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문정현 기자 = 미국 정부가 주도하는 대중 포위망이 좁혀지고 정공법으로 기술 축적이 어려워진 중국 기업들이 어둠 속에서 움직이면서 삼성 등 한국기업의 기술유출이 멈추지 않고 있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이 26일 보도했다.

지난 2월28일 수원지법 법정에서는 한국 재계가 주목하는 형사 재판이 진행됐다.

삼성 반도체 부문 전(前) 상무 A씨 등이 반도체 공장 도면 자료를 입수해 중국에 유출시킨 혐의로 기소돼 재판이 열렸다.

A씨는 삼성 퇴직 후 경쟁사인 SK하이닉스(당시 하이닉스 반도체)로 옮겨 최고기술책임자까지 역임한 인물이다. 검찰은 산업기술보호법 위반에 해당한다며 작년 6월 A씨를 포함한 7명을 기소했다.

니혼게이자이는 이달 20일 9차 공판까지 피고인들은 일관되게 무죄를 주장해 재판의 향방을 가늠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국가가 기술자의 외국 취업을 제한할 수 있는지를 두고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고도 전했다.

삼성은 기술유출에 눈을 번뜩이며 감시해왔다. 사내 복합기에서 사용하는 인쇄용지에 특수한 금속박을 내장해 이를 반출하면 게이트의 감지기가 작동하도록 했다. 코로나19 확산 때도 기술직의 재택근무를 허용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전 직원을 통한 기술유출이 멈추지 않고 있다. 미국 제재로 기술 축적이 어려워진 중국 기업이 물밑에서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작년까지 5년간 반도체와 배터리, 유기EL 패널, 조선 분야 등에서 발생한 산업기술 해외 유출 건수는 96건에 달했다.

이 가운데 반도체가 38건으로 가장 많았고 그 뒤를 디스플레이(16건), 자동차(9건)가 이었다. 유출된 기술이 향하는 곳은 대부분은 중국이다.

니혼게이자이는 소속 기업의 출세 경쟁에서 패배한 기술자들이 중국으로 건너가고 있다고 전했다. 액정 패널 분야의 세계 선두기업으로 도약한 중국 BOE에는 100명이 넘는 한국인들이 유기EL패널 기술개발을 담당했다. 산업통산자원부 관계자는 적발된 기술유출이 "빙산의 일각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신문은 한국이 기간산업으로 자리매김한 디스플레이, 조선, 석유화학, 배터리, 철강 등 광범위한 산업에서 중국 기업들이 세계 선두기업으로 오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가 주도로 규모 확대에 매진하는 중국 제조업과 같은 시합장에서 싸워서는 승산이 없다.

한국 무역통계에는 장기적인 정체의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작년 한국의 대(對)중국 수출은 1천248억달러로 전년 대비 20% 감소해 사상 최대의 감소폭을 기록했다.

니혼게이자이는 반도체 불황과 중국 경기침체라는 요인이 있긴 하지만 자동차와 철강, 화학 등에서 중국 기업들이 기술력을 높여 한국 제품을 더 이상 필요로하지 않게 된 구조 변화를 간과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신민영 홍익대 교수는 "중국이 질적인 경제성장을 이뤘기 때문에 한국과 중국은 보완관계에서 경쟁관계로 변모했다"고 말했다.

수출산업 비중이 큰 재벌기업의 경쟁력이 떨어지면 한국 경제 성장도 느려질 수밖에 없다.

신문은 작년 한국의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1.4%에 그쳐 일본의 성장률(IMF 전망으로 2%)을 25년만에 밑돌 것으로 예상했다.

이어 니혼게이자이는 한국의 성장률이 1~2%에 머무는 정체기에 접어들었다고 보는 전문가들이 많다고 전했다. 일본 이상으로 저출산·고령화가 진행되고 있어 내수의 힘이 부족해 이대로는 2020년 명목 GDP 세계 10위를 고점으로 후퇴할 우려가 있다고 전망했다.

jhmo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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