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고유권 기자 = 현대그룹이 이틀 뒤 열릴 법원의 판결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지난 2011년 11월 외환은행 등 채권단 8곳을 상대로 현대건설 입찰과정에서 이행보증금으로 낸 2천755억원의 반환과 손해배상금 500억원을 청구하는 소송의 1심 판결이 나오기 때문이다.

23일 채권단과 현대그룹 등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오는 25일 오전 9시50분 현대그룹이 제기한 소송의 1심 판결을 내릴 예정이다.

법원이 누구의 손을 들어줄 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채권단과 현대그룹의 주장이 첨예하게 엇갈리고 있어서다.

양측이 법적 다툼까지 벌이게 된 사연은 참으로 드라마틱하다.

2010년 현대그룹은 시숙지간인 현대차그룹과 현대건설 인수전에서 맞붙었다.

자금력에서 앞선 현대차그룹의 우세가 점쳐지는 싸움이었지만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곳은 현대그룹이었다.

우선협상대상자 선정까지 현대그룹과 현대차그룹은 상대에 대한 날선 공방을 벌이면서 가뜩이나 좋지 않던 사이가 더 벌어지기도 했다.

현대그룹은 프랑스의 나티시스은행과 동양증권 등을 끌어들여 자금력을 만회해 현대차그룹 보다 높은 금액을 제시하면서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고 2천755억원의 이행보증금도 내면서 현대건설을 '접수'하는 듯했다.

하지만 일격을 당한 현대차그룹의 반격이 시작됐다.

나티시스은행 계좌를 통해 보유하고 있다던 자금의 출처가 불분명하다는 점을 걸고 넘어졌고, 채권단도 이를 받아들여 현대그룹에 출처를 밝히라고 요구했다.

현대그룹은 나티시스은행이 증빙한 대출계약서 등을 채권단에 제출했지만 채권단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고, 현대그룹의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를 박탈하는 동시에 현대차그룹을 새로운 주인으로 결정했다.

이에 현대그룹은 "5%의 이행보증금을 냈는데도 채권단이 실사 요구에 응하지 않고 현대차그룹과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것은 배임적 이중매매 행위에 해당한다"면서 소송을 제기했다.

채권단이 외부의 압력에 태도를 바꿔 양해각서 상의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도 손해배상을 제기했다.

현대건설 인수 우선협상대상자의 지위를 박탈당한 것은 자신들의 귀책사유가 아니어서 이행보증금으로 낸 2천755억원을 몰취당할 이유가 없고, 채권단은 이를 반환해야 한다는 게 현대그룹의 주장이다.

이에 반해 채권단은 적법한 인수ㆍ합병(M&A) 절차에 따라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를 박탈했기 때문에 몰취한 이행보증금을 돌려줄 이유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아무런 근거없이 이행보증금을 돌려줄 경우 배임의 문제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는 점도 명확히 하고 있다.

현대그룹은 1심에서 패소할 경우 무조건 '항소'한다는 방침이다. 설사 대법원까지 가더라도 책임 소재를 분명히 가리고 몰취당한 이행보증금을 반드시 찾아오겠다는 입장이다.

채권단은 법원의 판결을 존중한다는 입장이다. 1심에서 패소할 경우 항소할 지 여부는 채권단의 의사를 취합한 후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채권단의 한 관계자는 "혹시 1심에서 패소 판결이 나오면 주관은행(외환은행)이 항소 여부에 대한 동의를 묻는 절차를 진행할 것이고 취합된 의견에 따라 향후 대응 여부가 결정될 것이다"고 전했다.

일각에서는 채권단이 1심에서 패소할 경우 항소하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현대그룹의 우선협상대상자 지위 박탈 당시 일부 채권단 고위 관계자가 이행보증금을 돌려줄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언론을 통해 밝힌 근거가 있어서다.

당시 채권단의 M&A 관리 절차가 매끄럽지 못했다는 의견도 제시되고 있어 채권단이 이행보증금 반환과 관련한 소송을 지속할 명분도 많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업황 침체로 주력 계열사의 실적과 재무상태 등이 비교적 좋지 못한 현대그룹 입장에서 2천755억원에 달하는 이행보증금은 '가뭄의 단비'와 같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법원이 올바른 판결을 내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면서 "이행보증금을 돌려받게 된다면 그룹 전체 자금사정에 상당히 도움이 될 것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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