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넘치면 모자람만 못한 법이다. KT 사장 유력 후보를 단칼에 날린 이른바 '구현모 사태'는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가 남용된 대표적인 사례로 기억될 것으로 보인다. '스튜어드십'은 연기금을 비롯한 기관투자자가 기업의 의사결정에 적극 참여해 투명한 경영을 유도하는 지침을 뜻한다. 연기금 등이 주주로서 취할 수 있는 권리이지만, 그 행위가 주주가치를 훼손하고 주주 이익에 반하는 일이 된다면 목적성에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국민연금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CG)
[출처:연합뉴스 자료사진]




KT 입장에선 참 드라마틱한 넉 달이었다. 구현모 KT 사장이 지난해 11월 차기 대표이사 도전을 공식 선언하면서 벌어진 일들이다. 곧바로 KT 이사회는 차기 대표 선출 작업에 들어갔고, 이사회 내 대표이사후보심사위원회는 지난해 12월13일 구 대표를 차기 대표로 적격하다고 평가했다. 이 시점에서 KT의 1대 주주 국민연금이 등장한다. 국민연금은 공식적으로 차기 대표 선임 절차에 이의를 제기했다. 이에 구 대표는 복수 후보에 대한 심사를 검토해달라고 KT 이사회에 자진 요청했다. 이사회는 심사 끝에 구 대표를 차기 대표 단독 후보로 결정했다. 같은날 국민연금은 기금운용본부장 명의로 반대 입장을 담은 보도자료를 냈다.

새해가 되자 정부의 압박이 노골화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공개적으로 스튜어드십을 강조하고 나섰다. '주인 없는 기업'에는 스튜어드십이 작동해야 하고, '주인 있는 기업'에 대해선 과도하게 작동되면 안된다는 사실상의 가이드라인까지 제시했다. 정부의 압박까지 더해지며 결국 구 대표는 공개 경쟁이라는 마지막 카드를 꺼냈고, 이사회가 이를 수용해 선임 절차가 원점부터 다시 시작됐다. 공모 결과 사외 인사 18명, 사내 인사 16명 등 총 34명이 지원했다. 예상대로 정치권 인사가 다수 포함됐다. 구 대표는 지난 23일 돌연 연임 포기 의사를 밝힌다.

구 대표가 사퇴 의사를 밝힌 이후 KT에 대한 시장의 평가는 참혹한 수준이다. 주가는 사흘 연속 하락하며 3만원선을 밑돌았다. KT 주가가 3만원 밑으로 내려간 건 지난 2021년 12월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외국인은 같은 기간 KT 주식을 200만주 가까이 팔아치웠다. 외국인 지분율은 사흘 만에 1%포인트 가까이 줄어들었다.


KT 주가 추이
[출처:연합인포맥스 종합차트]




적어도 지금까지는 외국인 주주가 구 대표 아웃에 강력하게 반발하는 모양새로 비친다. 어느 정도 예고됐던 결과다. 지난 10일자로 KT 보고서를 낸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경영진 교체 우려가 큰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는 어떠한 호재도 주가에 반영되기 어렵다"고 했다. 또 다른 증권사 애널리스트도 보고서에서 양호한 실적과 공격적인 주주환원 정책에도 KT 주가가 정체된 핵심 원인으로 경영진 교체 리스크를 꼽았다. 국민연금의 적극적인 스튜어드십 작동 결과가 되려 경영 리스크로 작용한 셈이다.

국민연금의 KT에 대한 스튜어드십이 시장의 인정을 받지 못하는 건 표적이 된 구 대표가 기대 이상의 경영 성과를 낸 CEO였기 때문이다. 구 대표는 재임 기간 KT가 유·무선 통신사라는 인식을 바꾸는 데 상당한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디지털 플랫폼과 콘텐츠 기업(디지코)으로 체질 개선에 성공하면서 실적 개선도 이끌었다. KT의 별도 기준 영업이익은 2020년 8천억원대에서 지난해 1조2천억원 규모로 급증했다. 이에 KT 시가총액은 작년 한때 10조원을 웃돌기도 했다. 지난 2013년 이후 10여 년 만의 성과다.

구 대표가 재임 기간 KT의 주주가치를 훼손했다는 근거는 찾아보기 어렵단 얘기다. 그렇다면 정부의 가이드라인 기준인 '주인 없는 기업'에서 연임 시도에 나선 것 자체가 문제가 됐던 것일까. 국민연금이 이번 신속한 스튜어드십 작동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가치가 무엇일지도 궁금하다. 구 대표가 물러나고 남은 건 KT 수장 자리를 노리는 다수의 정치권 인사들이다. 유능한 사내 인사도 눈에 띄긴 하지만, 누가 CEO에 선임되더라도 당분간 그 절차에 대한 정당성 논란에 묻힐 가능성이 크다. KT의 경영 정상화가 조기에 이뤄지긴 어려운 구조다. 국민연금기금이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곳이고 정부를 뜻하는 '관'은 아닐지라도 스튜어드십 작동에 원칙이 없거나 남용을 한다면 '관치'의 의혹을 살 수밖에 없다. 국민연금 또한 정부의 입김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한 곳이기 때문이다. 역대로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대부분은 관에서 내려온다. 현직 이사장도 금융위원회 출신이다. (기업금융부장)

chh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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