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시가총액 2천조원대(11일 현재 2조180억달러)를 자랑하는 엔비디아. 이 기업의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젠슨 황은 매 분기 실적 발표 때마다 미디어의 전면에 선다. 실적 발표 이후 진행되는 '컨퍼런스 콜'에 직접 참여해 실적 가이던스를 제시하고 질문에 답변도 한다. 전 세계 투자자들은 젠슨 황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주목하면서 엔비디아의 비전, 그리고 반도체와 인공지능(AI)의 미래를 그리며 투자 여부를 결정한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
[연합뉴스 자료사진]

 


테슬라의 창업자이자 CEO인 일론 머스크도 매 분기 컨퍼런스 콜에서 만날 수 있다. 일론 머스크의 거침없는 발언 탓에 실적 발표 당일 테슬라 주가는 요동치기 일쑤다. 최근 들어 머스크의 발언이 테슬라 주가에 악재로 작용할 때가 많다는 평이지만, 컨콜 참여를 멈출 기미는 없다. 최근 한국을 방문해 국빈 대접을 받은 메타의 마크 저커버그 역시 컨콜 참여에 진심인 창업자 중 한명이다.

전 세계 시총 1위와 2위 기업인 마이크로소프트와 애플은 창업자가 아닌 전문 경영인이 컨퍼런스 콜을 진행한다. 빌 게이츠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지 않았다면, 스티브 잡스가 생존해있다면, 이들은 아마도 컨콜 참여를 당연시했을 것이라 본다. 실제로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자는 병세가 악화하기 전까지 컨퍼런스 콜에 직접 나와 투자자들을 만났다.

한국 기업의 컨콜 문화는 이들과 완전히 다르다. 삼성의 이재용, 현대차의 정의선, SK의 최태원은 당연히 없다. 그룹사 계열의 경우 이들 총수는 물론 CEO가 컨콜에 참여하는 일도 본 기억이 없다. IR(investor relations) 담당 임원이 컨콜 대표로 참석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나마 성의를 보이는 곳은 최고재무책임자(CFO)가 나오는 정도다. 컨콜이 미국에서 넘어온 IR 활동이지만, 그 성격은 많이 변질된 셈이다.

한국에서 컨콜이 활성화된 건 십수 년 남짓이다. 동시에 전화 회의를 진행할 수 있는 시스템이 부재했던 탓이다. 2000년 초중반께 컨콜이 도입되기 전에는 오프라인 실적 설명회가 주였다. 그나마도 투자자와 언론의 관심을 받는 대기업으로 한정됐다. 이때도 투자자들과 소통하는 주체는 CFO나 IR 임원이었고 CEO가 참석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컨콜이 본격적으로 도입되면서도 당시의 IR 문화가 연장되면서 CEO급의 불참이 당연시됐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 기업의 컨콜 문화 자체도 매우 보수적이다. 투자자들의 회의 참여가 매우 제한적이란 점에서다. 투자자와 언론은 컨콜의 진행 상황을 보거나 들을 수 있지만, 질문은 사전 승인을 받은 일부 애널리스트만 할 수 있다. 대부분 투자자나 기자들은 궁금한 게 있어도 물을 수 없는 구조다. 이 때문에 한국판 컨콜은 민감한 질문과 답변이 오가지 않는 '약속 대련'이란 비판을 받기도 한다.

기업의 컨콜을 비롯한 IR 활동의 주 목적은 투명한 정보 전달에 있다. 모든 투자자에 동일한 내용을 동일한 시간대에 전달하는 게 핵심이다. 책임감 있고 의미 있는 정보를 주주에게 전달하는 것도 상장기업의 책무다. 이런 점에서 최고 의사결정권자가 컨콜에 나오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민감한 질문에 대해서도 두루뭉술 넘어가는 게 아니라 투자자와 주주가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가이던스를 전해줄 수 있어야 한다.

한국 기업의 '밸류업'은 갈 길이 멀어 보인다. 하나만 보면 열을 안다고, IR 문화만 들여다봐도 그렇다. 정부 당국이 각종 기업 밸류업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진정한 밸류업은 기업 스스로 변해야 가능한 일이다. 소극적인 배당 정책, 그리고 보여주기식 수준의 자사주 매입과 소각만으로는 밸류업을 이끌어내기 어렵다. 자사주 전면 소각을 주장하는 목소리에 정부가 기업의 경영권 유지 수단 운운하며 방어해주는 꼴이니 제대로 된 대책이 나올 리 만무하다.

그럼에도 기업 스스로 밸류업을 원한다면 투명한 IR 문화를 만드는 데 온 힘을 쏟아야 한다. 오너가 어렵다면 CEO급이 컨콜에 나와 자사의 가치를 직접 증명하고 알려야 한다. 컨콜에서 더 많은 질문이 가능해지고, 이에 대한 책임감 있는 답변이 나올 수 있어야 한다. 미국으로, 일본으로 떠나고 있는 투자자를 지금 붙잡지 못하면 자본시장에서 얻을 수 있는 기업의 돈맥도 곧 끊길 수 있다. (기업금융부장)

chh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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