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우리나라에서 은행을 바라보는 시선은 복합적이다. 금융기관인지 금융회사인지, 용어 사용을 두고도 의견이 갈린다. 은행에 대한 쓰임새를 어떻게 볼 것인지에 따라 확연한 시각차를 보인다. 이러한 모습은 1997년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더욱 분명해졌다. 25년 넘는 시일이 흘렀어도 여전히 간극은 좁혀지지 않는다.

금융위-금감원, 금융지주회장단 간담회
(서울=연합뉴스) 임화영 기자 =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20일 오후 서울 중구 은행연합회에서 열린 금융지주회장단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3.11.20 hwayoung7@yna.co.kr

 

인가권과 감독·제재권을 갖는 정부는 은행을 단순 민간 회사로 보지 않는다. 국가 경제를 지탱하는 돈의 혈맥을 책임지는 역할 때문이기도 하지만, 국민 혈세로 살려낸 곳이란 생각이 워낙 강하기 때문이다. 외환위기 당시 정부가 쏟아부은 금융구조조정 비용은 168조원에 달했다. 국민 모두가 고통받던 시기임에도 막대한 돈을 투입해 살려냈으니 그에 상응하는 사회적 책임은 단순히 돈으로 계산할 수 없다고 본다. 그래서 주주와 임직원의 이익보다는 국민의 이익을 우선시해야 한다는 인식이 강할 수밖에 없다. '관치'도 이와 무관치 않다.

올해 1년 내내 은행들은 등골이 서늘하다. 고금리를 기반으로 막대한 이자 이익을 거두고, 성과급 잔치를 벌이고 있다는 질타는 상시적이다. 비판의 수위는 점점 높아져 이제는 '공공의 적'이 됐다. 제1금융권이라는 자부심은 '돈놀이'라는 말로 추락했다. 고금리를 기회로 삼아 이자 장사로 대출 고객들의 '고혈'을 뽑아 먹는 고리대금업자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민간 회사' 은행이 돈을 많이 벌었다고 이처럼 강한 비판을 받는 상황은 아이러니하다. 은행을 공공기관에 맞먹는 '금융기관'으로 인식하는 측면이 매우 강한 사회 분위기 탓이다.

은행들은 억울하다고 하소연한다. 민간 상업은행이 예대 금리 차를 통해 이익을 내는 게 왜 문제가 되는지 모르겠다는 얘기도 한다. 고금리 상황을 은행이 초래한 것도 아닌데 '일시적' 시장 흐름 속에서 나타난 이익 증가를 두고 죄인 취급받는 게 못내 억울하다는 것이다. 시장 상황이 반전돼 이익이 급감하게 된다면 그때도 지금처럼 무차별적인 비판을 할 것이냐고 반문한다. 하지만 워낙 휘발성이 강한 이슈이다 보니 대놓고 말하지 않을 뿐이다.

그렇더라도 은행들이 놓치고 있는 게 있다. 경제 논리에 따라 돈을 벌었고 그 과정에서 고객들에게 할 것은 다 했다는 생각들이 얼마나 분노를 유발하는지를. 금리라는 가격 변수를 되돌릴 수는 없겠지만 이미 확정된 이익이 과도하다면 그에 합당한 고객 환원도 필요하다는 점을 간과한다. 주주환원 못지않게 자신들에게 넘치는 이익을 안겨준 고객들에 대해서도 이익을 나눌 필요가 있다. 자본주의 원리에 합당하지 않다고 강변할 수 있겠지만, 기업의 지속가능성 측면을 고려하면 그러한 반론과 강변은 그저 핑계일 뿐이다.

우리나라에서 장사하는 어떤 기업보다도 은행들은 장기 고객들이 많다. 주택담보대출 상품만 보더라도 만기가 기본 30~40년에 달한다. 주담대 계약을 맺는 순간 은행은 30~40년간 운명을 같이할 고객을 맞이하게 된다. 이러한 고객이 없어진다면 은행은 뭐로 돈을 벌 것인가. 자신들의 지속가능성이 결국은 고객의 지속가능성과 연계돼 있다는 것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168조원의 공적자금으로 아직까지 은행을 옥죄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하지만, 은행이 망할 지경에 이르러 다시 국민의 혈세가 투입돼야 할 상황이 온다면 염치없게 살려달라고 호소할 것인가. 조달 비용을 줄여주려고 시장 안정에 많은 혈세가 투입되고 있다는 사실도 외면할 것인가. 수십년간 같이 가야 할 고객들이 어려움을 겪는 시기가 생긴다면 이를 해소해줄 물 한 모금이라도 더 내어줄 수 있어야 한다. 그게 은행의 책임이다.

특별한 이벤트가 생겨야만 상생이라며 수천억 원 돈을 내놓고 끝내려는 현재 상황이 참으로 우습다. 꼭 정부가 나서야만 쇼하듯 상생 금융이라며 대책을 내놓는 꼴도 우습긴 마찬가지다. 상생 금융은 어려운 고객들을 도와주기 위한 측면도 있지만, 결국은 은행 자체 생존력을 높이기 위해 꼭 필요한 기재다. 금융 취약 고객들에 대한 시혜가 아니다. 늦은 숙제 하듯이 부산 떨지 말고 고객과 은행 모두의 지속가능성을 높여줄 상생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장사 하루 이틀로 끝낼 것도 아니지 않은가. 자업자득, 소탐대실이 반복되면 결국 망한다.

(정책금융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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