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각 분야에서 약진을 거듭하고 있다. 산업, 예술 등 거의 전 분야에서 'K-OOO' 이 대세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매우 영광스러운 일이다. 국가의 규모, 인구, 경제성장의 역사를 고려할 때 놀랄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자산운용이 국가의 성장 모델에 기여하여 'K-OOO'의 중요한 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은 듯하다.

글로벌 연금 컨설팅회사 WTW에 따르면 글로벌 연금시장에서 한국의 위상은 자산규모 약 1조 달러(2021년 기준)로 8위에 해당한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지난 10년간 자산규모의 증가율이 중국(20.6%)에 이어 2위(12.2%)를 차지한 것이다. 또한 글로벌 SWF에 따르면 국부펀드와 공적 연금을 더한 자산운용 규모는 1조5천억 달러로 단일국가로 5위를 차지했다. 이러한 자산규모를 바탕으로 한국은 퇴직연금을 포함한 사적 연금도 가파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세룰리 어소시에이츠는 한국 기관투자가의 투자 가능한 자산규모를 2조7천억 달러(2021년 기준)로 추정했다. 다양한 분야에서 균형을 갖춘 성숙한 시장으로 발전하는 상황이다.

이러한 시장 규모를 바탕으로 한국은 자산운용이 국가의 성장 모델에 크게 기여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한국이 급속한 노령화로 자산운용을 성공적으로 하지 못하면 다음 세대에 엄청난 재정 부담을 전가할 수 있는 위험도 증가하고 있다. 따라서 한국은 자산운용이 국가성장 모델에 기여할 수 있을지 여부에 관해 분기점에 서 있다고 본다. 문제는 투자환경이 갈수록 적정 수익률을 달성하기에 우호적이지 않은 방향으로 변화하는 점이다. 연금 가입자의 감소, 저금리 장기화, 인플레이션 등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자산운용에 있어 장애요인이 증가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투자 비중이 가장 컸던 주식과 채권의 가격이 동시에 하락하여 분산투자의 효과에 의문이 제기되었다. 이에 대체투자 등을 확대하여 분산투자의 효과를 제고하고 적정 수익률을 확보하는 것이 전 세계 자산운용 기관의 관심사가 되었다.

열악한 여건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 자산운용 기관은 다음 전략을 꾸준히 수행하여 역경을 극복하고자 한다. 첫째, 기관 지배구조의 개선을 중장기적으로 개선하고 있다. 실증분석 논문에 따르면 지배구조의 개선 여부에 따라 연간 수익률을 1~2%포인트 제고할 수 있다. 전 세계 연기금의 모델인 캐나다 CPPI는 30년 전 개혁을 통해 가장 모범적인 지배구조를 근간으로 오늘날의 성장을 이뤘다.

둘째, 고유한 투자 모델의 정착에 초점을 두고 있다. 모든 나라가 상이한 역사와 여건에서 성장하여 자신만의 장점을 극대화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캐나다는 공적 연금에 철저히 민간 자산운용 방식을 도입하여 대체투자 등 다양한 자산에 대한 직접투자를 제고하고 있다. 미국은 캐나다를 벤치마킹하여 부분적으로 민간 방식을 가미하고 있다. 호주는 '슈퍼' 퇴직연금을 기반으로 인프라 등 국내 자산 투자를 활성화했다. 유럽은 에너지 전환, ESG 등에 초점을 맞춘 다양한 대체투자를 통해 대응하고 있다.

셋째, 운용의 전문성 강화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한마디로 '인재 영입 전쟁'이다. 최근 AI, 챗GPT 등 사람을 대체할 수 있는 기술 발전이 대세로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아직 자산운용은 인간의 판단이 매우 중요한 분야이다. 투자자산은 자산군별로 매우 다양화되고 있다. 또한 자산 간의 경계도 모호한 복합 형태의 투자가 증가하여 과거의 경험과 지식만으로 판단에 한계가 있다.

넷째, '그들만의 리그'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전 세계 자산운용 기관의 수익률 경쟁이 격화되고 있다. 특히 대체투자를 통해 위험 대비 수익률을 제고하는 노력이 강화되고 있다. 대체투자는 운용회사, 딜 소싱 능력 등에 따라 질적으로 매우 상이한 특수성이 있다. 이러한 상황을 활용하여 소위 잘 나가는, 선도하는 기관들은 그들 간에 우선적으로 투자를 공유하는 '클럽 딜'을 많이 한다.

자산운용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면 향후 장기적으로 우려되는 재정부채의 증가를 상당 부분 억제할 수 있다. 또한 국가의 성장모델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캐나다는 신용평가사 피치로부터 CPPI가 해외 우량 장기 자산을 많이 보유한 점이 신용등급에 긍정적인 요인이라는 평가를 받은 바 있다. 싱가포르는 국부펀드 GIC와 테마섹을 활용하여 국가의 성장 지원 및 산업 발전을 추구하는 성공적인 모델을 갖고 있다. 한국도 자산운용을 잘 활용하면 금융산업에서 '삼성전자'를 육성할 수 있고, 장기적인 국가의 과제를 해결하는데도 효율적이라고 본다. 문제는 시간이 많지 않은 점이다. 인구 구조 등을 고려하면 영원히 자산규모가 증가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장동헌 법무법인 율촌 고문/ 전 행정공제회 최고투자책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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