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한국은 신흥국이다. 경제 규모로 볼 때 선진국 반열에 오른 지가 언제인데라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자산배분 관점에서 보면 한국 자본시장은 분명 신흥국이다.

한국의 코스피는 MSCI 이머징마켓에 있다. MSCI는 미국의 모건스탠리, 좀 더 정확하게 하자면 모건스탠리의 자회사인 모건스탠리 캐피털 인터내셔널이 발표하는 세계 주가지수다. 한국은 MSCI 선진시장 진입을 위해 수년간 노력했지만, 이머징마켓에 머물고 있다.

MSCI 선진시장 진입을 위해서는 지수 편입 후보군인 관찰대상국(워치리스트)에 1년 이상 오른 뒤 리뷰를 통한 시장 승격 결정, 1년 후 실제 지수 편입의 순서로 진행된다. 이에 따라 올해 후보군에 들어간다고 해도 2026년 6월께 실제 편입이 이뤄진다.

한국은 한때 진입했던 워치리스트에서도 빠져 사실상 첫걸음부터 다시 해야 하는 상황이다. 작년 MCSI는 "해외 투자자의 한국 주식시장 접근성 개선을 위해 제안된 조치들을 환영하며 향후 제도 이행의 효과를 모니터링할 예정"이라며 한국의 시장 접근성을 가장 먼저 평가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와 달리, 매년 6월에 발표되는 MSCI 연례 시장 분류를 앞두고 올해는 관찰대상국 지정 기대조차 크지 않다. 공매도 전면 금지 등 글로벌 스탠더드와는 역행하고 있어서다.

MSCI는 국가 기관이 아닌 사적 기관이 발표하는 지수지만, 전 세계 자금은 이 지수를 따른다. 한국을 선진시장으로 분류하는 FTSE, S&P, 다우존스 지수도 있지만, 자산배분 벤치마크 톱티어는 MSCI다. 이 지수의 등급이 곧 전세계 투자자들이 매긴 각국 자본시장 수준이다.


MSCI 모건스탠리 캐피털 인터내셔널
[모건스탠리 캐피털 인터내셔널 홈페이지 캡처]


한국은 1992년 MSCI 이머징마켓 지수에 처음 편입됐다. 같은 지수에 있는 다른 나라와 비교할 때 출발은 비교적 빨랐다. 2008년 6월에는 첫 선진시장 지수 승격 여부를 타진했다. 2013년까지 매년 불발되긴 했지만, 2009년부터 2013년까지 관찰대상국에 올라 매년 승격 기대를 가져볼 수 있었다. 2014년 6월에는 관찰대상국에서조차 제외됐다.

2015년, 2022년 등 정부는 선진국지수 편입에 다시 본격적으로 뛰어들었지만, 여전히 제자리다. 선진시장에 편입돼 '용 꼬리'가 되느니, 이머징마켓에 남아 '뱀 머리'가 되는 게 실리적으로 더 낫다는 자기 위안도 많았다. 그러나 우리가 문턱까지 갔다 이머징마켓에서 선진시장으로 올라가지 못한 사이, 중국은 이머징마켓 지수에 진입했다. 이머징마켓 내에서도 중국 증시는 빠르게 치고 올라와 뱀 머리 자리를 차지했다.

그런 뱀 머리가 휘청이고 있다. MSCI 이머징마켓 지수 내 중국 비중은 2020년 40.95%에서 2023년 26.53%까지 급감했다. 부양책 부재 속에서 중국에서 빠져나간 글로벌 자금은 이머징마켓에서는 인도로 향했다. 2020년 8.02%에 머물던 인도 비중은 16.7%까지 늘었다. 최대 수혜국이다. 대만은 같은 기간 12.28%에서 16.04%로, 두 번째 수혜국이 됐다. 한국은 2020년 11.61%에서 2023년 12.96%로, 비중이 늘긴 했지만, 의미 있는 수준은 아니다. 애매하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아시아 주요 증시를 보면 일본과 인도 증시의 상승세가 두드러진다. 중국과 홍콩 증시는 아찔할 정도의 내리막이다. 올해 들어 꼴찌 수준이지만, 몇 년 동안 한국은 크게 떨어지지도, 크게 오르지도 않았다.

일본과 인도는 정부의 강력한 정책 뒷받침, 미국과의 동맹을 더 공고히 하려는 국가라는 공통점이 있다. 일본의 경우 강력한 기업지배 구조 개선, NISA라는 개인저축계좌와 개인연금 세제혜택 전폭 확대 등 쏟아낸 증시 부양책이 효과를 내고 있다. 인도의 경우 'Make in India'와 인도판 IRA로 불리는 PLI(생산연계인센티브)가 있다.

특히 일본의 변화는 주목할 만하다. 정부에서 시작된 증시와 기업 체질 변화가 연기금 등으로도 번지고 있다. 행동주의펀드를 받아들이고, 세계 최대 연기금인 일본 공적연금(GPIF)은 시장과 소통하는 등 보수적 기조를 벗었다. 잃어버린 30년이라는 암흑기를 거친 뒤 일본은 글로벌 자본시장 선두였던 과거의 영광을 되찾을 자신감으로 무장했다.

우리 정부도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고치겠다며 자본시장에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저평가된 기업의 가치, 더 나아가 증시를 부양하겠다며 2월 중 '기업밸류업프로그램'을 발표할 예정이다. 시가총액과 업종별로 PBR과 ROE를 상장사 스스로 분석해 알리도록 하는 게 골자다.

일단 시장은 반응했다. 만년 저평가주, PBR 1배 이하의 기업 주가가 꿈틀거린다. 하지만 이조차 테마주로 엮일 우려도 적지 않다. 기업밸류업프로그램 테마주로 잠시 한때 주가가 올랐다 사그러지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의 목소리도 나온다. 역사상 증시 부양책이 대형주 위주로만 소화됐던 학습 효과 때문인지도 모른다.

시장은 기억한다. 새해 이튿날부터 거래소를 찾아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없애겠다며 자본시장 규제를 과감히 혁파하겠다는 대통령의 모습을 인상 깊게 봤다. 거래소 개장 이래 대통령이 찾은 것은 이번 정부가 처음이었다.

그 기대 때문일까. 아니면 정부의 정책이 제대로 효과를 발휘한 '옆집' 일본을 향한 부러움 때문일까. 자본시장의 판이 뒤집어질 때가 됐다. 여기저기 '코리아 프리미엄'을 외치는 순간을 기대해본다. (투자금융부장)

sykwa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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