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신은실 기자 = 중국 자산담보기업어음(ABCP) 손실로 신용평가사에 대한 책임론이 재부상하면서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신평사 손해배상 책임 법안이 통과하지 못하는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2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7월 정무위원회 박찬대 의원이 입법 발의한 신평사 손배 책임 법안은 올해 정무위 소위에서 몇 차례 논의가 진행됐지만, 여전히 이에 대한 결론이 나지 않고 있다.

이 법안이 제안된 것은 동양사태 등에서 볼 수 있듯 잘못된 신용평가로 초래된 투자자 손해를 구제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여러 차례 제기된 데 따른 것이다.

법안은 신평사가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평가절차 등을 위반해 등급 평가에 현저한 영향을 끼칠 경우 투자자들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을 부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투자자에 대한 권리를 강화하고 신평사의 신뢰도를 높이겠다는 복안이다.

법안의 취지는 좋지만, 이 법안이 발의된 이후 1년이 지나도록 통과되지 못하는 가장 주요한 이유는 신평사가 무과실에 대한 입증 책임을 져야 한다는 조항 때문이다. 이에 대한 업계의 반발이 상당히 큰 것으로 전해졌다.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사례인 데다 입증 책임을 신평사에 묻는 것은 신평사가 신용등급을 보수적으로 산정하게 하는 유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신평사는 전문가의 의견을 내는 것인데 투자자들이 손해를 입을 경우 소송을 남발할 우려가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자본력이 약한 신평사에 지나친 손해배상 부담을 묻게 될 경우 신평사 존립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진단도 나온다.

금융당국은 이같은 업계의 의견을 취합해 국회에 보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금융업계 한 관계자는 "보수적인 신용평가는 자본시장에 오히려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으며 중소기업은 채권 발행기회가 더 줄어드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금융당국 한 관계자는 "이번 ABCP 사태뿐 아니라 과거 동양사태 때부터 신평사 시장 선진화방안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있었다"며 "제3자 요청에 의한 신용평가 도입과 이해 상충 방지 장치 강화 등 여러 가지 제도 개선이 이미 진행된 상황인데 신평사에 손해배상 책임까지 물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아 법안도 아직 통과되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중국 ABCP 디폴트 사태는 신평사의 평가방법론 측면에서 아직은 잘못된 점이 발견되지 않았다"며 "국내 기업이 아니라 국경 간 거래라는 특수성이 있기 때문에 상황을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esshin@yna.co.kr

(끝)
저작권자 © 연합인포맥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