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추석 연휴 직후인 10월4일 오후 10년 국채선물(LKTB)이 하한가를 기록했다. 오랜 연휴를 마치고 복귀한 이날 낙폭은 무려 전 거래일 대비 291틱. 상장 이후 역대 최초의, 누구도 쉽게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3년 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성행했던 그해 3월 288틱 가량의 낙폭을 기록하기도 했지만, 그때는 전 세계적인 패닉셀에 모두가 그러려니 했다.

10월의 채권시장은 그래서 더 불안하다. 추석 연휴가 끝나자마자 들이닥친 혼란을 그저 미국발 악재로만 받아들이기에는 어딘가 찜찜하다고 모두가 입을 모은다. 지금의 혼란은 글로벌 금융위기보다도, 코로나 팬데믹보다도 그 폭이 더 크다.

학습효과란 게 있다. 지속적으로 쌓인 경험은 기억 속에 저장된다. 지금 시장이 인지하는 경험은 1년 전 레고랜드 사태다. 어느덧 한국의 10년 금리는 레고랜드 이후 최고치로 올라왔고, 이제는 레고랜드 당시 고점인 4.5%까지 열어놓고 있다.

사실, 여러 경제지표에서 증명된 미국의 견고한 경제 펀더멘털, 그에 따른 연준의 긴축 장기화 등을 이유로 지난 8월부터 미국을 비롯한 세계 금리는 상승세를 지속하고 있었다. 작년과 비슷하게 잭슨홀 회의 전후로 오름세는 뚜렷해졌다.

이후 연준, 월가의 수많은 '구루'들 중 일부가 "미 국채 금리가 5%까지 상승할 수 있다"고 언급할 때만 해도 시장은 반신반의했다.

하지만 추석 연휴 기간 미 국채 10년 금리가 저항선을 뚫고 4.8%를 웃돌아버리자, 도사리고 있던 우려는 현실이 될 수 있다는 냉정으로 변했다. 특히 2007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하던 미국 10년물 금리의 저항선이 뚫린 건 적잖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 10년 금리는 전 세계 금리 벤치마크다. 시장은 5% 가능성을 열어놔야 한다고 판단했고, 곧바로 국내 시장에도 반영돼 국고 3년 금리는 4%, 국고 10년 금리도 4.3%를 터치했다.




물론, 지난 4일에는 글로벌 시장 흐름을 하루에 급하게 반영해야 했던 요인도 있다. 국채선물 하한가도 그런 흐름이다. 연말 북클로징이 다가오면 투자자들은 듀레이션 리스크를 최소화하려 하기 때문에 든든한 매수 주체가 찾기 쉽지 않은데, 이런 이유까지 더해져 국내 채권시장 반응이 더 확대된 측면이 있다.

거기에 하나 더. 딱 1년 전의 기억이다.

강원도는 레고랜드 테마파크 기반조성사업을 했던 강원중도개발공사(GJC)에 대한 법원 회생 신청을 하겠다고 나섰고,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크레디트 시장 충격은 작년 9월30일 시작됐다. 이는 레고랜드 사태라는 이름으로 일파만파 퍼져 작년 10월 국내 금융시장을 집어삼켰다. 정부의 각종 대책 덕분에 시장은 안정을 찾았지만, 레고랜드 사태 재발은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일로 여전히 여겨진다.

금융당국의 움직임만 봐도 알 수 있다. 지난해 유동성 경색을 경험해본 당국은 금융기관들에 수신 경쟁을 자제하라고 요청하고 있다. 지난 8월 금통위 의사록에 따르면 한 금통위원은 국내 금리가 미국 금리에 연동해 상승하고 있는 점을 우려했다.

연말 머니무브를 촉발했던 퇴직연금 시장에서도 금리 베끼기, 이른바 커닝 공시가 원천 차단됐다. 이로써 비퇴직연금사업자가 사업자의 금리보다 높게 써내 과당경쟁을 유발하는 관행은 사라지게 됐다. 지난해 회사채 시장 경색 탓에 일부 유동성이 부족했던 금융회사가 퇴직연금을 자금조달 수단으로 활용한 속사정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금융당국의 철퇴였다.

지난 7월27일 한은은 자금조정대출을 포함한 각종 금융기관 대출 제도를 개편하고, 담보 범위를 확대하는 등 유동성 공급 의지를 드러냈다. 단기자금 시장 우려가 커지자 환매조건부채권(RP) 매입과 통안채 발행 규모를 축소하는 등 시장 안정화에 계속 노력을 기울인다.

추석 연휴 이후 금리 급등세가 뚜렷해지자 기재부는 구두 개입에 나섰다. 작년 레고랜드 사태로 실행된 채권시장 안정화 프로그램은 지금도 시행중이다.

이미 마지막 분기로 접어든 시장 선수들의 눈높이는 많이 낮아졌다. 치솟는 유가 등 불확실성이 산재하면서 경기 회복 기대는 작아졌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에 연방준비제도(Fed·연준) 당국자들의 금리인상 필요성에 대한 발언도 눈에 띄게 신중해졌다. 올해 연준의 최우선 과제가 경기 회복이 아닌 물가 안정에 있음을 생각하면 시장 금리는 생각보다 빨리 안정을 찾을 수도 있다.

무엇보다 학습효과를 경험한 우리 역시 다르지 않은 시기다. 내년 총선이 200여일 앞으로 다가온 지금, 현 정부에게 가장 중요한 것도 시장 안정이다. 찜찜한 지금의 시장이, 그래도 조금은 안심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투자금융부장)

sykwa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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