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증권은 유가증권을 말한다. 재산적 가치가 있는 문서라는 의미다. 주식과 채권 등을 포함하는 상위 개념이다. 여기에는 화폐, 상품증권 등 재산적인 권리를 표시한 증서는 모두 포함된다. 유가증권은 크게 지폐, 수표, 어음 등을 말하는 화폐증권과 주식, 채권, 선물옵션 등으로 나뉘는 자본증권을 뜻한다.
주식 한 편으로 밀려나 있던 채권, '(기관) 그들만의 리그', '(개인이라도) 큰 손만의 세상'이라고 여겨지던 채권이 이렇게 뜨거웠던 적이 있나 싶다. 사실 그동안 대중들에게 채권은 뒤편에, 주식은 앞쪽에 있었다. 우리는 코스피와 삼성전자 주가에 울고 웃었다.
2022년은 참 달랐다. 채권시장이 먹통이 되면 어떻게 되는지 아찔한 경험을 우리는 치열하게 했다.
전 세계 벤치마크인 미국 기준금리는 2020년 3월부터 올해 1월까지 0.00~0.25%였다가 현재는 4.25~4.50%까지 치솟았다. 1년 만에 4.25%포인트가 오른 것이다.
더 피부에 와닿는 민평 3사 3년물 기준으로 국내 'AA+' 회사채 금리는 올해 1월 3일 2.391%에서 이번달 1일 5.324%로, 엄청나게 올랐다. 지난해 1월4일만 해도 1.261%였다.
불과 2년 사이의 숫자들은 모든 것을 말해준다. 주식시장이 기업 가치를 매기는 곳이라면 채권시장은 기업의 생존을 가늠할 수 있는 무시무시한 곳이라는 점을 깨닫게 됐다. 시장 금리가 치솟고 자금줄이 말라가면 멀쩡했던 기업도 죽을 수 있다.
강원도 레고랜드 사태로 시작된 채권 금리의 위력은 증권, 보험, 카드 등 제2 금융권을 강타했다. 오랜 시간 천수답이라고 지적받던 브로커리지 위주의 증권사를 흔들 수 있는 것은 주가가 아닌 금리라는 것을, 보험의 10년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것도 절대적으로 금리라는 것을, 당장 조달이 안 되면 사업 자체가 부담스러워지는 곳이 카드와 캐피탈 등 여전업계라는 것을 우리는 똑똑히 알게 됐다.
증권사가 초대형 투자은행(IB)을 지향하는 동안에도 국내 증권사의 주 수익원은 어찌 보면 개미들의 피눈물이었다. 데이트레이딩하는 개미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증권사의 주머니가 두둑해진 과거의 기억이 지금도 작용하고 있는 탓이다.
하지만 과거의 삼투신(한국투자신탁, 대한투자신탁, 국민투자신탁), 옛 대우 사태 이후로 우리가 경험하지 못했던 '증권사도 망할 수 있다'는 우려는 올해 채권 시장 파동에서 나왔다.
돈을 벌지만, 돈이 돌지 않아 생기는 유동성 위기, 흑자도산 그림자는 짙었다. 증권사 확약물이라는 '꼬리'가 회사라는 '몸통'을 흔들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유동화물로 시작된 위기는 건설사 신용으로까지 확대됐다. 건설사와 일반 기업 간 민평 스프레드가 벌어졌고, 기관 투자자들 사이에서 증권, 건설사는 요주의 대상이 됐다. 은행 대출은 꽉 막혔고, 신용이 생명인 채권 시장에서 이는 또 다른 이름의 부도처럼 여겨졌다.
그 사이 대형 증권사들 사이에서도 시가 채권북을 줄이려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채권 평가손이 회사의 실적을 흔들 수 있게 된 만큼 형님 증권사들도 실적에 반영되지 않는 기타포괄손익 공정가치측정(FVOCI) 채권 비중을 늘리고 있다.
확정 손실이 아닌 평가 손실에 따라 실적 반토막을 경험한 한 대형 증권사 채권운용 본부장은 착시효과라며 억울함을 토로했다. 이제 증권사의 체력을 증명하는 상당 부분은 채권북이 됐다.
좀 더 호흡이 긴 생명보험사에는 금리가 지속 가능한 경영을 결정하는 핵심인지도 올해 확연히 드러났다. 치솟는 금리가 호재가 될 것이라는 시장의 기대와는 달리 생보사들의 RBC비율은 떨어지고 선제로 확충한 자본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형국이 됐다. 생보사들이 안정성을 위해 운용자산 대다수를 채권에 묶은 게 독이 됐다. 생보업계의 자산운용 규모는 1천조 원에 달한다.
조달금리가 사실상 실적을 좌우하는 카드, 캐피탈의 상황은 더 심각했다. 조달금리가 올라가면 오히려 커진 영업이 부메랑으로 작용하는 구조가 이 여신업계에 해당한다.
롯데 계열사가 아닌 데도 이름 때문에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었던 롯데카드가 장기 CP 발행에 성공한 게 화제가 될 정도였다. 레고랜드와 흥국생명 등 연이은 유동성 우려 사태로 치솟은 CP 91일물 금리는 최근에서야 연초 이후 처음으로 하락세에 접어들었다.
올 한해 채권 시장은 파란만장했다. 국내 금융회사들도 울다 웃기를 반복했다. 이제야 조금은 진정되는 듯한 시장에 인플레이션 위험은 여전히 가시지 않고 있다. 그 누구도 무엇도 낙관하기 힘든 2023년이 오고 있다. (투자금융부장)
sykwa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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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세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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