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홍콩 골딘파이낸셜글로벌센터(GFGC) 빌딩, 독일 트리아논 빌딩은 좋은 부동산 투자처였다. 뛰어난 입지에 안정적인 주요 임차인, 거기에 저렴한 대출 금리까지, 국내 자산운용사들은 투자 수익률을 제고할 수 있는 좋은 물건에 집중했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불렸던 해외 부동산은 그러나 4년이 지난 지금, 최악의 상황을 맞고 있다.

미래에셋그룹 계열 운용사인 멀티에셋자산운용은 지난 7월 홍콩 GFGC오피스 빌딩 투자 펀드 자산을 약 90% 손실 처리하는 쪽으로 결정했다. 실제 손실 규모는 90%보다 작을 수도, 그 이상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2019년 6월 연 8% 수준의 높은 금리를 약속하며 2천800억원 규모로 조성된 홍콩 GFGC 빌딩 대출용 펀드의 이같은 결말은 예상치 못했다.

이지스자산운용은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위치한 트리아논 빌딩을 두고 매각 가능성 또는 자금 추가 투입을 놓고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어느 쪽으로 결정되든 대규모 손실은 불가피하다.

전세계 상업용 부동산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각국의 금리 인상,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재택 혼합 근무에 따른 사무실 수요 감소의 직격탄을 맞았다.

실제 4~5년 전 3%였던 현지 대출 금리는 10% 이상으로 올라갔다. 감정 가격 하락으로 레버리지를 30~50% 축소하라는 요구도 더해졌다. 일본이 가장 좋은 편이고 유럽 지역은 국가별로 편차가 크다. 주요국 가운데서는 미국의 상황이 가장 나쁜 실정이다.


출처:한국신용평가


문제는 이제 시작이라는 점이다.

코로나19 직전인 2019년 전 세계적으로 상업용 부동산 투자는 대폭 증가했다. 대부분 건물 가액의 50% 이상을 현지 은행으로부터 4~5년 만기 대출을 통해 이뤄졌다. 저렴한 대출 금리 이점을 활용하면 투자 수익률을 높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대출 만기는 속속 돌아오고 있다. 특히 대출 만기가 집중된 2024년은 공포 그 자체다. 상업용 부동산 시장이 급랭하면 모든 상업용 부동산에서 대출 연장, 적용 금리 등의 변별력이 사라질 것으로 우려된다. 현지 은행들은 옥석 가리기를 하지 않고 무차별 자금 회수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멀티에셋, 이지스의 사례에서 보듯, 국내 자산운용사들도 예외는 아니다. 2019년 전후로 설정된 해외 부동산 펀드 만기는 앞으로 계속 돌아온다. 좋은 품질의 물건에 투자한 경우도 큰 피해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다.

사모펀드를 통해 투자한 기관투자자들은 레버리지 축소 요구에 추가 투자 등을 결정해 스스로 대응할 수 있지만, 공모 펀드의 경우 펀드당 투자자 숫자가 많아 이런 대응이 불가능하다. 당장 10월에 해외 부동산 공모펀드 만기가 예정돼 있어 업계는 예의주시하고 있다.

정상적인 시장이라면 좋은 물건에 좋은 가격(낮은 금리와 좋은 대출 조건), 나쁜 물건에 나쁜 가격(높은 금리와 불리한 대출 조건)이 형성돼야 한다. 현재 전 세계 상업용 부동산은 그렇지 못하다.

실제 대출의 담보이자 투자 대상인 상업용 부동산의 품질과 무관하게 현지에서 대출 축소, 상환 요구에 직면하고 있다. 시장의 가격 기능이 마비된 일종의 '시장 실패'의 상태로 볼 수 있다.

수만 명으로 추정되는 일반 개인투자자들의 피해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특단의 조치, 정책 개입이 필요한 상황이다.

시장 실패로 인한 해외 현지의 가혹한 대출 조건, 금리 조건을 피하고 펀드 운용의 만기 연장을 통해 선의의 피해자 발생을 예방해야 한다. 시장 기능이 회복될 때까지 한시적으로 시간을 벌어줄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증권사와 은행 등 펀드 판매사와 펀드 운용사가 판매, 설정한 규모에 비례해 출자하는 리파이낸싱 펀드(대환대출 펀드) 조성도 한 방법이다. 예를 들어 2023년 4분기~2025년 2분기까지 펀드와 대출의 만기가 도래하는 펀드들의 판매사와 운용사가 판매, 설정 규모의 3분의 1에서 2분의 1에 해당하는 금액을 출자하면 일단 고비는 넘길 수 있다.

현지 은행의 요구에 대응하거나 상환하기 위한 이 출자금은 전액 민간 출자다. 대출이자 역시 이들에게 귀속돼 공적 자금 투입이나 재정 지출은 필요하지 않다.

다만, 모럴해저드는 막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출금 투자를 신청한 해외 공모 부동산 펀드를 대상으로 엄정한 심사를 통해 대환대출 투자를 허용해야 한다. 대출 심사 주체는 당국이 직접 감독할 수 있는 독립적인 위치의 운용사로 정하면 된다.

한국투자공사(KIC)나 국민연금기금의 해외 부동산 투자 부문에서 선별 대출 투자도 생각해볼 만하다. 이 두 기관은 이미 해외 부동산에 지분, 대출 투자를 실시하고 있다. 이 방법을 쓸 경우 신규 출자가 필요하지 않지만, 100% 독립적인 선택에 의한 투자가 아니라고 인식될 위험도 있다.

상황은 좀 다르지만, 과거 우리나라 IMF 위기 때 헐값에 팔린 국내 상업용 부동산이 위기를 넘기자 얼마나 빠르게 제값을 받았는지 우리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급매가 급매를 부르는 상황에서 향후 2~3년 이내 금리가 하향 안정되고 부동산 시장이 회복된다면 제값 매각이 가능한 물건의 헐값 매각을 피하자는 얘기다. 펀드의 만기 연장만 해준다면 피해를 예방할 수 있다.

특히 국내 시장 금리는 아직 미국과 유럽 일부 국가와 비교해 낮은 수준이다. 국내 시장 금리로 대출받아 해외 현지 은행의 고금리 대출을 상환해 급하게 팔아치워지는 상황은 막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상 규모, 현황 파악부터 해야 한다. 금융투자협회와 금융감독원이 움직여야 할 때다. (투자금융부장)

sykwa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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