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인사는 메시지다. 인사 행위에는 인사권자의 포석과 의지가 숨겨져 있다. 인사를 통해 추구하는 방향과 전략이 무엇일지. 최종적으로 도출하려는 성과물은 무엇이 될지. 그러한 결과물을 얻어내기 위한 과정은 어떻게 될 것인지. 인사권자의 인사 행위와 인사 대상자를 통해 상당히 많은 것들을 유추해 낼 수 있다. 언론뿐 아니라 일반 국민이 정부 고위직 인사나 주요 대기업의 최고경영자(CEO) 인사에 주목하는 것은 비단 지엽적인 관심 때문만은 아니다. 직·간접적으로 우리의 삶과 일상에 적잖은 변화를 줄 수 있어서다.

발언하는 주형환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위원장
(서울=연합뉴스) 황광모 기자 = 주형환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위원장이 2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미래세대 자문단 간담회에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24.2.22 hkmpooh@yna.co.kr

 

최근 공직 사회에서 높은 관심을 끈 인사는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저고위) 부위원장 인사였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2일 주형환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을 부위원장으로 위촉했다. 2017년 산자부 장관을 끝으로 공직사회를 떠난 뒤 7년 만의 귀환이다. 저고위의 위원장은 윤 대통령이 맡고있다. 저고위는 위원회 이름에 모두가 담겨 있듯이 정부의 저출생·고령화 정책을 총괄한다. 결국 윤 대통령이 책임자다. 부위원장은 임기 2년의 장관급 자리이기는 하지만, 비상근 실무직에 불과하다.

공무원들은 저고위가 대통령 직속 위원회이기는 하지만, 사실 한직으로 여겨왔던 게 사실이다. 저출산·고령화 정책을 대통령에게 자문하는 기구 정도로 봐왔다. 중앙행정기관도 아니고 정책이나 예산 집행 기능도 없고 대부분의 인력도 다른 부처에서 파견받아 운영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주형환이라는 이름 석 자가 드러나는 순간 무언가를 감지했다. "간단한 인사가 아니다"라는 것을 직감한 것이다. 주형환 전 장관이 그간 보여온 '캐릭터'와 윤 대통령의 의지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그저 형식적으로 부처별 의견을 수렴해 취합해 전달하고, 1년 안팎의 파견 생활로 스쳐 가던 곳으로 치부했던 과거의 저고위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본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윤 대통령은 저고위 부위원장을 부총리급으로 격상하고 직무 형태도 상근직으로 위상을 높이는 동시에 저출산·고령화 정책을 추진하는 정부 내 컨트롤타워로서 위상을 강화하겠다고 선언했다. 물론 각종 정책 추진과 예산 집행 등의 기능을 덧붙이기 위해선 정부조직법을 개정해야 한다. 하지만, 이미 총알은 발사됐고 저고위의 위상 강화는 속도감 있게 추진될 것이다. 그 중심에 주형환 부위원장이 있게 된다. 벌써 관가에서는 주 부위원장이 실세 '왕 부총리'가 될 것이란 관측들이 나온다. 대통령의 강한 지지와 의지가 담긴 인사 속에 그런 메시지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우리 사회와 경제 구조에 심각한 위협 요인이 되는 저출산과 고령화 문제를 해결할 의지를 대통령이 직접 강하게 보였다는 점에선 기대를 높이는 측면이 크다. 2022년 출생아 수는 사상 처음으로 25만명을 밑돌았다.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를 뜻하는 합계출산율은 0.78명으로 전 세계 꼴찌다. 정부는 2025년에는 0.65명까지 떨어질 것으로 예측한다. 국가소멸론까지 나오는 것이 엄살은 아니다. 사람으로 먹고살아야 하는 우리나라 입장에서 이러한 심각한 저출산 상황은 성장주의 정책을 추구하는 우리에겐 엄청난 위협이다. 대통령과 정부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첫 시작점으로 정부 내 강력한 위상을 가진 컨트롤타워를 만들겠다고 한 것은 늦었지만 다행이다.

그런데 왜 주형환일까에 대해서는 다소 의견이 갈린다. 다분히 주 부위원장이 그간 보여온 '센' 캐릭터가 작용한 측면이 있다. 주 부위원장을 평가할 때 늘 따라붙는 수식어가 '불도저'다. 좀 더 심한 표현으로는 '주님'으로 불린다. 친정인 기획재정부에서 주 부위원장과 한 번이라도 같이 일을 해본 공무원들은 고개를 가로젓는다. 엄청난 카리스마와 일의 추진 속도, 강도 높은 질책을 경험해 본 공무원들은 특히 더 그렇다. 눈물을 쏙 빼놓을 정도로 '닦달'하고 질책하는 주 부위원장의 캐릭터를 못견디고 나자빠진 공무원도 여럿일 정도다. 청와대 경제금융비서관(1급) 시절 주요 부처 1급 공무원들을 회의에 소집했는데 대참 한 국장을 상대로 혼이 나갈 정도로 대판 깼다는 일화는 소소한 사례일 정도다. 오히려 이러한 캐릭터가 윤 대통령의 마음을 샀다는 얘기도 있다.

주요 부처 공무원들이 고민 지점은 위상이 강화된 저고위와의 협력 관계를 어떻게 설정해야 할 것인지로 모인다. 저고위에는 기재부 등 7개 부처의 장관이 정부위원으로 참석한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도 당연직 위원이다. 주 부위원장이 부총리급으로 격상된다면 3명의 부총리가 같이 모여 회의하는 매머드 협의체가 되는 셈이다. 특히 저출산, 고령화 대책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예산과 재정이다. 결국 저고위가 추진할 상당히 많은 정책이 기재부와 맞닿아 있게 되는 셈이다. 주 부위원장과 최 부총리는 궤적도 비슷하다. 주 부위원장이 청와대 경제금융비서관을 마치고 기재부 1차관으로 갈 때 후임자는 최 부총리였다. 주 부위원장이 산자부 장관으로 영전하면서 옮길 때 1차관으로 온 사람이 최 부총리였다. 7년 만에 공직으로 다시 돌아온 주 부위원장과 경제 컨트롤타워에 오른 최 부총리는 이제 저출산, 고령화 문제를 두고 합을 맞추기도 하고, 이견에 대해선 조정해야 할 상황이 됐다. 특히 예산과 재정은 물론 저출산, 고령화 문제 해결을 위한 거시적 경제정책까지 다뤄야 할 주제도 많다. 기재부 공무원들은 기대 반, 걱정 반이다. '두 부총리'의 묘한 조합이 어떤 결과로 표출될 지 관심이다.

(정책금융부장)

pisces738@yna.co.kr

(끝)

본 기사는 인포맥스 금융정보 단말기에서 11시 25분에 서비스된 기사입니다.
저작권자 © 연합인포맥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