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1. 하이닉스반도체(현 SK하이닉스)의 구제 사례다. 외환위기 직후인 2000년 12월 하이닉스의 전신인 현대반도체가 부도 위기에 직면한다. 법정관리에 들어가야 할 기로에서 채권금융기관(채권단)이 나섰다. 이듬해 3월 채권단 자율협의회가 열렸지만, 하이닉스 처리를 두고 결론을 못 내다 같은 해 10월 기업구조조정촉진법(기촉법)에 의한 채권단의 공동관리 개시가 결정됐다. 이른바 워크아웃(workout)의 시작이다. 이후에는 채권단의 전폭적인 지원이 뒤따랐다. 2001년과 2002년 두 차례에 걸친 채무재조정과, 채권단이 보유한 전환사채(CB)의 출자전환도 이뤄졌다. 2004년에는 채권단 주도로 하이닉스의 비메모리 사업부문 매각이 이뤄지고 2005년 7월 워크아웃에서 벗어난다. 4년여 만에 이뤄진 워크아웃 조기 종료다. 이후로는 매각 작업이 본격화됐다. 수년에 걸쳐 1차와 2차 매각이 차례로 불발된 끝에 2011년 11월 SK그룹(SK텔레콤)에 전격 인수된다. SK하이닉스의 새로운 시작이다.


#2. 2000년 초반 현대그룹 형제의 난이 벌어지고, 설상가상으로 현대건설은 부도 위기에 처한다. 2000년 8월 채권단의 워크아웃이 가동됐고 하이닉스와 유사한 절차를 밟는다. 채권단의 수차례 채무 만기연장과 출자전환은 현대건설의 숨통을 틔웠다. 건설 경기가 살아나면서 수주가 정상화되고, 결국 2006년 5월 워크아웃에서 벗어난다. 2010년 6월께 시작된 현대건설 매각 작업은 이듬해 3월 현대차그룹의 인수로 종료됐다.


SK하이닉스 반도체 공장
[연합뉴스 자료사진]

 


현대건설 기술 엑스포 개막식
[현대건설 제공]

 


워크아웃 제도가 없었다면 SK하이닉스와 현대건설은 일찌감치 공중분해 됐을지 모른다. 세계 2위 메모리 반도체 기업과 대한민국 1등 건설사의 죽고 사는 문제가 기업구제 시스템 여부에 따라 결정되는 순간이 언제든 올 수 있단 얘기다.

워크아웃은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을 구제하는 과정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한국에서 제도화한 건 2001년이다. 당시 외환위기 여파로 기업이 줄도산하자 한시법인 기업구조조정촉진법(기촉법)을 만들면서 도입된 제도다.워크아웃은 채권단 75%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SK하이닉스와 현대건설의 사례에서 봤듯이 유동성 위기를 겪는 기업들에 신속한 자금 지원이 가능한 장점이 있다.

워크아웃이 아니면 기업을 구제할 수 있는 방법은 법정관리가 유일하다. 법원이 관리인을 선임해 진행하는 기업회생 절차다. 하지만, 법정관리에 들어가는 순간 기업의 영업활동이 사실상 중단된다. 모든 채무가 동결되고 수주 계약도 자동 해지된다. 법정관리에 대한 낙인효과로 경영 정상화는 기약하기 어렵게 된다.

재계에 따르면 법정관리에 들어간 기업들이 정상화되는 데까지는 통상 10년 정도 걸린다. 워크아웃 기업의 평균 회생기간은 이보다 훨씬 짧은 3년 6개월 정도다. 기업 입장에서 워크아웃의 효용은 법정관리와 비교하기 어렵다.

문제는 기촉법이 두달 여전(10월15일)부터 효력이 상실됐다는 점이다. 5년 일몰 기한이 도래한 탓이다. 다행스럽게도 지난달 말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서 2026년까지 3년 연장하는 기촉법 개정안이 의결됐다.

다만 아직 절차가 남아 있다. 오는 9일 이전에 국회 법사위를 거쳐 본회의까지 통과해야 모든 절차가 마무리된다. 위헌 소지 논란과 함께 여야 간 이견이 많아 이번 정기국회에서 통과될지도 미지수다.

워크아웃 제도를 포기할 만큼 녹록한 상황이 아니라는 데 또 문제가 있다. 고금리 고물가 상황에서 일시적으로 유동성 부족에 시달리는 기업들이 급증하고 있다. 작년 기준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내지 못하는 한계기업 비중은 2.3%로 사상 최고라고 한다. 지난 9월까지 법인 파산신청 건수만 1천200여건(전년 대비 64% 증가)으로 역대 가장 많다.

자금난에 부닥친 기업들이 모두 경직적인 법정관리로 가게 놔두는 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모든 한계기업을 살리자는 취지가 아니다. 일시적 유동성 위기에 처한 기업이 재기를 할 수 있는 선택지는 하나쯤 더 있는 게 낫다. 기촉법 개정안에 대한 정부와 정치권의 책임있는 자세가 요구된다. 아울러 일몰과 연장을 반복하는 등의 불필요한 비용을 줄이는 차원에서도 법의 상시화를 진지하게 고민할 때가 됐다. (취재보도본부 기업금융부장)

chh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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