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공정거래위원회가 정말로 공정한가. 기업에 종사하는 임직원들이 종종 던지는 질문이다. 공정위는 기업집단의 불공정거래를 규제하는 준사법기관이다. 공정하고 자유로운 경쟁의 촉진을 도모하기 위함이다. 법원 판단 없이도 기업들에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는 사정 기관이기도 하다. 특히 공정위 고유 권한인 '전속고발권'은 기업 입장에서 무시무시한 수단이다. 공정거래법 위반 행위에 대해 공정위의 고발이 있어야만 검찰 수사가 가능하게 한 제도다. 다시 말해 공정위가 고발하지 않으면 검찰은 혐의를 포착했더라도 기소를 할 수 없다. 공정위가 '경제 검찰'이라 불리는 이유다.

공정위의 공정성 논란이 제기되는 게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막강한 권한을 가진 사정기관이다 보니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일부 부침이 생길 여지는 있다고 본다. 하지만, 공정위의 일탈 사례가 부쩍 늘었다는 하소연이 적잖게 들린다. 공정위의 조사 범위가 확 넓어진 것을 두고 문어발식 조사란 비판도 나온다. 올해 초 공정위가 화물연대본부를 검찰에 고발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사업자단체나 노조 등 파업에 공정위가 공정거래법으로 제재하려는 시도를 한 것 자체가 거의 없는 일이라 논란이 더 확산하는 모양새다. 공정위의 조사 대상 업권도 무척 다양해졌다. 금융권의 수수료 담합 문제뿐 아니라 입시학원 등 사교육업체들의 허위 광고 문제, 치킨 등 외식업계의 가맹점 실태 조사까지 전방위적인 행보를 보인다.

반면에 공정위의 대기업집단 관련 정책은 눈에 띄게 완화했다. 공정위는 올해 들어 대기업집단이 총수 일가 등에 부당하게 일감을 몰아줬는지 판단하는 기준을 하향했다. 공정위는 또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대규모 내부거래 공시 기준을 50억원에서 100억원으로 높였다. 대기업 계열사의 내부거래 공시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내부거래는 일감 몰아주기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가 있어 그간 공정위의 집중 감시 대상이었다. 공정위의 문어발식 조사에 더해 대기업 친화 행보가 강화되는 분위기에서 이와 반대로 중견·중소기업은 떨고 있다. 최근 공정위가 중견기업의 부당 내부거래를 집중 감시하겠다고 예고한 것을 두고 올 것이 왔다는 불안감도 팽배해졌다.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은 지난 14일 기자간담회에서 "중견 기업집단은 제약, 의류, 식음료 등 국민들의 생활과 밀접한 업종에서 높은 영향력을 지니고 있다"며 "시장 지배력이 높은 중견 집단의 부당 내부거래에 대해서도 엄정히 법을 집행하겠다"고 밝혔다.

취임 1년, 인사말 하는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
[출처:연합뉴스 자료사진]

 


공정위는 즉각적으로 움직였다. 한 위원장의 간담회 당일 공정위는 오뚜기와 광동제약에 대한 현장 조사에 들어갔다. 그간 공정위의 부당 내부거래 제재는 주로 대규모기업집단을 대상으로 이뤄졌다는 점에서 공정위의 이번 지침은 다소 의외라고 평가된다. 실제 2018년 이후 시정명령 이상의 제재를 받은 건수는 대기업집단이 21건, 중견집단이 5건으로 대기업 계열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대기업 관련 정책은 완화하면서 중견·중소기업에 본격적으로 칼끝을 조준하는 게 공정한가에 대한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공정위가 기업들의 각종 불공정행위에 대해 조사하는 것은 당연한 책무다. 과거 재벌 때려잡기의 선봉장으로 평가됐던 적도 있으니 대기업에 친화적이란 비판이 억울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집권 여당 등의 정책 논리에 일방향으로 맞춰가는 쏠림 현상이 있다거나, 대기업집단 정책을 사실상 포기하려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는 점은 공정위 스스로 경계해야 한다. 공정위는 출범 당시부터 재벌의 견제를 뚫고 성장해온 기관이다. 어떤 정부에서건 공정위는 공정거래법(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수호라는 본연의 임무를 다하면 된다. 법 취지에 맞게 모든 경제주체가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는 판을 깔아준다는 대원칙에 흔들림이 없어야 한다. (취재보도본부 기업금융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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