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시장이 다시 흔들리고 있다. 지난 7월 중순 이후 좁은 범위에서 등락하던 달러-원 환율이 지난주 1,400원을 훌쩍 넘어섰었다. 미국의 양호한 경제지표로 달러가 강세를 보인 영향도 있었지만, 관세 협상의 불확실성이 한층 높아졌기 때문이다. 시장은 다시 불안해하고 있으며 여기저기서 환율 전망의 상단을 높이고 있다.
사실 해결책이 잘 보이지 않는다. 이번 관세 협상에서 미국 측의 요구는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 미국 측은 3천500억달러 투자펀드를 선불(up front) 또는 현금 이전 방식으로 요구하고 있다. 우리 협상단이 이해한 지급보증 위주의 캐피털 콜(capital call) 방식과는 거리가 멀다. 심지어 증액을 요구하고 있다고 한다.
미국 측은 우리 사정을 도외시하고 있고, 상식이 통하지 않는 방식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통상적 투자협약 관행과 괴리가 크며, 협상 레버리지 제고를 위한 조건 제시와 압박성 발언이 이어지고 있다. 우리를 불안하게 하고 분열시켜 양보를 얻어내려고 하는 것이다.
이런 어수선한 상황에서, 자칭 전문가들의 섣부른 추측과 전망이 난무하고 있다. 사실 확인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막연한 기대와 우려를 쏟아내고 있다. 이러한 주장들이 시장의 불안감을 증폭시키고 변동성을 확대시킨다. 이런 때일수록 차분히 상황을 되짚어 보아야 한다.
무엇보다 이해가 부족한 것은 우리 협상단이 요구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와의 통화스와프다. 연준이 일본 등 5개 중앙은행과 맺은 상설 통화 스와프는 위기 시 단기 달러 유동성을 공급하기 위한 안전장치다. 기본 만기는 7일이며, 팬데믹 초기에는 84일물이 추가됐지만 2021년 7월부터 중단됐다. 금리는 달러 OIS에 스프레드(현재 25bp)가 더해지는 구조로 시장금리 대비 높아 평상시에는 이용할 유인이 낮다. 따라서 롤오버가 가능하더라도 수년에 걸쳐 이 자금을 쓸 이유가 없다. 3천500억달러 규모의 투자자금 조달용으로 부적절하다.
만일 연준의 통화 스와프 라인이 주어진다면 외환시장 안정성은 크게 제고될 것이다. 다만 이 장치로 3천500억달러 수요에 따른 환율 상승 압력을 흡수할 수는 없다. 일본의 사례가 이를 잘 보여준다. 일본은 상설 스와프 라인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미·일간 금리차 확대 등으로 달러-엔이 2024년 7월 160엔 수준으로 급등했다. 이 제도는 위기 시 달러 유동성 제공 목적으로 운용되도록 설계되었다. 연준은 환율 안정이 각국의 통화 정책과 외환보유액 운용의 몫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처럼 연준 통화 스와프가 이번 관세 협상과 관련하여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은 명확하다. 설사 통화 스와프가 제공되더라도 3천500억달러 투자의 본질적 문제는 대부분 그대로 남아 있게 된다. 만일 이 정도 규모의 자금이 국내에서 조달되어 대외투자로 빠져나간다면 환율과 금리의 상승을 유발할 뿐만 아니라 국내 투자를 더욱 위축시켜 장기 성장세를 낮추는 요인이 될 것이다. 시장은 이 문제가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미국 측에서 여러 부정적 뉴스를 흘리고 있지만 아직 확정된 것은 없다. 그 불확실성이 시장을 불안하게 하고 달러-원의 상승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일부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달러-원이 1,400원대 후반으로 급등하지는 않을 것이다. 미 달러화는 중기적 약세 추세에 진입해 있고 한미 간 금리차도 줄어들 가능성이 큰 상황이다.
시장은 보다 차분히 대응할 필요가 있다. 트럼프와 그 주변이 만들어내는 한 마디 한 마디에 널뛰기해서는 안 된다. 이번 관세 인상 및 투자 요구의 충격을 분산시키고 시장에서 최대한 흡수해 내야 한다. 시장이 상황 변화를 제때 가격에 반영하는 것은 위기를 예방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그러나 종잡을 수 없는 단기적인 충격에 휘둘리지 않아야 한다. 기민하게 움직이더라도 제대로 땅을 딛고 중심을 잡아야 한다.
(이승헌 숭실대 교수/전 한국은행 부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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