적으로 대호황을 누리며 한국은 엄청난 규모의 무역수지 흑자를 향유하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 막대한 무역수지 흑자로 시장 환율이 자율적으로 절상됐다면 1,100원 수준으로 떨어지게 되는데, 실제 시장에서의 환율은 계속 1,250원 수준에 머물렀다. 이때 고위 경제관료들이 소위 '환율 주권' 운운하며 대기업들의 수출경쟁력 유지만을 위해 적극적으로 환율을 1,250원에 유지되도록 하는 정책을 펼친 것으로 추정할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해 세계 2위의 원유 수입국인 한국은 환율이 1,100원 수준인 경우와 비교했을 때 거의 60조원 이상을 매년 불태워 버린 셈이 된다.

원유수입액 상승의 부담은 오롯이 중산층 서민들에게 전가됐다. 대부분 대기업은 2008년 글로벌금융위기 촉발 시기에 20~30% 삭감된 기업들의 연봉 수준을 2012년 말까지 기업 전반에 걸쳐 동결한다. 동시에 급상승하는 원유가격과 원자재가격이 인위적인 환율정책으로 인해 그대로 국내경제 물가상승으로 연결되고, 이로 인해 근로소득자들의 평균 실질임금(real wage)은 50~60% 정도 감소한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중산층은 저축이나 투자를 통한 부의 증진을 도모할 기회가 박탈됐다.

설상가상으로 중산층이 자녀들의 교육을 위해, 값비싼 미국보다 저렴한 캐나다와 호주로 유학을 보냈던 현상이 두드러졌는데, 호주와 캐나다는 철광석 등 광물 원자재 주요 수출국이었고, 원자재 가격의 폭등으로 캐나다와 호주 달러의 가치상승이 심각했다. 중산층은 이러한 국제환율 동향에도 직격탄을 맞아 저축, 여유자금을 깨거나 스스로 명예퇴직하는 독배를 마시게 됐다.

대기업에 초점을 맞춘 경제정책은 환율만이 아니다. 산업용 전기는 민간용 전기보다 매우 저렴하게 늘 공급돼왔다. 또한, 이명박 정권의 경제관료들은 4대강 사업에 60조원을 투입하면서 담합을 일삼은 대기업 건설회사의 호주머니만을 두둑하게 해줬다.

글로벌 금융위기와 일본 대지진사태 이후 한국의 대기업은 대규모의 수출 호황을 누리게 됐다. 벌어들이는 수출소득과 이익은 고환율체제로 인해 천문학적인 원화 소득으로 연결되는데, 이후 10여년 동안 대기업들은 신규 고용 창출로 경제 선순환에 기여하기보다는 기업 내부에 현금을 지속해서 축적하는데 몰두하는 성향만을 보이게 된다.

즉, 2011년 이후 한국의 대기업들은 무려 1천조원에 달하는 현금성 내부유보자산을 축적해 움켜쥐고 있을 뿐이다. 이명박 정권에서 경제관료들이 추진한 감세정책은 이들 대기업에 더블 보너스로 다가왔지만, 경제 선순환이라는 낙수효과는 실제로 전혀 나타나지 않고, 한국 중산층을 계속 몰락하게만 해온 셈이다. 이런 상태에서 2020년 코로나 시대에 완전히 3차 몰락의 위기를 맞게 됐다.

지난 30년 동안 한국의 경제관료들은 낙수효과를 외치며 대기업 위주의 경제정책을 주도하며, 이런 정책이 결국 국민들과 국가를 위한 것이라고 설파해왔다. 물론 국가 전체의 경제 규모는 GDP 기준 세계 10위로 성장했다. 그러나 경제성장의 과실은 대기업과 최상위 소득집단에 의해 독점화됐고, 중산층의 몰락으로 경제 양극화가 악화해 초저출생률 문제를 초래하게 됐다. 생활을 비관해 치솟는 자살률은 세계 최고이고 합산출생률은 세계 최하 수준으로 가히 기형적이며 국가 위기 상황이다.

현 정부의 경제관료들은 아직도 아무도 양극화의 개선이나 경제적 약자와의 동행을 입에 담지 않는다. 오로지 감세정책은 낙수효과가 있다는 과거의 주장만을 되풀이한다. 위선인가 무지인가 아니면 나태인가. 그나마 다행인 것인 윤석열 대통령 본인만은 경제관료들과 달리 양극화를 개선하며 경제적 약자를 돌보겠다는 의지를 광복절과 추석 메시지에 강조하며, 이런 시대적 과제에 유념하는 것으로 보인다. 현시점에서 유일한 희망이라 하겠다. 대통령의 진심이 경제관료들을 잘 통제해 참된 경제부국을 위한 경제정책을 추진하기를 기원한다. (이승훈 ㈜KCGI 파트너/글로벌부문 대표)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사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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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훈 ㈜KCGI 파트너/글로벌부문 대표)
(이승훈 ㈜KCGI 파트너/글로벌부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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