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포워드 가이던스(forward guidance, 사전 안내)는 끝났다".

유럽중앙은행(ECB)의 깜짝 빅스텝(50bp) 금리인상 이후 중앙은행의 포워드 가이던스 정책에 대한 무용론이 확산하고 있다. ECB의 기존 가이던스는 '명백하게' 점진적 인상에 맞춰졌다. 심지어 크린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는 지난달 통화정책회의에서 "7월에는 기준금리를 25bp(베이시스포인트) 인상할 방침"이라고 구체화했다. ECB 총재의 진단은 '명백한' 오판이 됐고, 포워드 가이던스는 시장의 신뢰를 잃었다.

포워드 가이던스 무용론이 나오게 된 발단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에 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5월 통화정책회의 때 자이언트 스텝(75bp) 인상 가능성에 대해 "적극적으로 고려하는 대상이 아니다"고 했다. 한달 후 연준은 자이언트 스텝을 단행하며 시장을 놀라게 했다. 연준과 ECB의 잇따른 헛발질 이후 도이체방크 등 투자은행들은 "거의 모든 곳에서 포워드 가이던스가 끝났다"고 평가했다.

모처럼 분명한 가이던스를 제시한 한국은행의 사정도 곤란해질 판이다. 이창용 총재는 7월 금융통화위원회 기자간담회에서 "당분간 25bp씩 점진적으로 인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물가 전망이 전망 경로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면'이란 전제 조건을 달기는 했지만, 25bp라는 구체적인 숫자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과거 한은에서 보기 힘든 분명한 포워드 가이던스였다.



비상 거시경제금융회의 참석한 이창용 총재
(서울=연합뉴스) 김인철 기자 =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4일 오후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비상 거시경제금융회의에서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발언을 경청하고 있다. 2022.7.24 [공동취재] yatoya@yna.co.kr








이창용 총재 이전의 한은은 '당분간', '적절히 조정' 등의 다소 모호한 표현을 사용했다. 연준의 역대 의장으로 보면 앨런 그린스펀 전 의장의 '모호한' 화법과 가이던스 방식을 선호했던 셈이다. 한은의 포워드 가이던스 변화는 이 총재의 솔직하고 직설적인 화법과도 관련이 있다.

연준과 ECB의 가이던스 실패 이후 시장은 한은의 가이던스에 대해서도 물음표를 던질 것이다. 점진적 금리인상이라는 이 총재의 포워드 가이던스 덕에 안도했던 시장이 다시 혼돈에 빠질 여지가 생긴 셈이다. 시장은 통화정책에 영향을 주는 지표가 나올 때마다 더 민감하게 반응해 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 그렇다고 한은이 포워드 가이던스 방식에 다시 변화를 주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이창용식의 가이던스 풍토를 만들어갈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포워드 가이던스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던 벤 버냉키 전 연준 의장의 저서 '21세기 통화정책'에 따르면 중앙은행의 포워드 가이던스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된다. 전망의 성격에 가까운 '델파이적 가이던스(Delphic guidance)'와, 약속·예고에 가까운 '오디세이적 가이던스(Odyssean guidance)'다.

이창용 총재가 7월 금통위 때 제시한 포워드 가이던스는 물가 전망을 기초로 했다는 점에서 '델파이' 방식에 가깝다고 보여진다. 이 전망이 달라지면 금리인상 속도 등에 변화가 생길 수는 있겠지만, 한은의 전망을 시장 참가자들에게 명확하게 전달함으로써 시장의 불확실성을 줄이는 데 큰 효과를 봤다. 거시경제 불확실성이 매우 커진 상황이라 한은도 전망을 빠르게 수정할 필요가 있으며, 동시에 이 전망치를 빠르게 시장에 전파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시장과 소통하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 포워드 가이던스가 될 것이다. 이제 막 출발한 이창용식의 가이던스가 연준과 ECB의 헛발질에 위축되지 않고 보완, 발전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예측 가능한 정책이 시장의 안정을 가져오는 법이다. (취재본부 금융시장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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