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김정호 베어베터 대표는 벤처 업계에서 성공한 '흙수저' 최고경영자(CEO) 중 한 명이다. 고려대를 졸업하고 삼성SDS에 입사해 열심히 일한 덕에 잘 나가던 김 대표는 1999년 동료였던 이해진(현 네이버 글로벌투자책임자(GIO))과 함께 네이버를 창업했다. 김 대표는 삼성SDS에서 일한 10년 동안 월급을 한 푼도 쓰지 않고 저금했다. 남들이 싫어하던 출장도 도맡아 가고, 야근도 좋아했다고 한다. 출장비와 야근비가 생활비였기 때문이다. 삼겹살을 맘껏 먹을 수 있는 회식도 좋아했다고 한다. 식비를 절약할 수 있어서다.

네이버의 성공으로 2009년 퇴직할 때 400억원의 거금을 챙길 수 있었고, 현재의 베어베터를 창업하는데 종잣돈으로 쓸 수 있었다. 2012년에 만든 베어베터는 사회적 기업이다. 일자리를 얻기 어려운 장애인들을 고용해 명함과 쿠키, 커피, 화환 등을 만들어 기업들에 납품한다. 장애인들에겐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 주고, 기업들엔 좋은 품질의 제품을 생산해 납품할 수 있어 사회적 기여도도 높은 기업으로 꼽힌다.

직장생활 10년 동안 월급을 모조리 저금하는 게 가능한가 싶겠지만, 김 대표는 '가능하다'는 것을 몸소 보여줬다. 쉽지 않았겠지만. 그가 그렇게 열심히 모았던 돈은 1억1천만원 정도였다, 적은 돈은 아니었지만, 현재 '노도강(서울 노원·도봉·강북구)' 지역에 있던 25평 아파트를 사기에는 부족했다고 그는 회고한다. 사실 그때나 지금이나 젊은 직장인이 월급을 모아 집을 사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오히려 집값 수준이 훨씬 높아진 지금이 더 어려울지도 모른다. KB국민은행에 따르면 서울의 소득 대비 주택가격(PIR)은 18.4(3월 기준)로 치솟았다. 중간 소득 가구가 중간가격 수준의 집을 사기 위해 월급을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으는 데 18년이 넘게 걸린다는 얘기다.

빅스텝·자이언트스텝으로 불리는 급격한 금리 인상 시기에 들어섰다. 대출을 받아 집을 산 젊은 세대들의 이자 부담이 급격하게 불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치솟는 물가가 잡히지 않는 가운데 경기둔화도 본격화하고 있다. 월급만 빼고 다 오른다는 얘기는 이미 공공연하게 나온다. 삶의 질 저하에 대한 대책 마련은 물론 생존력을 높이기 위한 마음을 다지는 것과 동시에 물적 토대를 어떻게 준비해야 할 것인지도 고민해야 할 상황이다. 물가가 잠잠해지고, 금리 인상이 멈추고, 경기에 다시 온기가 살아나기까지 얼마나 걸릴지 예단할 수 없다. 그래서 더 불안해진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우리 주변에선 20여 년 전의 또 다른 김정호들이 나타나고 있다. 최근 들어 MZ세대 사이에서 유행하고 있는 게 있다. '무지출 챌린지'다. 말 그대로 온종일 한 푼도 쓰지 않고 버티는 것을 말한다. 한번 뿐인 인생 즐기고 살자며 맘껏 소비하던 '욜로(YOLO, You only live once)'와는 완전히 다른 삶의 방식이다. 하루 세끼를 회사 구내식당에서, 커피는 스타벅스가 아닌 회사 탕비실에서 해결한다. 주말에 외식하는 것은 언감생심이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는 각자의 노하우를 공유하기도 한다. 인증샷은 기본이다. 유튜브를 통해 정보를 공유하기도 한다.

절약이 미덕이라고는 하지만, 최근 MZ세대의 이러한 모습은 사실 씁쓸한 면이 많다. 그만큼 경기 상황이 녹록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면이기 때문이다. 치솟는 물가에 실질 가처분 소득이 줄어드니 소비부터 줄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지난달 소비자물가는 6.0%나 뛰어 23년 7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여기에 실업률까지 포함한 국민고통지수는 7년 만에 최고다. 수치가 보여주듯 삶은 팍팍해진다. 무지출 챌린지는 어찌 보면 각자가 현실을 인지하고 찾은 최소한의 대책일 수도 있다. 하지만, 현재 상황을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정부와 기성세대에 대한 젊은이들의 '조롱'이기도 하다. 축산물과 커피, 와인, 사케 소비를 줄이고 대중교통 이용을 늘리자면서 '고통 분담' 없이는 물가를 못잡는다는 전직 고위 관료의 칼럼 속 발언은 그래서 더 씁쓸하다. 정부는 국민이 정상적인 소비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는 토대를 만들 의무가 있다. 무지출 챌린지가 그저 한 때의 해프닝으로 끝나는 시기가 빨리 오길 기대해 본다.

(기업금융부장)

pisces738@yna.co.kr



※쿰파니스는 라틴어로 '함께(cum)'와 '빵(panis)'이 합쳐진 말로 동료나 친구를 뜻하는 컴패니언(Companion), 기업을 뜻하는 컴퍼니(Company)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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