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부채비율 1만% 기업. 기업이 갚아야 할 빚(부채)이 현재 보유한 돈(자본)보다 100배 이상 많다는 의미다. 국내 2위 대형항공사(FSC) 아시아나가 처한 현실이다. 지난 3분기 말 연결재무제표 기준으로 아시아나항공의 자본총계는 1천335억원이었는데, 부채총계는 13조7천472억원에 달했다. 부채비율 1만298%, 기록적인 숫자다. 2분기 말 6천544%에서 대폭 늘었다. 한국거래소 유가증권시장 상장기업 중 가장 높은 수치라는 불명예도 안았다.

아시아나항공 개별로 보면 상황이 조금은 낫다. 별도재무제표 기준 아시아나의 3분기 말 부채비율은 3천781%다. 자회사 에어서울과 에어부산을 뺀 수치다. 그럼에도 통상 부채비율 100%를 기준으로 부채가 많고, 적고를 평가한다고 보면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자본잠식도 진행 중이다. 이 회사의 자본잠식률은 별도 기준 9.6%, 연결 기준으로는 57.3%에 달한다. 올해 들어 3분기까지 별도 기준 6천억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냈는데도 재무구조는 악화일로인 셈이다. 고금리와 고환율에 이자비용 부담과 환차손이 급증한 영향이지만, 기본적으로 결손금이 너무 많다는 게 문제다. 금리와 환율 등 시장 상황이 좋아지면 다소 개선될 여지가 있겠으나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긴 어렵다. 대한항공과의 기업결합이 늦춰질수록 영업 환경은 악화할 것이고 그만큼 재무 위험도 커질 수밖에 없다. 정상 운항이 안 되는 데 화물 사업만으로 버티는 건 한계가 있다.


김포공항에 계류 중인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여객기
출처:연합뉴스 사진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는 이른바 '항공 빅딜'이 성사된 건 2020년 11월이다. 이후 2년 넘게 표류 중이다. 주요 해외 경쟁당국이 두 항공사의 합병을 승인하지 않고 있는 탓이다. 조선과 항공 분야 다국적기업은 기업결합을 하려면 진출한 국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현재까지 승인한 필수신고국은 5개국(한국, 터키, 대만, 태국, 베트남)인데, 아직도 4개국의 승인을 더 받아야 한다. 미국과 유럽연합(EU), 중국, 일본 등이다.

기존 승인 국가와 비교해 까다로운 곳만 남았다. EU가 경계 대상 일순위로 꼽힌다. EU는 올해 초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의 기업결합을 불허한 곳이다. 작년에는 캐나다 1위, 3위 항공사의 기업결합 승인에 깐깐한 잣대를 내밀었고, 결국 두 회사의 합병도 무산됐다. 최근 영국 당국이 대한항공의 독과점 해소를 위한 시정조치안을 수용하면서 영국과 EU의 승인 기대가 커지고 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는 평가도 나온다. 영국은 필수가 아닌 임의 신고국이다. 영국이 승인했다 해서 EU가 이를 따라갈 거란 보장도 없다.

대한항공은 가용 가능한 전사적 자원을 총동원하고 있다. 5개팀 100여 명으로 구성된 국가별 전담 전문가 그룹을 꾸렸다. 이들은 각국 당국에 대한 맞춤형 전략을 세워 공략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여기에 글로벌 로펌 3개사와 로컬 로펌 8개사, 경제분석업체 3개사, 국가별 전문 자문사 2개사 등과도 계약을 맺었다. 조원태 회장을 비롯한 최고 경영진들은 직접 현지를 방문해 경쟁 항공사들의 신규시장 진입을 설득하는 중이다. 대한항공이 기업결합 이후의 독점 우려를 해소하려면 국외 항공사의 노선 유치가 효과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베트남 등 아시아권 항공사에 인천과 로스앤젤레스 노선의 취항을 제안하는 식이다.

미국과 중국, 일본 등에서도 기업결합 심사와 관련해 아직 가시적인 성과는 없다. 미국은 공식적으로 시간을 두고 추가로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고, 중국과 일본은 시장 조사 단계에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주요국 당국이 눈치싸움에 들어간 모양새다. 자국 항공사의 이해를 위해 지연 작전을 쓰는 것일 수도 있다. 대한항공의 총력전에 더해 우리 정부당국의 적극적인 지원이 요구되는 이유다. 경쟁 당국의 까다로운 조건을 해소하기 위해 필요하다면 외교 라인도 동원돼야 한다.

우리나라의 항공산업은 연관산업을 포함해 국내총생산(GDP)의 약 3.4%(54조원)를 차지한다. 관련 일자리만 84만개에 달하는 국가 기간산업이다. 두 항공사의 인수 합병이 무산되면 1만% 부채비율의 아시아나항공은 죽고 사는 문제에 직면할 수 있다. 대한항공의 앞날도 보장할 수 없다. 한진해운 파산, 그리고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의 합병 불발로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지출했던 경험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국내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추진되는 기업간 인수·합병에 대해선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개입과 지원이 필요한 법이다. 시간이 많지 않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합병이 완료되면 세계 10위권 이내의 국적 대형항공사가 탄생한다. 글로벌 항공사들과 진검승부가 가능한 '통합 대한항공'의 출범을 서둘러야 한다. (취재보도본부 기업금융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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