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 바람 부는 아파트 청약시장
(서울=연합뉴스) 진연수 기자 = 고금리 기조와 집값 하락 우려에 '흥행 불패'로 꼽히던 서울 아파트 청약 시장 분위기가 1년 새 확 뒤바뀐 것으로 나타났다. 11일 부동산 전문리서치업체 리얼투데이가 한국부동산원 청약홈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올해 서울 아파트는 이달 7일 기준 6천548가구(사전청약·공공분양 제외) 모집에 6만988명이 1순위 청약을 해 평균 경쟁률 9.3대 1을 기록했다. 사진은 서울 시내 아파트 재건축 현장 모습. 2022.12.11 jin90@yna.co.kr

(서울=연합인포맥스) 집값이 천정부지로 치솟던 시절. 아파트 시행업자들은 자기 돈 30억~50억원만 투자하면 3~4년 뒤 1천억원은 거뜬히 벌었다. 분양은 늘 완판이었다. 가격이 더 오를 것이란 기대에 분양가가 높아도 청약 열기는 뜨거웠다. 아파트 부지를 사기 위한 종잣돈 마련은 어렵지 않았다. 증권사나 캐피탈사, 저축은행들이 낮은 금리로 브릿지론을 대주겠다며 줄을 섰다. 인기가 좋은 아파트 브랜드를 가진 대형 건설사들도 시공 계약을 따내기 위해 숟가락을 얹었다. 공사비 마련을 위한 프로젝트파이낸싱(PF) 조달도 원활했다. 수천억원에서 수조원의 자금을 낮은 금리로 마련하는 게 그리 어렵지 않았다. 자잿값만 폭등하지 않는다면 큰 비용 부담 없이 준공 후 입주까지 일사천리로 갈 수 있었다. 중간에 사업이 무너져도 떠안아주겠다며 보증과 확약을 하는 금융사도 넘쳤다. 분양자들에게 좋은 조건으로 중도금대출과 주택담보대출을 해 주겠다는 은행들도 얼굴을 들이밀었다. 불과 1~2년 전의 일이었다.

이렇듯 부동산 개발사업은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사실상 금융 그 자체다. '저금리 축복'과 '부동산 대세론'에 편승한 시행업자들은 아직 실체가 없는 '그림' 하나만으로 대규모 자금을 끌어들일 수 있었다. 돈이 넘쳤던 금융사들은 고수익이 사실상 보장된 먹잇감을 놓칠 이유가 없었다. 만기가 짧은 고수익 채권에 투자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그 투자금을 또 조달하기 위해 자산유동화를 동원해 상품을 만들고 또 다른 금융사와 개인들에게 팔았다. 물론 결과는 대박이었다. 위험 부담이 있었지만, 여윳돈을 굴리기에는 최적화한 상품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만기도 짧으니 체감적 위험도도 크지 않았다. 시행업자와 금융사, 건설사 모두 윈윈할 수 있던 게임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세상은 바뀌고 있다. 순식간에 모든 과정이 틀어지기 시작했다. 돈이 돌지 않으면서 생기는 일이다. 금리가 얼마나 더 오를지 알 수 없으니 모두가 몸을 사린다. '고수익 채권' 상품과도 같았던 부동산 개발사업은 결국 금리 변수에 무너지기 시작하고 있다. 경기둔화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상황 속에서도 금리 수준은 점점 더 고점을 높여가고 있다. 땅을 사고, 분양하고, 아파트를 짓고, 준공 및 입주하는 일련의 부동산개발 사업은 사실상 스톱 상태다. 이미 준비했던 사업을 엎어버리는 시행업자들도 나타나고 있다.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손해가 발생하기 전에 일단 발을 빼보자는 심산이다. '1천억원 이익'의 꿈은 고사하고 이미 넣어둔 수십억원의 투자금을 날리는 정도로 끝내자는 것이다. 이렇다 보니 기존 부동산 시장도 얼어붙는다. 집을 팔고 싶어도 팔리지 않고, 새집을 사고 싶어도 더 기다려보자는 심리는 더욱 강해진다. 하지만 돌파구는 쉽사리 찾기 어려운 국면으로 빠져들고 있다.

최근 분양시장을 보면 부동산 시장이 얼마나 침체해 있는지를 잘 알 수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 9월 말 기준 전국 미분양 주택은 4만1천604가구에 달했다. 작년 말 1만7천710가구와 비교하면 2배를 훌쩍 넘어선 수치다. 한 달 전의 3만2천722가구와 비교해도 1만 가구 가깝게 급증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몰아치며 부동산 시장이 고사했던 2008년의 16만6천가구에 비하면 아직 적은 수준이라고 위안할 수도 있겠지만, 늘어나는 속도는 심상치 않다. 최근 2년간 미분양 규모가 2만가구를 넘어서지 않았던 것에서 보듯 최근의 급증세는 결코 안심할 수준이 아니다. 2007년 10만가구를 조금 웃돌던 미분양 규모가 16만가구로 증가하는 데 채 1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10년 넘게 주택 공급량이 대폭 늘어난 것을 고려하면 지금의 미분양 규모 절대치만으로 안심하다고 할 수 없는 셈이다. 시장 내 심리적 불안 상태는 그때 못지않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그런데 문제는 이미 사업 진행이 어느 정도 진척돼 분양 시점이 도래한 물량도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현재의 추세대로라면 미분양 5만~6만가구 진입은 시간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토지 매입 등의 사업개발을 위한 준비 단계에 있는 경우라면 중단하면 그만이다. 그동안 활황이던 브릿지론 시장은 이미 거의 죽었다. 문제는 브릿지론 단계를 넘어 본PF 단계에 진입한 경우는 상당한 부실 부담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본PF에 참여하는 금융사와 시공계약을 맺은 건설사 입장에서 가장 큰 위험 요인은 미분양과 미준공이다. 특히 금융사들은 본PF 대출을 하면서 중도금과 잔금의 입금 상황에 맞춰 현금흐름을 짜는 데 부동산 시장 침체와 금리의 고공행진이 핵심 변수로 작용하면서 곤란한 상황에 빠지게 됐다. 금리가 오른다고 이를 반영해 분양가를 새롭게 조정할 수도 없다. 시행사와 금융사, 건설사들은 사업 진행 과정에서 예측하지 못했던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서로의 책임 탓을 하기 시작할 것이다. 누가 더 가져갈 것인지를 두고 했던 싸움이 이젠 누구에게 더 큰 손해를 떠안기게 할 것인가가 전략이 되는 셈이다. 각 주체가 생각했던 판과 패가 꼬이기 시작하는 셈이다.

문제는 개발사업에 참여했던 주체들 간의 이익 및 손실 조정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브릿지론이 됐건 본PF가 됐건 담보물을 어느 정도 확보한 상황에서 선순위로 들어갔던 금융사보다는 중순위, 후순위로 참여한 금융사들의 부실 위험이 매우 커지고 있다는 게 문제다. 대부분 선순위로 들어가는 은행들 입장에서는 미분양 물건을 차후 할인이든 묶음 매각 등을 통해 일정 수준의 원금 확보가 가능하다. 하지만 이런 담보 물건도 없이 사실상 신용으로 대규모 자금을 대준 금융사들은 참여한 개발사업의 규모에 따라 생존 자체를 걱정해야 할 수도 있다. 자체 자금으로 투자한 경우도 있지만, 유동화 상품을 만들어 판 돈으로 투자한 경우라면 이후 후폭풍은 더 세질 수 있다. 레고랜드 사태로 금융시장이 한차례 태풍이 몰아쳤지만, 이와 유사한 사례는 언제든지 나올 수 있다. 그래서 아직도 부동산 시장의 폭탄은 터지지도 않았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뇌관을 제거한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현재 시장 흐름으로 봐선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이미 투입된 눈먼 돈들이 너무나도 많기 때문이다. 그런 돈들이 휴짓조각으로 바뀔 수 있는 확률을 낮추는 게 최선의 대책이 될 수밖에 없다. 어느 시점에는 강제적 옥석 가리기도 필요하다. 금융당국은 누군가의 목에 방울을 달아야 하는 악역을 해야 할 수도 있다. 미리 준비해야 한다. 은행들도 구조조정을 대비해 전략을 짜놔야 한다. 폭탄이 터지지 않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만약 폭탄이 터졌을 때 어떤 시나리오로 대응할 것인지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정책금융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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