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 시장에서 지난 10월 10일 대규모 레버리지 강제청산이 발생한 이후 한 달 반 이상 약세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비트코인 가격은 11월 25일 8만8천609달러를 기록해 지난 10월 6일 전고점 대비 약 30% 하락했다. 지난 11월 21일 8만572달러까지 떨어지기도 했으나 현재는 일부분 회복된 상태다.
지난 10월 10일 크립토 시장에서는 단 몇 시간 만에 167억달러 규모의 레버리지 포지션들이 강제로 청산되는 사건이 발생했고 이후 담보가치 하락에 따른 연쇄적인 추가 청산이 이어지며 시장 참여자들은 대규모 손실을 입었다.
크립토 시장의 유동성 지표라고 할 수 있는 스테이블코인 시가총액은 지난 10월 25일 정점 대비 2% 감소했다. 스테이블코인 시가총액 감소는 상당히 드물게 나타나는 현상인데 지난 2022년 5월 테라-루나 사태로 스테이블코인 시총이 34% 줄어든 이래 처음으로 크립토 시장의 유동성이 위축되었다.
◇ MSCI의 디지털자산 다량 보유 기업 편출 논의
10월 10일 갑작스러운 시장 급락의 원인이 뚜렷하게 밝혀지지 않았던 가운데 최근 MSCI의 인덱스 개편 논의가 그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지난 10월 10일 MSCI는 디지털자산 보유액이 총자산의 50% 이상 차지하는 기업을 MSCI 글로벌 인덱스에서 제외할 것을 제안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에는 이 내용이 주목받지 못했으나 11월 20일 JP모건이 MSCI가 스트래티지(MSTR)를 인덱스에서 편출할 경우 최대 28억 달러의 패시브 투자자금이 유출될 수 있고 나스닥, 러셀 등 다른 주요 지수 제공 기관들이 이를 따를 경우 총유출 규모가 88억 달러에 달할 수 있다는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시장은 지난 10월 10일 MSCI가 이러한 논의를 진행했었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되었다.
MSCI는 디지털자산을 전략적 재무 자산으로 보유한 기업들이 일반 기업이 아닌 '투자펀드'와 유사하다고 판단하고 지수에서 편출할 것을 제안한 것이다. 스트래티지는 회사 총자산의 약 80%가량을 비트코인으로 보유하고 있으며 이는 MSCI가 제안한 50% 기준을 훨씬 뛰어넘는 수준이다.
MSCI는 12월 31일까지 의견수렴을 거쳐 2026년 1월 15일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따라서 이와 관련된 불확실성은 여전히 남아있고 과거 MSCI의 인덱스 편출 논의 사례들에 비추어볼 때 실제 스트래티지가 인덱스에서 제외될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 암호화폐 직접 보유 아닌 ETF 통한 보유 유도
시장이 원하든 원치 않든 MSCI는 상장 기업들에 대해 디지털자산 보유 관련 새로운 규정을 제시하고 있다. 앞으로 미국 상장기업들이 대규모로 암호화폐를 보유하고자 할 경우 인덱스 편출을 피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접근 방식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비트코인 상장지수펀드(ETF) 매수를 통한 간접 보유 ▲독립적인 비트코인 신탁 또는 펀드를 설립 ▲49% 이하로 보유 등의 방식이 있을 수 있다.
암호화폐 커뮤니티에서는 이번 MSCI의 편출 논의와 JP모건의 보고서 발표에 대해 암호화폐 보유를 둘러싼 전통금융기관과 DAT(Digital Asset Treasury, 디지털자산을 재무적 관점에서 보유하는 기업들)간의 주도권 싸움 또는 수량 확보 싸움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엄밀하게는 암호화폐를 보유하는 방식에 대한 문제 제기이며 암호화폐 자체에 대한 수요가 줄어들 사건은 아니라는 것이다.
현재 비트코인 가격은 정점 대비 30% 이상 하락했기 때문에 약세장에 진입했다는 점은 명확하다. 다만 앞으로의 회복 탄력성은 이번 하락이 시스템적 리스크에서 기인했는지 여부와 향후 크립토 산업에 대한 제도적 뒷받침에 달려있다고 본다.
만약 MSCI가 스트래티지 등 DAT 기업들을 인덱스에서 실제로 편출할 경우 패시브 펀드들의 자동적인 매도가 뒤따르며 해당 기업 주가와 비트코인 가격 하락 압력은 불가피할 것이다. 그러나 크립토 자산을 대규모로 직접 보유하는 방식을 피하는 대신 ETF를 통한 기업의 보유는 오히려 늘어날 수 있다.
◇ 알트코인 ETF 잇따른 승인
크립토 시장의 극심한 약세로 알트코인 ETF 승인 뉴스들이 거의 주목받지 못하고 있지만 미국에서는 알트코인 ETF가 잇따라 출시되고 있다.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는 운용사 그레이스케일의 도지코인(DOGE)과 리플(XRP) 현물 ETF 상장을 승인했고 11월 25일부터 거래가 시작된다. 지난 13일 카나리캐피털이 최초로 리플 현물 ETF 승인을 받았고 첫 거래일 5천800만 달러 거래량을 기록해 솔라나 ETF 못지않은 높은 관심을 끌었다. 프랭클린템플턴, 위즈덤트리 등 여타 운용사들도 리플 ETF 출시를 준비중에 있으며 그레이스케일의 체인링크(LINK) ETF는 12월 2일 상장 예정이다.
지난 9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암호화폐 ETF에 대한 일반 상장 기준을 승인했고 이를 통해 개별 ETF에 대한 검토 없이 승인이 이뤄지는 방향으로 규제가 완화되었다. 이에 따라 미국 정부의 셧다운 이슈에도 불구하고 다수의 ETF가 승인될 수 있었다.
암호화폐 ETF에 대한 일반 상장 표준이 승인된 데 이어 미 재무부와 국세청(IRS)은 11월 11일 암호화폐 상장지수상품(ETP)가 스테이킹(Staking)을 통해 수익을 얻고 리테일 투자자들에게 보상하는 것을 허용하는 신규 지침을 발표했다. 이를 통해 ETP 투자자들도 스테이킹 수익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그동안 ETP가 스테이킹에 참여할 경우 세법상 투자신탁 지위를 잃을 수 있다는 불확실성 때문에 관련 상품 출시에 제동이 걸려 있었으나 이번 조치로 불확실성이 해소된 것이다. 운용자산 13조5천억 달러의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도 스테이킹 이더리움 ETF를 출시하기 위해 준비 중이다.
지난 11월20일 미국 하원에서는 비트코인으로 연방 세금을 납부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이 발의되었다. 법안이 통과되면 비트코인으로 납부한 세금은 국가 전략 비축고로 편입되고 납세자에게는 자본이득세가 부과되지 않는다.
현재 암호화폐 시장을 둘러싼 여건들을 점검해보면, 과도한 레버리지 관행과 청산 봇에 의한 강제 연쇄 청산, 감독 관리의 부재 등 시스템적 취약 요인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다수의 알트코인 ETF들이 승인되어 제도권 안으로 편입되고 있고 자산운용사와 은행 등 전통 금융기관들의 ETF 출시와 토큰화 비즈니스로의 확장, 정부 차원에서의 육성과 관련 법안 발의 등이 적극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이번 MSCI의 DAT 기업들에 대한 편출 논란과 이에 따른 불확실성은 당분간 암호화폐 가격에 영향을 미치겠지만 이 자체가 크립토 자산에 대한 수요를 구조적으로 위축시킨다기보다는 ETF를 통한 간접 보유를 촉진시키는 등 보유 방식의 변화를 야기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여진다.
암호화폐 시장은 그동안 여러 사건들을 통해 테스트 과정을 거쳐왔고 이번 역시 그러한 검증 과정 중 하나이다. 따라서 과거에도 그랬듯 이 과정을 통과한 이후에는 보다 검증된 자산으로서 지위와 투자 저변의 확대를 획득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미선 전 해시드오픈리서치 리서치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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