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지주 이사회 의장 간담회 결과 브리핑
(서울=연합뉴스) 김인철 기자 =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14일 오후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은행지주 이사회 의장과 간담회를 마친 뒤 결과에 대해 브리핑하고 있다. 2022.11.14 yatoya@yna.co.kr

(서울=연합인포맥스) "현안에 대해 세세하게 잘 파악하고 있고 시스템에 대한 이해도도 높다". "메시지가 정제돼 있고 말 한마디 한마디에 힘이 있다". "예의가 바르다". '검사' 이복현이 아닌 '금융감독원장' 이복현에 대한 금융권의 평가다. 심지어는 이복현 금감원장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해야 할 야당 의원들 입에서도 비슷한 평가가 나온다. 지난 6월 7일 윤석열 정부의 첫 금감원장으로 '이복현 전 검사'가 내정됐다는 발표가 나오자 금융권과 자본시장은 술렁였다. 금융권까지 사정의 칼날이 춤을 출 것이란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반년 새 상황은 크게 달라졌다.

은행권의 횡령 사고에 대한 대처와 9조원에 육박하는 해외송금 조사, 불공정 주식거래에 대한 검찰과의 공조, 공매도 조사팀 신설을 통한 감독 강화, 자산운용사 최고경영진의 불투명 주식거래에 대한 조사 등을 통해 '특수통' 검사 출신 다운 면모를 드러내기도 했다. 하지만, 큰 잡음은 없었다. 시장을 위축시킬 것이란 우려도 잦아들었다. 금감원장의 마땅한 역할을 했을 뿐이다. 금융사의 공적 역할을 강조하면서 '압박'이 아닌 '협력'을 유도한 것 또한 긍정적 평가를 받는다. 무엇보다 내부 직원은 물론 금융업권별, 유관기관별로 꾸준히 간담회를 하면서 소통하고 시의적절한 메시지를 내고 있는데 대한 평가도 좋다. 반년 동안 '검사 출신'이라는 꼬리표를 떼어 내는 데는 일단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은행권이 긴장하고 있다. 은행권 최고경영자(CEO)의 대규모 인사철을 앞두고 이복현 원장이 던진 일종의 '인사 가이드라인'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사실 새로울 게 없는 내용이다. 이 원장은 지난 14일 금융지주 이사회 의장들과 만났다. "전문성과 도덕성을 겸비한 유능한 경영진을 선임하는 게 이사회의 가장 중요한 권한이자 책무다"라고 말했다. 투명하고 공정하게 CEO를 뽑도록 이사들이 노력해야 한다는 당부도 했다. 너무나도 당연하고 원론적인 말들이다. 이 원장은 이후 기자들과도 만나 "금융당국에서 (CEO 선임에) 절대로 개입할 생각은 없다"고 못을 박기도 했다. 하지만 이를 그저 금융감독당국의 의견 정도로 치부하는 사람은 없다. 아무리 원론적인 말이라도 자신의 목줄을 쥐고 있는 사람의 말은 무게가 다르다.

이 원장의 말이 더 주목을 받은 것은 금융당국에서 '문책 경고'의 중징계를 받고 사실상 금융권에서 '퇴출'당할 위기에 처한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의 상황과 맞물려서 더 그렇다. 이 원장은 손 회장을 두고 "현명한 판단을 할 것으로 생각한다"라고 했다. 완곡한 의견 표명 정도로 볼 수도 있지만 받아들이는 사람 입장에서는 무시무시한 말이다. 그래서 금융당국을 상대로 가처분 등의 소송을 하지 말고 임기(내년 3월)를 무사히 마치고 조용히 떠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말을 에둘러 한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외압도 없을 것이고 개입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이 원장은 거듭 강조한다. 하지만 일단 그가 말을 던진 이상 은행권에서 더는 액면 그대로 믿는 사람은 없다. 어떤 의미의 말이었을까를 해석하는 단계를 넘어 가이드라인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은행권에서는 여의도를 향한 안테나를 더 높이 세우고 있다.

이 원장이 던진 말들에 꼬투리를 잡고 '관치'라는 굴레를 덧씌우고 싶은 생각은 없다. 사실 틀린 말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 원장 입장에서는 '본뜻과 다르다'며 억울해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국내 은행 CEO 선임의 역사를 보면 은행권의 반응이 호들갑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정부, 특히 금융당국 공무원들은 은행을 단순 민간회사로 보지 않는 경향이 매우 강하다. 그도 그럴 것이 수백 조 원의 공적자금을 투입해 살려놓은 곳이 은행이기 때문이다. 이런 인식이 결국 '인사권 개입'이라는 유혹으로 번진 경우도 있었다. 과거 이명박 정부 시절 '금융권 4대 천왕'이 괜히 만들어졌겠는가. 당시에도 정부와 금융당국은 이 원장처럼 말했다. 절대로 개입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걸 믿는 사람은 없었다.

신한금융지주, NH금융지주, BNK금융지주가 회장 선임 절차를 진행 중이다. 우리금융도 동일한 절차에 들어가야 할 상황이 될 수도 있다. 이에 더해 신한은행, IBK기업은행, NH농협은행 등도 CEO를 새로 뽑아야 한다. 연임을 바라는 CEO도 있을 테고, 새롭게 자리를 차지하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현 CEO의 연임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많지만, 대선 과정에서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지지 선언을 했던 금융권 OB들이 열심히 뛰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인사를 공정하고 투명하게 하더라도 늘 잡음은 나온다. 특히나 은행권 수장의 자리는 더 그렇다. 자리의 무게에 더해 얻게 되는 혜택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아무나 할 수 있는 자리도 아니다. 금융감독당국이 관심을 두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설마 저들도 선수로 뛰려고 저러는 것인가라는 의심이 커지기 시작하면 판은 깨진다. 이 원장은 금융감독당국 수장으로써 할 말을 했다. 하지만 그것으로 족하다. 더 나아가면 의심을 받는다.

(정책금융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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