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한국 사회는 이기적 집단주의의 극심한 팽배로 인한 분열과 갈등에 찌들고 헤매고 있다. 올바른 가치나 철학은 중요하지 않다. 오로지 내 편 아니면 적이라는 선 긋기만이 있을 뿐이다. 이런 집단주의에 국가와 절대다수 국민을 위한 가치 추구는 중요하지 않고, 우리 편이냐 아니면 너희 편이냐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잣대로 작동된다. 자기가 속한 집단을 위해서는 거짓말과 가짜뉴스를 공공연하게 외쳐도 조금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하는 듯한 행동을 일삼는다.

상대 진영을 헐뜯기 위해 자극적이고 사실 확인도 하지 않은 뉴스를 퍼뜨리며, 관종적 행위에 나서는 것을 오히려 즐기듯 한다. 마치 유튜브 조회 수가 매출 이익을 결정하므로 매일 아침 자신의 자극적인 언행이 얼마나 인터넷상에서 클릭을 받는지 확인하는데 몰두하는 것 같은 행동들이 국회의원, 언론인, 교수라는 포장 속에서 점점 더 많이 등장하는 듯하다.

각각의 이기적 집단이 점점 폐쇄적으로 되어가는 현상이 자연스럽게 발현하는데 이는 더욱 심각한 위험성을 내포하게 된다. 소속된 집단의 이기적 이득 관계에서 벗어나서 전체의 이득을 생각하고 추구하지 않으면 그 집단의 이기적 이득의 토대, 즉 국가공동체의 기초가 원천적으로 붕괴되는 위험에 처하게 된다. 이런 집단적 이기주의가 더욱 팽배해지는 사회에서 나타나게 되는 가장 무서운 폐해는 폐쇄성이 극도로 심화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폐쇄성으로 인해 지속가능한 경제발전을 위하여 필요한 부(富)와 투자의 선순환, 지식과 혁신의 선순환, 이에 따른 신분의 이동성(mobility)이 모두 막히게 되고, 결국 사회가 절망과 포기에 휩싸여 나라는 망국의 길로 추락하기 시작한다. 폐쇄성이 증가되어 결국 몰락한 국가의 사례는 역사에 많다.

이러한 현재 한국 사회에 팽배한 혼돈과 분열의 시대를 넘어서 과연 이 나라를 참된 경제부국으로 이끌어갈 영웅적 국가지도자는 정말 나타나기나 할 것인가. 이런 국가지도자는 어떤 자질을 가지고 있어야 할까.
한국에는 원래 집단주의 문화가 많이 존재하는 편이다. 역사적으로 순종을 강조하는 유교의 영향이 있으며 지금도 툭하면 정치인들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멸사봉공'과 '선공후사'라는 집단주의적 사자성어도 유교에서 유래하였다. 농경 사회에서 촌락공동체를 이루고 농경 생활을 해왔던 전통에서도 집단적 문화의 요소가 많았다. 이러한 집단주의적 전통문화 요소가 많이 내재된 위에 일제강점기와 군사독재 시절을 겪으며 개인주의가 경시되면서 집단주의적 경향이 더욱 심화되었다.

현재 한국 사회는 소위 보수와 진보라는 두 개의 집단주의가 크게 형성되어 있는데 이런 용어의 선택에 공감하지 않는다. 진정한 보수도 없고 진정한 진보도 없이 오로지 권력에 대한 탐욕으로 뭉쳐진 패권주의가 이기적 집단주의로 발현되고 있을 뿐이다.

보수진영, 즉 우파는 군사독재와 국가계획경제 산업개발 시대부터 급속도로 부를 축적한 자본가 계층과 그 주변인들이 근저를 이루고 여기에 경제관료들이 가세해 이뤄졌다. 고도성장의 열매를 대기업들과 그리고 일반 중산층 국민들이 거의 비슷하게 향유하며 현대 한국 경제사에서 명실상부하게 중산층의 전성시대였다고 할 만한 노태우 정부 다음에 집권한 김영삼 정부 이후, 지난 30년 동안 보수와 진보정권의 모든 대통령은 경제 권력을 경제관료들에게 위임해주는 역사적 과오를 저질렀다. 이로 인해 경제관료들이 30년 동안 줄기차게 주도한 대기업 위주 정책의 결과로 경제 사회적 양극화는 악화만 되어 왔고, 이러한 과정에서 부를 축적하고 독점하기 시작한 기득권 계층이 소위 우파진영을 좌지우지하는 형국이 됐다.

김대중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 시대를 지나면서, 그리고 그 이후 등장한 노무현 정부도 특별히 준비한 경제철학이 없었다. 당면한 경제위기를 빨리 벗어나기 위해 경제관료들에게 경제정책을 일임하다시피 했고 가장 피해를 보는 중산층의 고통과 몰락을 고려한 경제정책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다. 중산층을 위한 경제철학의 부재로 극단적인 좌파 경제사상을 들고 오는 운동권 세력에게 당시 민주당은 잠식되어 갔다.

군사독재에 저항하며 소위 민주화 운동을 한 운동권 세력들도 태동할 때부터 집단주의적 문화와 결속을 강조해왔다. 정치권의 핵심부로 진출한 이후에도 집단주의적 성향은 더욱더 강해졌다. 이들 운동권 세력이 민주당의 권력을 흡수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강성노동조합들과 연합전선이 이루어졌고, 여기서 현재 소위 좌파의 집단적 이기주의가 완전히 팽배해졌다.

산업개발로 부를 급속도로 축적한 계층이 더 독점화하려는 기득권세력으로 자리 잡고, 이런 세력에 맞서서 자기들의 이득을 보호하겠다는 명분을 내세우나 이미 스스로 집단이기적 이득만을 추구하는 또 하나의 기득권세력으로 변모한 노동조합 집단들과 운동권 세력들로 한국 사회가 양분되면서 현재의 혼돈과 분열이 나타났다.

보수와 진보, 또는 우파와 좌파 양 진영이 유권자 기준으로 그들 각각의 이기적 집단주의를 추종하는 세력은 각각 25% 정도로 본다. 나머지 50%의 절대다수 국민들은 조용히 지켜보는 집단인데 이들은 스스로의 이익을 도모할 집단적 카르텔을 형성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양대 세력이 충돌할 때마다, 그리고 이들 두 세력의 갈등과 분열 조장에 이들 절대다수 국민들의 이득은 침해당하기 일쑤고 그 피해를 늘 제일 먼저 부담하게 된다. 소위 이들은 모두다 '사회적 약자'들이다.

이러한 혼돈과 분열의 시대를 넘어서 한국을 참된 경제부국으로 이끌어갈 영웅적 국가지도자의 자질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개인이나 집단적 당파의 이익보다 전체 국가공동체의 이익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실천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또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고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이다.

특히 첫 번째 자질이 매우 중요하다. 그 이유는 현재 한국을 뒤덮은 집단적 이기주의 망령을 해소하기 위해서다. 현실에서 자신을 선임해주고 옹호해준 집단의 이기적 이득 관계를 무시하고 전체 국가공동체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것은 엄청난 기백과 결단력이 요구된다. 역사적으로 과연 이런 국가지도자가 있었을까.
미국의 역사를 살펴보면 금방 나온다.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은 산업혁명 이후 급속도로 부를 축적한 자본가 계층들과 노동자 계층들 사이에 첨예하게 나타난 1900년대 초 미국의 분열된 갈등 속에서 밀어닥치는 경제위기를 극복하면서 주요 기간산업들을 독점화하려는 집단들(트러스트와 카르텔)을 타파했다.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전통에 얽매이지 않고 행동하고 실천하는 대통령의 리더십을 보여줬다는 평가다. 루스벨트는 본인이 소속된 공화당이 당시 부를 축적한 자본가들과 연합한 정치세력인 공화당 소속이었지만, 그가 실행한 개혁정책은 공화당을 위한 것이 아니라 미국국가 전체의 발전과 이득을 위한 것들이었다.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기주의를 극복한 것이다.

그는 뉴욕주 주의원으로 선출되어 왕성하게 활동하던 26세의 나이에, 어머니는 장티푸스로, 그리고 며칠 전에 첫딸을 출산한 아내는 동일한 날 12시간 만에 급성 신장병으로 사망하는 참사를 당한다. 같은 날에 사랑하는 어머니와 갓 태어난 딸을 놔두고 사망한 아내를 보았던 그의 마음은 얼마나 참담하고 아팠을까. 본인 스스로 그날 일기에 '이제 빛이 내 삶에서 사라졌다'고 썼고, 이틀 후에는 '이제 내 삶에는 기쁨도 슬픔도 없다'고 적었다. 그의 집안은 뉴욕주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갑부였고, 하버드대학과 컬럼비아대학교 법과대학원에서 공부한 미국 최고의 엘리트 출신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런 부유하고 풍족한 배경에서 오는 선민의식이나 특권의식을 큰 슬픔과 역경의 여파로 떨쳐내기 시작했고 공정한 사회건설에 대한 신념과 철학을 키웠다.

미국-스페인전쟁에 직접 참전하여 기병대를 이끌고 큰 전공을 세우고 나서 곧바로 1898년 뉴욕주 주시자에 공화당 소속으로 당선된다. 주지사 시절에 실행한 큰 개혁 중 하나가 정치권과 결탁하여 전차, 전화, 전신 등에 엄청난 가치의 영업권을 독점을 허용받은 기업들에 대하여 과세를 제대로 실행하는 것이었다. 당시 영업권을 독점한 기업들은 공화당의 지도자들에게 선거자금을 기부 형태로 보상하고 그 자금은 주의회에 출마한 후보들에게 분배되고 있었다.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민주주의의 본산이라는 미국의 120년 전 과거에는 흔한 일이었다. 그는 이러한 관습에 맞서서 공공으로부터 많은 이익을 얻는 기업이라면 그에 합당한 공적 부담을 감당해야 한다며 영업권에 대한 과세법안을 주의회를 통해 전격적으로 통과시키는 개혁을 실행한다.

루스벨트가 추진한 여러 개혁정책에 화가 난 공화당 지도자들이 생각해낸 묘책이 역사적으로 참으로 아이로니컬한 결과로 진행된다. 즉, 껄끄러운 루스벨트를 뉴욕주지사에서 몰아내기 위해 그를 윌리엄 매킨리 대통령의 러닝메이트, 즉 부통령 후보로 지명하여 뉴욕 정계에서 제거하되 루스벨트의 전국적 명성은 매킨리의 재선에 활용하면서 아무런 권력이 없는 부통령으로 내치는 것이었다. 결국 매킨리가 대통령에 재선되지만 몇 개월 후 암살당하고 1901년 9월 42세라는 미국 역사상 가장 어린 나이에 대통령에 오르며 백악관을 차지하게 되는, 개혁에 반대하는 정치 세력들은 예상치 못한 역사가 발생한다. 대통령이 된 후에 석유, 철도, 철강, 식품업 등에 형성되던 카르텔과 트러스트 등의 소위 재벌기업집단들을 해체하는 역사가 이루어지고 이는 미국이 전 세계 초강국으로 등장하는 데 매우 중요한 토대가 된다.

소속 집단 이기주의를 벗어나겠다고 국민에게 선언했다가 대통령이 되자마자 헌신짝처럼 팽개쳐버린 케이스가 박근혜 대통령의 경제 민주화 공약이었다. 돌이켜보면 지난 30년 동안 한국 사회에서 기존의 집단이기주의, 즉 기존 정치세력이나 부를 축적한 자본가 계층에 빚을 지지 않고 혜성처럼 등장해 결국 대통령에 오른 사람은 오로지 두 사람, 노무현과 윤석열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경제정책을 경제관료 집단에 위임해버리는 바람에 결국 재벌공화국 탄생 정부라는 평가를 받지만, 소속된 집단적 이기주의를 벗어나 국가 이해를 먼저 고려해 실행한 거의 유일한 사례를 남겼다 하겠다. 즉, 당의 반대를 무릅쓰고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고, 미국의 요청대로 중동에 군대를 파병하는 등 소속 집단이기주의보다는 국가 전체의 이득을 먼저 생각해서 실행하는 사례를 남겼다.

또한 노 대통령이 속한 집단이기주의와 달리 실행하려고 했던 것이 제주도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이다. 윤 대통령이 강정기지에서 대선 캠페인 연설을 하다 노무현을 생각하며 울먹였는데, 노 대통령이 진정하게 용기를 내던 기운과 연결되어 집단이기주의에 매몰되지 않고 이 나라를 양극화와 초저출산의 국가 위기에서 이끌어 나가는 강인한 기백으로 촉발되기를 바란다.

윤석열 정부의 어떤 경제관료도 아직까지 시대적 국가과제인 양극화의 해소를 입에 담지 않는다. 하지만 윤 대통령 본인은 광복절 축사나 추석 인사 등에서 지속적으로 사회적 약자들과 동행하며 양극화를 개선한다는 비전을 밝혔다. 지금 화물연대의 운송거부를 결단성을 가지고 대응하며 사회적 약자들의 피해를 걱정하듯이 사회경제 양극화 해소를 위한 실질적 경제정책을 제시한다면 능히 루스벨트 대통령과 같은 역사를 만들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런다면 이 나라를 위해 정말 좋은 일이 되겠다.

(이승훈 ㈜KCGI 파트너/글로벌부문 대표)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사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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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훈 ㈜KCGI 파트너/글로벌부문 대표)
(이승훈 ㈜KCGI 파트너/글로벌부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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