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3회 연속 기준금리 인상, 그리고 빅스텝(50bp) 인상까지. 일흔 살을 훌쩍 넘긴 한국은행도 가보지 않은 길이다. 빅스텝과 자이언트스텝(75bp 인상 또는 인하)의 정책금리 변경이 어색하지 않은 시절이 도래한 셈이다.

역대급 물가 상황이니 역대급 정책 대응이 나오는 건 당연한 일이겠지만, 이런 빅스텝 인상이 지속될 수 있을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앞으로 금리 인상은 스몰스텝(25bp)으로, 잔걸음이 예상되는 반면에 어느 시점에서 경기 대응에 나선다면 그때는 오히려 빅스텝 인하가 진행될 여지가 커졌다고 본다. 역대급 물가와 강력한 금리인상의 반작용인 경기침체가 역대급의 속도로 찾아올 수 있는 환경인 탓이다.

경제 심리를 통해 경기 둔화 조짐은 이미 곳곳에서 감지된다. 한은이 조사한 6월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96.4로 5월보다 6.2포인트 떨어졌다. 1년 4개월 만에 처음 기준선인 100을 밑돌았다. 향후경기전망과 현재경기판단 지수는 전월대비 각각 15포인트, 14포인트나 추락했다. 우리나라 경제에 대한 가계의 심리가 급격하게 악화하고 있다는 의미다.

기업들의 경제 심리도 크게 위축된 것으로 확인된다. 기업경기실사지수 내 제조업과 비제조업의 업황전망은 전월 대비 각각 3포인트, 5포인트 떨어졌다. 이달 한은의 빅스텝 인상에 이어 추가적인 고강도 금리인상의 우려가 커지면 경제 심리 악화에 따른 경기 하강 속도가 가속화할 수 있다. 한은이 추가적인 빅스텝 인상을 놓고 신중에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13일 금융통화위원회 기자회견에서도 이창용 한국은행총재의 고민을 엿볼 수 있었다. 이 총재는 기자회견 모두발언에서 빅스텝 인상의 배경을 따로 설명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는데, 시장의 추가적인 빅스텝 우려를 다분히 의식하고 있었던 셈이다. "국내 물가 흐름이 현재 전망하는 경로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면 금리를 당분간 25bp씩 점진적으로 인상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고 있다"는 대목이 특히 눈길을 끌었다. 시장의 연말 기준금리 전망치인 2.75~3.00% 수준이 합리적이라고 평가한 부분도 가급적 빅스텝 카드를 자제하겠다는 의미로 읽혔다.



기자간담회 하는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서울=연합뉴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3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통화정책방향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2.07.13 [사진공동취재단] photo@yna.co.kr






추가 빅스텝 인상이 이뤄지면 중립금리에 대한 논란은 더욱 가열될 것이다. 한은이 중립금리를 공개하지는 않지만, 시장에서 보는 중립금리 수준은 2.5% 안팎이다. 빠르게 높아진 기대인플레이션율을 고려해 2% 중후반대로 보는 시각도 있다. 8월에 추가적인 빅스텝 인상이 단행돼 기준금리가 2.75%로 높아지면 중립금리 수준을 넘어서는 상황이 올 수 있다. 중립금리를 웃도는 기준금리는 금리 정상화를 넘어 본격적인 통화긴축의 개막이나 다름없다. 이 역시 경제 심리와 실물경제를 빠르게 냉각시키고, 금융시장의 불안을 촉발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이 총재는 7월 빅스텝으로 기준금리가 중립금리의 하단에 왔음을 인정하면서도 한두 번 더 올려도 긴축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빅스텝보다는 점진적 인상을 가정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이 총재의 시그널이 명확해진 기자회견에 대해 시장은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다. 속도가 매우 빨라진, 그리고 주기가 매우 짧아진 경기와 물가 사이클 속에서 통화정책 방향과 속도를 예측하기가 어려워진 상황이라는 점에서 더 그렇다.

글로벌 불확실성과 대형 돌발 변수의 잦은 등장으로 한층 더 어지러워진 경제 여건에서 한은 등 중앙은행의 역할론은 앞으로 더 부각될 것이다. 반대급부로 중앙은행에 대한 금융시장의 도전은 더욱더 무모한 일이 될 수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시장 달래기 정책으로 대표되는 이른바 '연준풋', '파월풋' 등은 당분간 기대하기 어렵다는 얘기도 된다. 중앙은행의 정책 방향을 잘 읽어내고, 그 흐름을 잘 타는 소수의 시장 플레이어만이 성공의 열매를 수확하는 매크로의 시대가 활짝 열렸다. (취재본부 금융시장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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