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반도체는 우리 경제를 먹여 살리는 알짜 품목이다.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무려 20%에 달할 정도다.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상상 이상이다. 하지만 잘나가던 반도체 시장에서 삐걱대는 신호가 심상치 않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주력 품목인 D램 가격은 계속해서 하락하고 있다. PC용 D램의 고정거래가격은 1년 사이 30% 정도 하락했다. 글로벌 경기침체 우려가 확산하면서 반도체 구매를 줄이려는 글로벌 데이터센터 운영업자들의 움직임도 가속하고 있다. 재고가 쌓일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진다. 가격이 더 내릴 수 있다는 신호도 나온다.

이러한 상황을 반영한 듯 반도체 수출 흐름은 우려를 키운다. 관세청이 발표한 이달 1일부터 10일까지 반도체 수출액은 29억9천100만달러였다. 1년 전과 비교해 5.1% 감소했다. 남은 20여 일간의 흐름을 좀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최악의 경우 월간 기준 감소를 기록할 수도 있다. 그렇게 된다면 2020년 6월 이후 처음이다. 최근 월간 추이를 보더라도 부정적이다. 5월과 6월에는 14.2%와 10.8% 증가했지만, 7월에는 2.5% 늘어나는 데 그쳤다. 여전히 시스템반도체는 괜찮다는 평가는 있지만, 절대적 비중이 높은 D램 시장은 우리에게 결코 유리하지 않다. 반도체 수출마저 마이너스로 돌아선다면, 전체 수출 규모 감소는 물론 무역적자 규모가 더 확대될 여지가 있다.

글로벌 반도체 시장 내 수요와 공급 상황, 향후 경기 움직임, 반도체 수요기업들의 전략 변화 등이 반도체 가격에 영향을 주는 주된 변수들이긴 하지만, 미중간 반도체를 둘러싼 패권 경쟁도 만만치 않은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그 중심에 '칩(chip)4'가 있다. 반도체 설계 최고 기술력을 갖춘 미국이 반도체 생산능력 최대국인 한국·대만과 반도체 장비·소재에 강점을 가진 일본을 끌어들여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을 안정화하겠다는 게 칩4다. 하지만 속내는 미국의 중국 견제에 있다.

미국과 한국, 대만, 일본이 만들어내는 반도체는 전 세계 시장 수요의 70%를 넘어선다. 중국은 전 세계 반도체의 절반 이상을 사들이는 최대 소비국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2015년 자국 내 반도체 자급률을 2025년까지 70%까지 높이겠다는 '반도체 굴기'를 선언했다. 그간 중국은 엄청난 자금을 투입해 반도체 산업을 키우고 있다. 반도체 소재 내재화 비율을 급격히 높이고 있고, 반도체 생산에 필수적인 장비 수입도 급격히 확대하면서 자국 내 반도체 기술 확충과 생산력 배가에 목숨을 걸고 있다. 미국 주도의 칩4는 이러한 중국의 반도체 육성 계획 자체를 무력화시키려는 의도가 분명하다. 전 세계 반도체 시장까지 중국이 장악하게 된다면 그 자체로 공급망 교란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미국은 이미 1980년대 중반, 이와 유사한 '공격'을 일본에 한 적이 있다. 당시 전 세계 D램 시장을 장악하던 일본과 미일 반도체 협정을 체결하면서 일본의 확장을 억제했다. 결과적으로 전 세계 반도체 시장을 호령하던 일본은 몰락의 길을 걸었다. 여전히 반도체 장비와 소재 분야에서 경쟁력을 갖추고는 있지만, 핵심 기반인 설계와 제조생산력은 처참하게 무너졌다. 물론 일본의 몰락은 한국과 대만이 반도체 부흥기로 들어서는 길목이 됐다. 하지만 이제는 그 대상이 중국이 됐고, 당시 기회를 잡았던 한국과 대만은 선택의 갈림길에 섰다.

우리나라가 칩4에 참여를 해야 하느냐 마느냐를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정부는 예비회의에 참여하겠다고 공식화했지만, 실제로 참여할지에 대해선 말을 아낀다. 그만큼 민감한 정치적 사안인 동시에 우리 경제에 미칠 파급 효과가 지대하기 때문이다. 당사자가 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긴장도는 더 크다. 정부와 끊임없이 의견을 교환하면서 입장을 전달하고는 있지만, 실제 주도권을 미국이 쥐고 있어서 어떤 결론이 날 것인지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칩4 참여로 얻을 이득이 적지 않을 수도 있지만, 잃을 수 있는 것도 만만치 않을 수 있어 고민은 크다.

문제는 칩4 참여 여부 결정 과정에서 중국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다. 지난해 반도체 수출액 중 중국 수출은 무려 39%에 달한다. 홍콩에 대한 수출까지 합치면 60%에 이른다. 사실상 반도체 수출 물량의 절반 이상이 중국으로 가는 셈이다. 칩4 참여로 중국이 무역 보복에 나설 경우 적잖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다만, 중국이 수요를 모두 자국에서 조달할 수 없는 상황이어서 예상보다 피해가 크지 않을 수 있다는 분석도 있지만, 여전히 불확실한 요소다.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소재를 중국이 공급해 주지 않을 가능성도 있는데 이 또한 타격이 될 수 있다. 중국 내 생산시설을 두지 못하도록 하는 결정이 나올 경우는 상황이 심각해진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모두 중국에 대규모 생산시설을 두고 있다. SK하이닉스의 경우 우시 공장 시설 확충을 위해 3조원에 육박하는 자금을 이미 투입했고, 인텔로부터 인수한 다롄 낸드플래시 공장에도 투자를 계획하고 있다. 미국이 대중국 투자를 강력하게 억제하게 된다면 돈을 날릴 수도 있다.

예단할 수는 없지만, 중국이 배터리와 같은 다른 업종에 대한 보복에 나설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자신들에게 당장 필요한 반도체를 직접 타깃팅하지 않는 대신에 한국에 약한 고리가 될 수 있는 배터리를 대체 공격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이다. 배터리는 중국과 한국이 가장 강력하게 경쟁을 벌이는 분야다. 특히 한국은 배터리 생산에 필수적인 소재와 중간재를 중국에서 대규모로 공급받고 있다. 이 끈을 끊어버린다면 상당한 타격이 될 수 있다. 최악의 경우 중국이 반도체 수요를 줄이는 전략에 나선다면 반도체 가격이 폭락하는 상황까지 이를 수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엔 재앙이 될 수 있다. 변수가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우리 산업 전체에 막대한 영향을 줄 수 있다. 정부의 미세한 대응이 필요한 이유다. 차근차근 우리의 입장을 전달하면서 밑바닥을 다지는 로우키(low-key) 전략을 통해 최대한 유리한 결과를 도출해낼 방안을 찾아야 한다. 상황이 심상치 않다.

(기업금융부장)

pisces738@yna.co.kr



※쿰파니스는 라틴어로 '함께(cum)'와 '빵(panis)'이 합쳐진 말로 동료나 친구를 뜻하는 컴패니언(Companion), 기업을 뜻하는 컴퍼니(Company)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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