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지난 5월 16일, 불과 한달 반 전의 일이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회동을 하고 나온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기자들 앞에서 "향후 빅스텝(기준금리 50bp 인상)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단계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연합인포맥스를 통해 '빨간줄' 긴급속보로 나간 이 발언으로 통화정책에 민감한 채권시장은 그야말로 사달이 났다. 국고채 3년 금리는 이날 하루에만 14bp 치솟으며 3.0%대를 뚫었다. 이 총재와 한은에 대한 시장의 원성이 가득했다. 채권가격이 급락하면서 손실이 커진 이유가 물론 있었지만, 빅스텝을 하지도 못할 거면서 왜 노이즈를 일으키는지에 대한 불만이 더 컸다고 보인다.

7월 금융통화위원회를 열흘가량 남긴 지금은, 빅스텝 전망이 전혀 생경하지 않다. 갈수록 7월 빅스텝을 당연시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미국의 6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가 시장 컨센서스의 커다란 변곡점이 됐다. 연방준비제도(Fed)가 지난달 자이언트 스텝(75bp 인상)을 단행하면서다. 이후에도 물가 공포는 계속되고, 연준이 7월에도 자이언트 스텝에 나설 것이란 전망에 무게가 실리면서 한은도 빅스텝을 피하기 어려울 거라 보는 것이다.

오는 5일에 나오는 우리나라의 6월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이 변수가 될 것이란 시각도 있지만, 이 숫자와 상관없이 한은이 빅스텝을 단행해야 한다는 당위론도 만만찮게 강하다. 한은은 빅스텝 금리 인상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인 만큼 금통위 당일까지도 신중에 신중을 기할 것으로 보인다. 변동금리 대출 위주의 국내 대출시장에 대한 파괴력, 그리고 빠르게 퍼지고 있는 경기 침체 우려 등도 빅스텝을 단행하는 데 부담이 되는 요인이다.



한국은행 기준금리 컨센서스
연합인포맥스 컨센서스 종합(8852)








그럼에도 한은의 빅스텝 결단이 필요해 보이는 건 당장 물가 사정이 너무 안 좋기 때문이다. 추경호 부총리는 6월 지표는 물론 7월과 8월에도 6%대 물가 상승률을 예고한 바 있다. 6월 CPI가 예상보다 다소 낮게 나오더라도 다음주 금통위에서 빅스텝을 단행해야 인플레 기대심리를 일정 수준 낮추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6월 기대인플레이션율은 3.9%로 전월보다 0.6%포인트나 올랐다. 한달 상승폭으로는 역대급 기록이다. 실제 물가 지표보다 인플레 기대심리가 더 앞서가는 상황으로 해석된다. 통화당국의 고강도 긴축은 인플레 심리를 억제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다.



기대인플레이션율과 소비지수·주택가격 전망
연합인포맥스 경제종합(8282)








한미 금리 역전에 따른 환율 불안도 빅스텝의 당위성을 높이는 부분이다. 달러-원 환율은 올해 상반기에만 100원 넘게 급등해 1,300원선을 오르내리고 있다. 지금은 한미 간 기준금리 상단이 같은 수준이지만, 연준이 7월에도 자이언트 스텝을 밟으면 금리차가 본격적으로 벌어지게 된다. 국내 증시 등 금융시장에서 외국인 자본 유출이 가속화할 수 있다. 한은이 빅스텝 단행으로 미국과 금리차를 최소화해야 하는 이유다. 한은도 지난달 물가 설명회 보고서에서 "앞으로 통화정책은 물가, 경기, 금융안정, 외환시장 상황 등 향후 발표되는 경제지표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하겠다"며 외환시장 상황을 주요 변수로 명시했다. 환율 급등을 억제하는 건 수입물가 등 물가 안정에도 적잖게 도움을 줄 수 있다.



달러-원 환율과 달러인덱스, 위안화 추이
연합인포맥스 경제종합(8282)








빅스텝 단행에 따른 시장 충격은 생각보다 크지 않을 전망이다. 미 연준의 자이언트 스텝 이후 한은의 빅스텝 가능성은 금리와 주가 등에 꾸준하게 반영돼 왔기 때문이다. 시장이 빅스텝을 일정 수준 감내할 준비가 돼 있는 지금이 결단을 내릴 호기일 수 있다.

한은 내부에선 하반기 늦게 또는 내년의 경기지표 악화 가능성을 걱정하는 시각도 일부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빅스텝 등 공격적인 금리 인상이 경기 둔화 또는 침체를 자극하지 않을까 우려하는 것이다. 하지만 충분한 금리 인상은 정책 여력 확보라는 취지에서 보면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일부 전문가의 예상대로 내년 물가 상승과 기대심리가 억제되고, 경제는 침체되는 조짐을 보이면 그때는 다시 빠른 금리인하가 강력한 정책 수단이 될 수 있다. 이 총재와 한은 측이 계속 강조해 온 '데이터 디펜던트(data dependent, 경제지표 의존)' 정책의 시험대가 활짝 열린 셈이다. (취재본부 금융시장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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