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직원이 돈을 빼돌린다. 또는 고객정보를 무단으로 사용해 사익을 얻는다. 은행은 내부 감사에서 적발했다며 금융감독당국에 신고하고, 해당 직원들을 경찰 등 사법당국에도 고발한다. 당국은 현장검사 요원을 급파해 샅샅이 뒤진다. 은행 최고위급들을 불러 엄벌을 경고한다. 사고를 낸 은행의 수장은 고개를 숙여 사죄한다. 앞으로는 똑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단속을 강화하겠다고 한다. 사고가 좀 크면 강도 높게 혁신하겠다면서 무슨 무슨 태스크포스나 위원회를 만든다. 당국도 규제 강도를 높이기 위한 제도 개선에 나선다. 하지만 비슷한 일들이 거의 매년 반복된다. 신기한 일이다.

[그래픽] 금융사 임직원 횡령액 추이
(서울=연합뉴스) 박영석 기자 =3일 금융감독원이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양정숙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들어 7월까지 금융사 임직원의 횡령 사건은 경남은행을 포함해 11개사, 33건에 총 592억7천300만원이었다. zeroground@yna.co.kr 트위터 @yonhap_graphics페이스북 tuney.kr/LeYN1

신뢰를 철칙으로 삼아 고객 돈을 운영해 먹고사는 은행에서 어처구니없는 금융사고들이 잇따라 터지고 있다. 지방은행인 BNK경남은행에서는 한 간부급 직원이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상환자금 등 562억원을 횡령해 유용했지만 15년이 지난 최근에야 적발됐다. 은행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사고다. 연내 시중은행 전환을 추진 중인 DGB대구은행에서는 직원들이 고객 몰래 문서를 위조해 1천여개의 계좌를 개설한 사실이 적발됐다. 그런데 대구은행은 이 사실을 알고도 금융감독원에 보고조차 하지 않았다. KB국민은행의 증권업무 대행 업무를 맡은 직원들은 상장사의 무상증자 정보를 가로채 100억원대의 부당이득을 챙기다 적발됐다. 도덕적 해이를 넘어선 범죄 행위다. 이런 일이 은행 안에서 거리낌 없이 벌어졌다.

지난해 우리은행 직원이 700억원을 횡령한 사건이 터진 것을 계기로 금융당국은 은행의 내부통제를 강화하기 위한 혁신 방안을 내놓았다. 특정 업무를 오랫동안 맡아온 직원들을 특별 관리하는 등의 인사 관리 기준을 강화했지만, 소귀에 경 읽기였다. 아니나 다를까 금융감독원 부원장은 17개 은행장을 소집해 '특단의 노력'을 해 줄 것을 주문했다. 이후 500억원대 횡령 사고를 낸 경남은행은 비상경영위원회까지 설치했다. 내부통제 혁신을 위한 전담팀도 구성해 활동에 들어갔다. 어떤 결과물을 내놓을지 모르지만, 결국은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꼴이다.


금융당국은 은행 등 금융회사가 내부통제 시스템을 제대로 운영하지 못한 경우 최고경영자(CEO)와 임원들에게도 책임 범위를 명확히 하는 금융회사 지배구조법 개정에 나서겠다고 한다. 결국 직원 관리를 똑바로 못해 금융사고를 반복적으로 내는 금융회사의 CEO와 임원들을 '퇴출'하겠다는 경고인 셈이다. 하지만 입법 사항인 만큼 언제가 될지 알 길이 없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 과거처럼 몇몇 사람 징계하고, 처벌하고 끝날 것으로 보인다. 그러는 사이 또 어디선가 누적됐던 사고는 뻥하고 또 터질 것이다.

금융은 사람에 의존하는 경향성이 큰 산업이다. 하지만 사람이 완벽하지 않다 보니 모든 프로세스를 규정화하고 시스템화한다. 그런데 이 또한 완벽하지는 않다. 시스템을 운용하는 것도 사람이다. 돌고 돌아 문제는 사람이다. 잇따르는 금융회사의 금융사고에서 주목해야 하는 것도 결국은 사람이다. 금융회사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에 대한 최종 책임자는 CEO이지만, 강력한 내부통제가 작동되도록 하는 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게 감사다. 거의 모든 금융회사는 상임감사를 두고 회사 내에서 벌어지는 각종 문제를 적발하고 시정 조치토록 한다.

국내 대표적인 은행과 증권사 등 금융회사의 감사들은 누가 맡고 있을까. 이 또한 신기한 일이지만 전직 금감원 출신들이 독식하고 있다. 신한·KB국민·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5대 시중은행의 상임감사는 모두 전직 금감원 간부들이다. 전직 금감원장과 부원장은 은행의 이사회 의장이나 사외이사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증권업계라고 다르지 않다. 감독당국에서의 경험을 발판 삼아 금융회사의 내부통제를 강화하고 선진화하겠다는 차원에서 이러한 인사들을 영입했지만, 사고는 터졌다. 한 은행의 상임감사는 급여와 상여금, 퇴직금 등으로만 10억원을 챙겼고, 주식도 받았다. 보통 5억원이 넘는 연봉을 받는다.

단지 전직 금감원 출신이라는 이유로, 연봉을 많이 받는다는 이유로 비난할 수는 없다. 하지만 돈값은 해야 한다. 전관이라는 비판에 눈치를 보면서까지 피감기관으로 자리를 옮겼다면 그에 합당한 역할도 해야 한다. 미국 컬럼비아대 로런스 피터 교수는 1969년 저서 『피터 프린스플(Peter principle)』에서 "조직의 구성원은 자신의 무능력 수준에 도달할 때까지 승진하는 경향이 있다"는 '피터의 법칙'을 제시한다. 유능하다고 승진시키다 보면 어느 순간 자신이 감당하기 힘든 자리까지 올라가게 되는데 결국은 최상위 자리에는 무능한 사람들로 채워지게 된다는 이론이다. 무능한 사람들이 그 자리에 앉을 수 있는 이유는 신분 보장을 기초로 하는 관료적 체계 때문이라고 피터 교수는 설명한다. 관료적 병폐를 지적한 것이지만, 피터의 법칙은 우리 사회 어느 조직에도 적용될 수 있다.

금융회사의 상임감사에 있는 전직 금감원 출신들을 싸잡아 무능한 사람들로 비판하는 게 아니다. 할 일은 하라는 것이다. 자신이 몸담은 금융회사를 감독당국의 후배들이 감시·감독하는 상황에서 내부통제를 제대로 하지 못해 사고가 터진다면 얼굴을 들 수 있겠는가. 그저 시간 내서 과거의 후배들에게 밥 사고 술 사고 하는 일을 업으로 삼고 그것이 자신이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당장 자리에서 내려와야 한다. "따뜻한 마음으로 봐달라". 과거 사모펀드 사건이 터졌을 때 금감원 전직 간부가 후배·동료에게 전화해 청탁했다는 말이다. 이 정도 말 한마디 해주려고 상임감사 자리에 앉아 있을 사람은 없길 바란다. 사고가 터져도 책임지지 않는 자리를 꿰차고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이권 카르텔이다.

(정책금융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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