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검은 토끼의 해인 계묘년(癸卯年) 새해가 밝았다. 토끼는 순하고 귀여운 게 매력인 동물이다. 하지만 생김새와 달리 영리하고 꾀도 많다. 별주부전에 등장하는 토끼는 기지를 발휘해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영리함을 넘어서 교활한 지략을 갖춘 동물로도 묘사된다. 교토삼굴(狡兎三窟)이라는 사자성어는 이를 잘 표현한다. 교활한 토끼가 세 개의 굴을 파놓는다는 뜻인데, 미래를 위해 대비를 해놓는다는 의미이다. 경기침체까지 우려되는 계묘년 벽두부터 교토삼굴이 이래저래 회자하는 이유다.

한자리에 모인 금융권
(서울=연합뉴스) 한상균 기자 = 3일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범금융 신년인사회에서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김주현 금융위원장,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이복현 금감원장 등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23.1.3 [공동취재] xyz@yna.co.kr

작년 말 정부가 올해 경제정책 방향을 발표하기에 앞서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주요 언론사 경제부장들과 만났다. 통상 그런 자리에서는 정부의 경제운용 목표와 의지를 강조하기 마련이다. 주요 경제지표의 개선을 위한 강력한 정책집행 의지도 드러낸다. 그런데 추 부총리가 남긴 말 중 유독 기억에 남는 대목이 있다. "내년 상반기 경제는 굉장히 어려울 겁니다". 솔직히 경제 수장이 쉽사리 꺼낼 수 있는 말은 아니다. 특히 '굉장히'라는 말은 더 그렇다.

기획재정부가 올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한국은행(1.7%)과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1.8%) 보나 낮은 1.6%로 제시한 것도 놀라운 일이었다. 기재부가 매년 말 제시하는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사실 정부의 강력한 의지와 목표를 담은 상징적 숫자다. 그렇다 보니 2.0%, 2.5%, 3.0%, 3.5% 등처럼 딱 떨어지는 수치가 자주 등장해 왔다. 전망치 1.6%에 대한 추 부총리의 설명은 간단했다. "정책 의지를 담아 숫자를 높이지 말라고 했다. 현재 가진 데이터를 통해 진솔하게 보여주자고 했다". 당장 매를 맞더라도 현재의 경제 상황을 솔직하게 전달하고,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다양한 변수에 즉각적이고, 신속하게 대응하면서 정책 추진 속도를 높여가자는 게 추 부총리의 생각이었다.

새해가 밝았지만, 사실 들뜬 분위기는 찾을 수 없다. 뭔가 어수선하다. 위기·침체·구조조정·희망퇴직 등과 같은 아찔한 말에 더해 극복·돌파와 같은 말들도 잇따른다. 수출은 꼬꾸라지고, 물가는 여전히 높고, 고용은 불안하고, 금융부담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고, 자산시장의 불확실성은 가시질 않는다. 부동산 폭탄은 언제 터질지 모른다. 누구도 위기가 아니라고 말하지 못한다. 어깨는 잔뜩 움츠려 있다. 여전히 금리의 방향은 우상향인데, 올해 말 통화당국이 금리를 내릴지도 모른다는 섣부른 예측까지 나온다. 역설적이지만 경기 상황이 그만큼 심상치 않음을 방증한다. 추 부총리의 "굉장히 어려울 겁니다"라는 말은 단순히 솔직함이 아니라 현실이었던 셈이다.

지난해 10월 터진 레고랜드 사태 이후 경제·금융 수장들은 매주 일요일 명동 은행회관에 모여 시장 점검 회의를 한다. 추경호 부총리가 주재하고 김주현 금융위원장,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멤버다. 최상목 대통령실 경제수석도 참석한다. 추 부총리는 경제와 시장이 안정될 때까지 계속 회의를 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현 경제 위기 상황을 고려하면 4명의 수장과 경제수석이 매주 모여 논의하고 토론해서 내놓는 결과물들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지고 있다. 사실상 이들의 머릿속에서 도출된 것들이 우리 경제의 방향성을 결정짓게 된다. 거시와 미시를 아우르는 대책이 올 한 해 위기를 극복하고 이후 우리 경제를 한 단계 점프업(Jump up)시킬 수 있는 교토삼굴이 돼야 한다. 어수선한 세상을 안정화시키는 데 정교한 대책과 메시지 만큼 좋은 것은 없다. 추 부총리의 말처럼 F4(추경호·김주현·이복현·이창용)가 잘 해야 한다. 어깨가 무겁다.

(정책금융부장)

pisces738@yna.co.kr
(끝)

본 기사는 인포맥스 금융정보 단말기에서 11시 03분에 서비스된 기사입니다.
저작권자 © 연합인포맥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