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한국에 두 손 들었소"라는 말이 나올 때가 있었다. 세계 1위 글로벌 기업들이 한국 시장에서는 유독 맥을 못 추는 수난사로 기록될 사례가 종종 있었다.

야후는 네이버라는 한국형 검색 서비스에 밀렸고, 코카콜라의 스프라이트는 칠성사이다에 고전했다. 월마트, 까르푸는 이마트에 밀려 한국 땅을 떠났다.

스웨덴을 대표하는 노키아, 핑크 레이저를 앞세워 X세대 마지막 세대를 공략했던 모토로라는 삼성전자와 LG전자에 힘을 쓰지 못했다. 네슬레가 동서식품의 맥심이 꽉 잡고 있는 인스턴트 커피 시장을 잡지 못한 것도 그 예다.

샤넬 등 명품이 가장 많이 팔리면서도 그 한편 토종이 굳건했던 시장, 2000년 전후 한국의 옛 모습이다. 스마트폰 시장도 그랬다. 애플의 아이폰이 나오기 전까지.
'스마트폰 혁명'을 촉발한 것으로 평가받는 1세대 미개봉 아이폰이 최근 경매에 나오자 낙찰가로는 약 6천만 원이 추정됐다. 전설의 애플 공동 창립자 스티브 잡스가 2007년 1월에 직접 선보인 아이폰 1세대의 당시 판매가와 비교하면 약 80배가 넘는 가격이다.

최근 거대한 변화의 물결로 지목되는 챗GPT로 아이폰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이 챗GPT는 이미 세상을 뒤집어놓은 아이폰 출시와 비교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내장 메모리 4GB 모델과 8GB 모델로 나뉘던 아이폰 1세대는 3.5인치의 화면 크기, 2메가픽셀 카메라를 스펙으로 자랑했다. 그보다 사람들의 마음을 끈 건 인터넷과 아이튠즈 기능 탑재였다. 우리는 그때 알았다. 아이폰의 등장으로 '네이트온에 접속하면서 그렇게 많은 돈을 낼 필요가 없었다', '그동안 우리는 못 한 게 아니라 안 한 것이었다'

아이폰1세대 미개봉




아이폰의 한국 시장 점유율은 한때 30%까지 올라섰다. 삼성 갤럭시의 점유율은 70%를 훌쩍 넘을 정도로 과거에도 넘사벽이었지만, 삼성과 애플, LG 등 3개 회사가 경쟁할 때 애플과 LG는 비슷하게 15% 내외의 점유율을 기록했다. 사용자 대부분이 어르신들이던 LG가 빠지면서 그 점유율은 그대로 삼성이 가져갈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아이폰은 결과적으로 승자가 됐다.

그리고 드는 생각. 애플 사용자는 더 늘어나면 늘어나지 줄어들 것 같지 않다. 사진과 동영상이 중요한 젊은 세대에게 아이폰은 대체 불가하다. 아이를 키워 본 부모는 안다.

아이폰 사용자들, 그중 돈을 쓰는 세대에게 한 가지 걸림돌이던 페이도 해결의 실마리가 보인다. 애플페이는 큰 차질이 없다면 3월 한국에 상륙한다.

'온다. 못 온다' 말도 많던 애플페이는 "관련 법령과 그간의 법령 해석 등을 고려해 신용카드사들이 필요한 관련 절차 등을 준수해 애플페이 서비스 도입을 추진할 수 있음을 확인했다"는 지난 3일 금융위원회의 발표로 도입에 현실이 됐다.

2014년 출시된 애플페이는 현재 아이폰의 위상에 걸맞게 현재 세계 75개국에서 쓰이지만, 국내에서는 삼성페이가 나온 2015년 전후로 말만 많았지, 출시되지 못했다.

그러는 동안 국내 간편결제 시장에서 삼성페이의 위상은 절대적으로 커졌다.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삼성페이는 출시 후 7년 만에 사용자수 1천600만 명을 넘겼다. 경쟁자인 카카오페이는 237만 명, 네이버페이는 54만 명으로 추산된다. 2018년 오프라인 결제 서비스를 시작한 카카오페이, 네이버페이는 MST(마그네틱보안전송)가 아닌 QR, 바코드 결제 방식으로 한정돼 여전히 삼성페이에 이렇다 할 경쟁자로 나서지 못했다. 마그네틱 신용카드를 긁어서 결제하는 MST 위주의 한국 결제 시장에서 MST가 가능한 갤럭시 스마트폰은 안방 1위 지위를 더 굳건히 했다.

애플페이가 상륙해도 바람이 그다지 거세지 않을 것이라는 이유도 여기서 나온다. 애플페이는 NFC(근거리 무선통신) 방식을 쓴다. NFC 단말기가 있는 가맹점은 약 10%로 알려진다. 이곳에서만 애플페이를 쓸 수 있는 만큼 단말기를 조금이라도 더 많은 가맹점에 보급해야 한다. 일각에서는 전기차를 사고 싶은 이들이 망설인 전기차 충전 시설 설립과 비슷한 문제라고 본다.

최초 애플과의 계약에서 애플페이를 일정 기간 독점 제공하는 조건으로 계약을 맺었던 국내 파트너 현대카드는 이번 애플페이 도입 관련 금융당국의 유권 해석을 받는 과정에서 국내 배타적 사용권을 포기했다. 독점권을 포기하지 않으면 주요 가맹점에 NFC 단말기 설치를 지원해줄 방법이 법 위반 없이는 없었던 만큼 현대카드는 초기 이용률을 높이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삼성전자와 같은 IT 기반, 신한은행과 같은 은행 기반이 없는 현대카드로서 애플페이는 한 단계 도약을 위한 돌파구였다.

배타적 사용권을 포기했어도 일단 이번 애플페이의 승기는 '준비된' 현대카드가 잡은 것으로 보인다. 다른 카드사들은 아이폰 선호가 높아지고 있는 젊은 층을 겨냥해 애플페이를 쓸 수 있도록 가맹점들이 움직일지 주시하고 있다.

애플 아이폰이 미국에서 출시되자 미국의 10대들은 그 디자인에 반응했다. 당시 미국의 휴대전화 시장은 블랙베리가 강세였는데, 오바마폰으로 불리며 인기 절정이던 블랙베리는 그 흐름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디자인 경쟁보다 휴대전화의 기능에 집중하는 것이 '더 블랙베리답다'는 게 중역 회의의 결과였다.

결과는 보시다시피다. 아이폰은 디자인이라는 게임체인저로 블랙베리를 눌렀다. 그 이후에는 사진이라는 게임체임저로 세계 시장을 장악했다. 애플이 자주 게임체인저를 만들어낸 만큼, 이번 애플페이에서도 어떤 게임체인저를 만들어낼까 주목된다. 그리고 게임체인저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터진다.

지난 3일,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은 자신의 SNS에 오늘의 점심 인증샷을 올렸다. 이미 한입 베어 문 사과였다. 그날의 점심을 지켜보는 눈이 너무나도 많다. (투자금융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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