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 소비자물가 추이
(서울=연합뉴스) 박영석 기자 = 통계청이 6일 발표한 2월 소비자물가 동향을 보면 지난 달 소비자물가지수는 113.77(2020=100)으로 1년 전보다 3.1% 올랐다. 지난해 8∼12월 3%를 웃돌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월(2.8%) 2%대로 떨어졌지만, 한 달 만에 3%대로 올라섰다. zeroground@yna.co.kr


(서울=연합인포맥스) 미국의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금리 인하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금리를 인하하기 위한 자신감을 가질 때까지 머지않았다". 7일(현지시간) 미국 상원 청문회에 나선 파월의 이 발언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지수를 최고치로 끌어 올렸다. 여전히 금리 인하에 신중한 스탠스를 보였다는 평가도 있지만, 인플레이션이 둔화하고 있다는 시그널을 보내는 중앙은행 수장의 말로 읽혔다. 금리 인하 여부는 더 이상 변수가 되지 않고 있음을 의미한다. 인플레이션의 둔화 정도를 어느 선에 맞춰 금리를 내릴 것인지, 시기의 문제로 다가가고 있다.

인플레이션이 둔화하고 있다는 신호를 무엇으로 삼을 것인지는 중요하다. 그런데 미국과 유럽의 중앙은행이 주의 깊게 보는 지표 중 눈에 띄는 것은 고용과 임금 인상률이다. 현재의 불안한 인플레이션을 이끄는 주요한 축이 높은 임금 수준에 있다는 것이다. 경기 상황이 탄탄해 고용 상황이 나쁘지 않은 데다 여전히 높은 임금 수준이 인플레이션 둔화를 저해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그런데 파월이 최근 '비둘기'로 변화하고 있는 데는 임금 상승률이 다소나마 낮아지고 있다는 신호가 나오고 있는 것과 무관치 않다.

미국의 ADP가 지난 6일(현지시간) 발표한 전미 고용보고서를 보면 2월 민간 부문 고용은 전월보다 14만명 증가했다. 월스트리트 예상치 15만명보다 밑돌았다. 현 직장을 유지한 근로자의 임금인상률은 1년 전보다 5.1% 올랐는데 2021년 8월 이후 가장 낮았다. 펄펄 끓던 고용시장이 다소 둔화하고, 임금 상승세도 한풀 꺾이고 있다는 신호였다. 하지만 미국의 임금 상승 수준은 여전히 인플레이션을 웃돌고 있다. 파월이 금리 인하에 대해 이전보다 진전된 입장을 보였지만, 임금 상승이 이끄는 인플레이션 상황은 여전히 불안하다.

그런데 미국의 상황을 우리나라와 비교하면 솔직히 좀 부럽기도 하다. 우리나라도 여전히 고물가가 잦아들지 않아 고생하고 있지만 양상은 매우 다르다. 굳이 비유하자면 미국은 '부자 인플레이션', 우리나라는 '빈곤 인플레이션'처럼 보여서다. 물가와 임금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임금이 올라 물가 상승을 유발할 수도 있겠지만, 오르는 물가에 대응하려면 임금도 올라야 한다. 참으로 아이러니하지만 '생활인' 입장에선 치솟는 물가에도 임금이 그대로라면 고통은 배가 된다.

고용노동부가 지난달 29일 발표한 사업체노동력조사 결과에 따르면 근로자의 지난해 월평균 실질임금은 355만4천원으로 집계됐다. 전년의 359만2천원과 비교해 1.1% 줄었다. 실질임금은 근로자가 받는 명목임금에 소비자물가를 고려해 산출한 값이다. 실질임금은 2022년에도 0.2% 줄었다. 2년 연속 감소한 것은 2012년 이후 처음이다. 2022년 물가가 5.1% 올랐을 때 실질임금이 0.2% 줄었는데, 물가가 3.6% 오른 지난해 실질임금이 1.1% 줄었다는 것은 생활이 더 팍팍해졌음을 의미한다.

특히 가처분소득 증가율을 물가상승률과 비교하면 더욱 심각하다. 지난해 가구의 가처분소득은 1.8% 늘어나는 데 그쳐 물가상승률 3.6%의 절반에 그쳤다. 특히 가공식품과 외식 물가가 각각 6.8%와 6.0% 오른 것과 비교하면 지갑은 훨씬 얇아진 셈이다. 지난달 소비자물가가 1년 전보다 3.1% 오르면서 한 달 만에 다시 3%대에 진입했다. 자주 구매하는 품목 위주로 구성된 생활물가지수는 3.7% 상승했다. 서민들의 고물가 체감도가 커진 셈이다. 사과값이 71.0%, 귤값은 78% 뛰었다. 신선 채솟값은 12.3% 오르면서 11개월 만에 최대 상승 폭을 보였다.

물가는 오르고 금리도 여전히 높고, 그 가운데 실질임금은 감소하고. 이렇다 보니 성장을 이끌어야 할 핵심축인 내수도 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얼마 전 만난 정부 고위관계자는 최근 가장 주의 깊게 보고 있는 지표로 서민과 중소상공인 연체율을 꼽았다. 그에 맞춰 각종 대책도 마련하고 있다고 했다. '고물가-임금 감소-금리 부담'으로 이어지는 그 종착점은 결국 연체율 상승이다. 난마처럼 꼬인 복잡한 변수들을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는 종합대책이란 사실 없다. 하지만 악순환의 고리가 더욱 견고화하지 않도록 어느 한마디라도 끊어줘야 숨통이 트인다. 빈곤의 인플레이션이 더 오래간다면 그 결과는 끔찍할 수밖에 없다. (정책금융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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